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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와 함께 떠난 인도 순례] 10.파드마삼바바의 비밀스런 동굴들

기자명 법보신문

정토 건설의 원력 세웠던 구루린포체 자취 곳곳에

 
땅속에서 발견된 ‘걀와 르셩 첸포’ 좌상.

“여기는 우리가 왔었던 곳이 아닌가요?”
전날 벨링의 한 도량에서 하산할 때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난 다음이었다. 그리고 서시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짐을 모두 챙겨 출발해서 도착한 곳은 이틀 전에 들렸던 ‘베마양쳉’ 사원이었다.
“저리로 한번 가보세.”

덕킁린포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주문 밖의 요사채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더니 요사채 뒤편에 나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일행 역시 린포체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순례자들이 들어선 법당은 전에도 이 도량에 들렀을 때 ‘여기도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스쳐 지나갔던 곳이다. 그리 크지 않은 법당에는 좌상이 한분 모셔져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여느 불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난번에 왔을 때 이곳을 들렀어야 했어. 내가 일이 있어서 같이 참배하지 못했는데 이 절에선 이 분을 꼭 친견해야 해. 한 가지 알아둘 점은 이곳은 여성 수행자가 사용하는 법당이라는 사실이야.”

법당 안 중앙에 모신 좌상의 주인공은 ‘걀와 르셩 첸포’(Gyalwa Lhsung Chenpo)로, 전설에 의하면 그 좌상은 조각을 하거나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정확히 언제 조성됐는가는 알 수 없으나 땅속에서 발견 되었을 때 그 모습 그대로란다. 그는 구루린포체의 예언에 따라 시킴의 첫 번째 왕인 ‘쵸갈 펀쇽 남걀’(Chogyal Phunstok Namgyal) 재위 당시 시킴에 왔으며 국왕 즉위식에 초청되어 온 세분의 고승과도 친분을 나누었다.

그는 깨침의 정도나 능력 면에서 다른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선지식이었다고 한다. 그의 특이한 점은 온몸이 파란색이었는데 인도의 이교도에 의해 중독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당 안에 그린 그의 모습은 불상보다도 더 확실하고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하얀 수염에 불룩 튀어 나온 배와 파란색의 피부는 한편으론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불상의 얼굴 모습도 웃는 듯 친근해 보였으며 위로 치켜뜬 눈은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땅속에서 나툰 고승의 좌상

 
구루린포체의 정토 ‘상톡페리’의 한 부분.

지난 번 ‘베마양쳉’ 사원에 들렀을 땐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다. 큰 법당 위에 있는 여러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이나 그 위층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그랬다. 그러나 린포체의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마음이 달라지니 느끼는 것 역시 달랐다. 가장 위층의 공간에는 탑 모양의 특이한 형체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은 ‘상톡페리’(Sangtok Peri)로, 구루린포체인 파드마삼바바가 발원하신 정토(淨土) 세상을 형상화 한 것이다. 탑 모형을 한 그것은 두 형제가 출가를 해서 린포체의 경지에 오른 후 생을 회향하기 전 함께 정진한 끝에 조성했다고 전한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건설하신 것처럼 구루린포체 역시 중생을 위해 정토를 건설하려 했던 의미가 담긴 공간이다.

구루린포체가 아미타부처님의 화신이니 그것은 어쩌면 같은 세계를, 바로 정토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극락정토가 사바세계를 벗어난 공간에 존재한다면 구루린포체의 정토는 사바세계 그 자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토세상을 상징하는 그 탑의 겉모습들은 인간계인듯 하지만 다시 보면 천상계처럼 보였고 가장 아래 바닥면에 나타난 모습들은 지옥인듯 보이나 또 인간계처럼 보인다.

“구루린포체를 백만 번 부르면 그곳에 태어 날 수 있다네.”
아주 평범한 한 마디, 린포체의 말씀에 순간 생각이 멈춘다. 아미타부처님은 당신을 열 차례 진심으로 염송하면 직접 오셔서 중생을 구제하신다고 했는데 구루린포체는 백만 번이나 불러야 한다면 얼른 계산해 봐도 평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백만 번 염송한다고 해도 영성(靈性)이 깃든 순간은 얼마나 될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 그림들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요?”
“구루린포체의 수행법과 제자들이 정진하는 모습일세.”
구루린포체의 정토탑이 있는 공간의 벽면에는 여러 불보살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구루린포체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요가의 동작처럼 보이는 몸동작이 표현되어 있었다. 제자들의 모습도 하나하나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과연 구루린포체는 어떤 분이었을까?’
수 없이 많은 티베트의 순례자들이 들렀을 이 공간에서 의문이 나의 뇌리를 스친다. 이번 순례의 화두가 바로 이것이리라.

‘베마양쳉’ 사원은 시킴의 총본산이다. 이곳 스님들에 의해 시킴 국왕들의 즉위식이 거행되어 내려왔다는 전설을 듣고 있자니 ‘걀와 르셩 첸포’의 좌상과 ‘상톡페리’ 정토탑이 그 자리에 조성되어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밀스런 동굴 ‘카도상푹’의 입구.

“저 아래에 있어요.”
‘베마양쳉’ 절을 떠나서 한 시간 가량을 달렸을까, 시원스럽게 푸르른 계곡물이 흐르는 언덕과 마주했다. 차가 멈추었을 때 ‘소남’이 계곡 옆 조그마한 건물을 보면서 말했다. 그곳은 시킴에 있는 구루린포체와 관련된 네 개의 신성한 동굴 가운데 한곳이다. 동굴의 이름은 ‘카도상푹’(Khado sangphug), 이름의 의미는 ‘비밀스런 동굴’이란다. 그곳은 설산의 물이 녹아 흐르는 커다란 계곡을 건너야 갈 수 있는데 ‘온천’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주차를 하고 나서 시멘트로 포장한 좁은 길을 따라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예전엔 산길이었는데 지금은 길을 잘 닦아 다니기가 조금은 편해졌지.”

린포체의 말씀처럼 근처에 나 있는 예전의 길은 가파르고 한 걸음 한 걸음 떼기에도 비좁은 길이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니 곧바로 온천이 눈에 들어온다. 인도나 시킴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온천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으며 시설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엔 동굴로 가는 다리와 위쪽에 하나의 다리가 더 있었다. 다리가 좁은 관계로 한 명씩 건넜다. 발을 내 딛을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는 작은 현수교였다. 발아래는 맑디맑은 히말라야의 물이다. 매우 거셌다. 그렇게 많은 양의 물이 흐르는 계곡은 처음 보았다.

다리를 다 건너니 5m 높이는 됨직한 스투파가 우리를 맞이한다. 그 옆에는 조그마한 건물이 있고 건물 안 법당에는 라마 몇 명과 사람들이 앉아서 염불을 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이곳에서 염불을 하다니, 신비로웠다. 일행은 우선 법당으로 들어가 20분가량 앉아서 염불 정진에 동참한 뒤 스투파 뒤편에 있는 동굴로 발길을 돌렸다.

동굴은 생각만큼 큰 것은 아니었다. 좁은 통로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나오는데 ‘소남’이 막내딸을 데리고 들어가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그 안에는 두 사람이 앉기에도 좁은 공간이 있었는데 구루린포체의 모습을 새겨놓은 돌이 정면에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인연이 닿는 사람은 그곳에서 구루린포체의 모자를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스님, 사진 좀 찍어주세요.”
내가 들어가자 ‘소남’이 나에게 ‘막내딸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청했다. 그녀의 모성애는 잠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듯 했다. 그곳에서 나오니 사람들이 오른편에 있는 나의 머리 높이에 난 좁은 구멍을 보고 있었다. 그 구멍에서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시드니에서 함께 순례에 동참한 린포체의 남제자인 ‘알버트’가 작은 동굴에서 겨우 빠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손을 동굴의 틈에 넣어 다음 사람을 당겼는데 이번엔 린포체의 여제자인 ‘야리’가 힘겹게 빠져 나왔다.

허름한 동굴에도 수행 흔적이

 
제자들에게 항상 자비롭게 설명하시는 덕킁린포체.

“린포체님, 안에 아무 것도 안보여요.”
야리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린포체께 되물었다.
“그곳은 구루린포체께서 수행하신 곳이야.”
그랬다. 그들의 행동에는 린포체에 대한 한없는 신뢰가 느껴졌다. ‘사람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작은 틈 사이로 린포체의 한 마디 말씀에 주저함이 없이 그들은 비좁은 틈을 향해 들어간 것이다. 스승과 제자 간의 마음이 어떻게 소통을 하여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린포체와 다른 사람들은 법당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왔다. 언덕을 다시 올라오는데 거의 다 올라왔을 즈음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가운데 유난히 어려 보이는 아이가 커다란 가스통을 끈으로 연결해서 그 끈을 이마에 얹은 채 내려오고 있다. 너무나 힘겨워 보이는 그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이 무욕(無慾)의 땅에서 저리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어린 아이라니, 그 고통의 인연의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곳에서 점심 공양을 할 거예요.”

다시 이동해서 한참을 달리다보니 그렇게 작지 않은 도시인 ‘멜리’(Melli)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느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나와서 린포체께 반갑게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점심공양 메뉴는 우리나라의 만두와 비슷한 ‘모모’와 쌀국수다.
“이집 아들이 내 제자야.”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드는 ‘모모’를 기다리면서 린포체는 내가 던질 질문을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자신과 그 집의 인연을 설명했다. 점심 공양만 들고 짬을 내 쉴 틈도 없이 다음 순례지로 향했다. ‘강톡’까지 가려면 갈 길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지나니 차가 흙먼지를 날리며 멈추었다. 그리고는 밭 사이로 난 계단으로 된 길을 내려가니 색감이 너무도 아름다운 일주문이 보인다. 그 옆에 ‘샤촉배퍽’(Sharchhog Bayphug)이라는 동굴이 있음을 알리는 노란색 안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표지판이 하나 더 나오고 철창문 안에 동굴이 있다. 검은 개 한 마리만이 우리들을 맞이할 뿐 사람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고 바람 한 점 없으니 ‘룽다’도 잠시 쉬고 있다.

‘샤촉배퍽’의 의미는 ‘동쪽에 숨겨진 동굴’이다.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엔 사람들이 기도를 해서인지 제법 평평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동굴 안쪽은 무척 어두웠다. 그리고 ‘카도상푹’ 보다는 음산한 느낌마저 든다. 이미 오후 4시에 가까운 시간인데다 산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한 밤중 같다. 동굴의 구조상 어둠을 뚫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스님은 못 올라오겠는데요.”
‘소남’이 손전등을 들고 앞장을 서서 먼저 올라갔는데 그녀의 한 마디 말에 나만 돌아 나왔다. 다른 일행들은 갈 수 있는 지점까지 들렀다가 돌아왔다. 사람들이 다 빠져 나왔을 땐 이미 어둠이 대지를 감싸 사방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힌두교 마을을 지나 왔는데 힌두교도들의 노래가 메아리치니 이국적이면서도 예가 어디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즐거운 나흘간의 서쪽 순례를 마치고 앞으로의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강톡’으로 돌아왔다. 하루 순례를 회향한 밤 10시, 나의 마음도 잠시 고단한 육신의 고통을 내려놓고 회향의 시간으로 향하고 있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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