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과 안거 그리고 정진

기자명 법보신문
  • 세심청심
  • 입력 2010.11.22 11:40
  • 수정 2010.12.01 16:55
  • 댓글 0

가을이 깊은가 싶더니 벌써 겨울의 이야기로 분주하다.

 

얼마 전 양평에서 내려온 처사님이 그날 아침 벌써 얼음을 보았다고 했다. 서귀포는 정말 따스하다. 겨울이 다 지나도록 얼음을 보기가 쉽지 않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수도 설비를 하면서 배관을 땅에 묻지 않고 밀감나무 숲 사이로 쭉 늘어놓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엔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한해 겨울동안 파이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는 날은 불과 하루 이틀에 불과하다. 그것도 아침나절 잠깐이다. 이곳에서 영하의 날씨란 체감에서나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년을 보내기 위해 이곳으로 많이 내려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왔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머물고 싶어도 좋은 환경만으로 삶을 지탱하기는 힘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물리적 환경보다 따스한 가족과 이웃의 품이 더 노년을 살찌우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노년을 혼자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환경과 따스한 가족 같은 돌봄이 있다면 많은 불자들이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가는 길목 포구인 이곳 서귀포(西歸浦)에 와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 서방정토로 가는 포구에는 불자들을 위한 마땅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이 좋은 인연을 만나 곧 요양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노년의 스님들을 편히 머물 수 있도록 모시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염려와는 달리 요양시설에 모실 조건에 맞는 스님들이 의외로 많지가 않다.

 

출가는 개인에게 있어서는 세속과의 결연한 단절을 의미할지 몰라도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개인의 고상한 취미 생활 정도 밖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본인이 속가와 단절하고자 해도 법적으로 그렇지 못하고, 출가자가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노스님들 중에는 속가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또 그렇다고 법적 보호대상자도 아닌 경우가 많은 것이다. 종단에서 노스님들과 병을 가져 간호가 필요한 스님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물론 종단적 차원에서의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본말사 차원에서 교구소속의 스님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 긴요할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노인요양원에는 춥지 않은 곳에서 겨울을 지내려하는 노스님들을 모시는데도 불편함이 없도록 시설 내에 작은 법당을 마련 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따스한 노후 보장이야 말로 현대 사회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일 것이다.

 

벌써 동안거 결재일기간이다. 석 달을 한 철로 정하여 매진해보는 안거가 시작된 것이다. 석 달 후 보름달 빛은 그대로 일지 몰라도 정진하는 모든 스님들이 세 개의 보름달을 한꺼번에 밝힌 듯 환히 마음을 열어젖히기를 발원해본다.

 

성원 스님.

노후보장을 염려하다보면 늘 망상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따스한 미래가 보장 된 삶이 혹여나 마지막 백척간두에서 한발 더 띄어야 하는 수행자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하지는 않을까? 은산철벽에 맞닿은 심정이 되어야 정진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부디 물리적 환경의 안락함에 마음 두지 않는 삶을 이번 석 달 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불확실한 미래와 따스한 미래, 둘 중 어느 것이 오늘의 나를 더욱 몸부림치게 할지 답을 내리기엔 쉽지가 않다.

 

오늘은 왠지 날은 차가와도 열나흘 달빛은 더욱 부드럽기만 하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