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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말을 걸다] 20. 마루 밑 아리에티

기자명 법보신문

빌리는 지혜

 
마루 위 인간세상으로 뛰어든 10cm 소녀 아리에티.

안녕하세요. 호기심 많은 소녀 아리에티랍니다. 올해 열네 살인데 좀 작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 10cm이니까요. 제 얘기 한 번 들어볼래요. 귀를 기울여 주세요.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우린 교외의 오래된 저택 마루 밑에서 삽니다. 마루 위 사람들한테 들키면 우린 이곳을 떠나야 한답니다. 속삭이듯 말해도 귀를 기울여 주세요. 우린 사람들의 물건을 몰래 빌려 쓰며 살지요. 훔친다고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빌려 쓰니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마루 위 사람들에게 우리가 빌리는 것들은 그렇게 큰 게 아니랍니다.

각설탕 1개, 빨래집게 하나 없어진다고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니까요. 우린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팽개친 병이나 렌즈를 이용해 햇빛을 모아 알루미늄 호일로 반사시켜 빛을 만들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빌려 쓰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에요. 쥐와 싸우고 바퀴벌레에 쫓기며 살충제를 피해 다니느라 목숨을 걸어야 해요. 더구나 우린 마법을 쓰는 요정이 아니랍니다. 마루 위 사람들보다 작은 사람일뿐이지요.

전 마루 밑은 물론이고 벽장, 정원, 넝쿨 잎 사이를 달리며 이것저것 빌리러 다니고 있어요. 전기콘센트 설치 공간이나 때론 벽지 무늬를 따라 정교하게 뚫은 곳을 문처럼 드나들지요. 그렇다고 당장 방에 있는 벽지나 전기콘센트 설치 공간을 들춰 보진 말아주세요. 사람들에게 들키면 우린, 떠나야 하니까요.

참, 당신들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진정 자신에게 묻고 답해주세요. 어째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이 당신들에겐 하찮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당신들이 소인이고 당신들이 빌려 쓰고 있는 자연이 우리가 두려워하는 마루 위 사람들의 그 무엇이라면 어떨까요. 당신들도 우리처럼 모든 것을 빌려 쓰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일단 빌리면 감사히 잘 써야지요.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우리 것이 아니니 소유할 수도 없지요. 어쩌면 다음 세대를 살아갈 이들로부터도 빌려 쓰는 것일 테지요. 당신들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생명일 뿐입니다.

하루에 당신들 한 명이 버리는 쓰레기량이 1.02kg이라고 들었어요. 한국 인구가 주민등록상 기준으로 5000만명을 넘었다고 하니, 1년이면 1861만 5000톤의 쓰레기가 나오더군요. 이미 10여년 전 수치로 따져도 1년에 8톤 트럭 68만여 대 분량의 음식물쓰레기가 나오고, 트럭을 일렬로 세우면 서울과 부산을 무려 여덟 번이나 왕복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얼마나 많이 먹고 얼마나 더 가져야 하는 건가요.

결핍은 욕망의 다른 말입니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지요. ‘그것만 가질 수 있다면 이런 저런 고민은 끝날 수 있다’고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일단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빛나던 그것은 더 이상 매력이 없지 않던가요? 당연하게도 또 다른 욕망이 고개를 들지요. 귀를 기울여 주세요. 혹 너무 많은 욕심들이 어지럽게 내팽개쳐져 있지 않나요.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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