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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와 함께 떠난 인도 순례] 11. 순례가 선사한 선물

기자명 법보신문

처음 만난 이도 성지에선 아주 오래된 도반

 
‘엔체 사원’(Enchey Monastery)의 라마들이 가면춤을 연습 하고 있다.

“절에 갈 건데 함께 가실래요?”
시킴의 수도인 ‘강톡’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정 관리 소임자인 ‘소남’은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할 준비를 하면서 함께 가자고 한다.
“그렇게 합시다.”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곳을 가본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두루마기 하나만 걸치면 되기 때문에 대답과 동시에 방으로 가서 나갈 채비를 하고 바로 따라 나섰다. 숙소에서 10분가량 거리에 있는 ‘엔체’(Enchey) 사원에 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장단에 맞춰 북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라마들이 모여 행사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러 명이 우리나라 소고보다 조금 더 큰 북을 들고 둥글게 서서 안쪽을 같이 보다가 돌아서 뒤쪽을 보고 오른쪽으로 돌다가 왼쪽으로 돌고 모였다를 반복했다. 그들은 라마의 북장단 소리에 맞춰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소남’과 함께 기도하는 소리를 따라 ‘마하깔라’(Mahakhala)를 모신 법당에 들어갔다. 한참 동안 ‘마하깔라’를 바라보았다. 자주 친견하지는 못했지만 자연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마하깔라’는 시킴이나 티베트 사원의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분이시다. ‘마하깔라’는 산스크리트어이며 티베트어로는 ‘곤포’(Mgon po)라고 발음한다. 티베트 불교의 호법 신장으로, ‘마하’(Maha)는 반야심경의 첫 구절인 ‘마하’와 같이 ‘위대하다’는 말이다. ‘깔라’(Khala)는 ‘검다’는 뜻이며 ‘곤포’(Mgon po)의 의미는 ‘왕’이나 ‘보호자’이므로, 두 단어의 의미를 조합하면 ‘위대한 검은 색의 보호자’라고 할 수 것 같다.

그의 모습은 이름에서 나타난 것처럼 검은 색이고 다섯 가지 욕망을 지혜로 바꾸는 지혜를 체득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 때문에 다섯 개의 두개골로 된 관을 쓰고 있으며 두 개 또는 네 개 그리고, 여섯 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한자로 하면 ‘대흑천’(大黑天)으로 표기할 수 있으며 일본에서는 행운을 주는 일곱 분의 신 가운데 한분으로 받들고 있다. 독립적인 공간에 모시는 경우가 많고 중국이나 한국에는 그리 친숙한 신장님은 아니다.

티베트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시킴에서는 어느 절을 가나 ‘마하깔라’를 모신 공간이 따로 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마하깔라’ 기도에 집중한다. 우리나라에서 설이 지나고 정초 신중기도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욕망을 지혜로 바꾼 ‘마하깔라’

 
생두 명의 젊은이들이 새해 음식 준비를 위해 절구에 쌀을 빻고 있다.

‘마하깔라’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서서히 밖에서 들려오는 북 소리와 라마들의 몸동작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을 이끈다. 자꾸만 라마들의 모습이 아른 거려 그곳에서 살짝 나와 다시 구경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눈길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라마들은 나를, 나는 라마들을 호기심 어리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라마들의 염불소리에 맞추어 기도를 하는 ‘소남’이 나올 때까지 절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시내에 있는 절이어서 그런지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풍겼다. 단청도 근래에 손을 보았는지 색이 선명했다.

특히 작은 ‘마니콜로’(Mani Khorlo, 기도하면서 돌리는 바퀴모양의 법기)가 줄을 지어 절 입구에서부터 지붕을 얹은 벽까지 가지런히 설치되어 있었고 지붕 위에는 스투파 윗부분이 일정한 간격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법당 앞과 옆에 설치된 것들은 내가 본 시킴의 사원 가운데 가장 정갈할 정도로 도량이 말끔했다. 우리 일행은 각자의 소원을 빌며 정성을 다해 ‘마니콜로’를 하나하나 돌렸다.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숙소로 돌아와 보니 덕킁린포체는 누군가의 도움 요청에 일을 보러 출타하신 뒤였고 서시킴으로 여행을 갔던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강톡 시내로 구경을 가잔다. 시킴에 온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시내 구경을 못하고 있었던 터라 함께 시내로 향했다.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므로 걸어서도 갈만 했지만 오르막내리막 경사가 급한 길이어서 택시를 타고 갔다.

가장 번화한 중심가는 우리나라 읍내 정도의 거리이다. 중심 거리는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한산했으며 길 중간에는 화단도 가꾸어져 있다. 화단 옆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어 한가로운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길 가에 들어선 건물들은 대부분이 3층 이상의 것으로, 거의 대부분이 페인트칠을 했는데 일층엔 가게가 있고 위층에는 가정집이 들어서 있다. 중심 거리를 사이에 두고 거미줄처럼 가지를 친 길에도 상가가 빼곡하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의상이나 가게의 모습들은 우리나라의 60, 70년대를 연상케 한다.

 
시킴주의 주도인 강톡 번화가의 입구.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티베트 전통의 승복을 입은 라마들이 눈에 띄고 거리 중간 지점엔 ‘간디’의 동상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인도인들이 많았는데 사정을 알아보니 시킴인들은 상업에 소질이 없어서 인도인들을 고용하든지 아니면 건물을 세를 준다고 한다. 시킴의 경제를 이끄는 일선에서는 인도인들이 주인공인 셈이다.
“점심은 인도 식당에서 들까요?”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린포체의 제자인 ‘야리’의 모친이 내가 시킴에 오기 전에 가본 인도식당의 음식 맛이 괜찮다며 우리를 안내했다. 그 인도식당은 이곳 강톡에선 그런대로 고급식당에 속한단다. 난생 처음으로 인도 빵 ‘난’(Naan)에 인도 카레를 손으로 섞어서 먹어 보았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일은 생각보다 간편했다.

점심공양을 하고나서 거리의 좌판이나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살던 고향은 잠깐 발전을 하다가 멈춘 곳이다. 나의 고향은 영산포로, 예전엔 목포를 통해서 큰 배도 들어 왔었는데 영산강에 하구언이 생긴 뒤로는 모든 것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5일마다 서는 장날만 잠시 잠깐 하루살이의 삶처럼 활기를 띠는 영산포엔 장날이 되면 근방의 사람들이 장을 보기 위해 모여 들었다.

특히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엔 시골 사람들의 희망과 꿈 그리고, 미래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행들이 물건을 사는 동안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을 하다 보니 그들의 웃음을 머금고 있는 얼굴에서 그들만의 밝은 꿈과 미래가 읽힌다. 그들의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차 한 잔으로도 마음 나누기에 충분

 
‘마니콜로’(Mani Khorlo)를 돌리며 소원을 비는 순례객들.

“알버트, 무슨 일이에요?”
숙소로 돌아오니 시드니에서 온 ‘알버트’가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다.
“린포체님이 ‘푸동 사원’(Phodong Monastery)에 가셨어요. 미리 알았으면 같이 갔을 텐데, 지금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아니요.”

그날만 벌써 세 번째 듣는 ‘같이 가실래요’, 마음 속으로야 가고 싶었지만 지난번 노 라마의 영결식이 있었던 날 그냥 따라 갔다가 린포체와 여러 사람을 귀찮게 한 것이 생각나니 가고 싶은 마음이 가셨다. ‘알버트’는 숙소 주인이 알선해 준 교통편으로 ‘푸동 사원’으로 떠났다.

“왜, 알버트는 혼자 갔나요? 저도 교통편을 마련해 가야겠어요. 스님 같이 가실래요?”
“아니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갈 때 그때 갈래요.”
‘알버트’의 출발을 알아차린 ‘제니’는 가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외부인인 우리가 스스로 교통편을 구할 수는 없었고 숙소 주인에게 다시 요청하는 것 같았으나 여자 혼자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사코 만류했다. 그래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가시지 않았던지 저녁 공양을 하고 나서 차를 마시면서 이틀 후 가기로 결정한 듯 했다.

시드니에서 온 사람들끼리 함께 차를 마셨다. 여행이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친하게 만든다. 린포체가 시드니에서 머무는 처소에서 간간히 보았을 뿐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을만한 인연의 시간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를 마시며 여행 중에 서로가 놓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린포체와의 동행에서 각자가 경험 했던 체험들을 나누면서 대화를 했는데 서로가 한결 편안하게 다가왔다. 뭔가 하나로 향하는 마음이 통하는 것처럼 대화가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대화를 하는 동안 상대방이 출가 수행자는 아니지만 오랜 인연의 도반(道伴) 처럼 법(法)에 대해서 서로의 마음을 배려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시킴에 와보라고 권유하셨던 린포체가 의도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대목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에 들기 전 그날 하루를 돌이켜 보면서 앞으로의 내 인생에 출가자건 재가자건 구별하지 말고 법도반(法道伴)을 만나기를 서원했다. 여태까지 이러한 인연을 충분히 짓지 못한 나의 두터운 업장에 대해 참회를 하면서 단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밖이 매우 분주해 보였다. 사람들의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귀에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송광사에서 메주를 만들 때 이후로 듣지 못했던 절구통 소리, 그 실체를 확인하니 발길은 저절로 방으로 옮겨졌다. 사진기를 꺼내는 손은 급한 마음에 더욱 느려졌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쌀가루를 만들어서 전통과자를 만드는 거예요. 곧 새해거든요.”
“새해요?”
“시킴은 티베트 달력으로 11월 1일이 새해입니다.”
“예, 그렇군요.”
“쌀가루는 팔지 않나요?”
“살 수는 있는데 맛이 덜해요.”

시킴 사람들은 티베트 달력을 사용하면서 여전히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 일상의 이러한 모습에서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절구통의 모양이 우리의 그것과 꼭 닮은 것을 보니 시킴이 더 좋아졌다.
“스님, 저랑 같이 가실래요?”
숙소 주인이 나에게 권했다. ‘제니’가 ‘푸동 사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다시 일었는지 꼭 가야겠다고 해서인지 숙소 주인은 이미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글쎄요.”
“여자 혼자라서 위험하다고 하니 같이 가세요.”

어제는 그녀를 만류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집착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가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같이 갈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정류장으로 가서 ‘코란도’처럼 생긴 택시를 타고 새로운 성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푸동 사원’(Phodong Monastery)으로 향했다. ‘푸동 사원’에는 어떤 티베트의 성자와 불보살님이 계실까?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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