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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세암

기자명 법보신문

잊어버린 희망에 대한 기억

마음의 눈을 뜬 길손이와 감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 눈은 엄마가 걸음마도 못하는 동생 길손이를 불길 밖으로 구한 후 당신은 타들어 갈 때, 그 때 닫혔습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어느 덧 씩씩해진 길손이가 제법 누나를 아껴 줍니다. 늘 제 손을 잡고 걷는 길손이는 제게 세상을 보여줍니다. 길손이처럼 따듯하게 세상을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빨간 단풍잎을 좋아하는 누나에게 예쁜 누나 손을 닮았다고 합니다. 개똥지빠귀를 만나 슬프게 노래한다며 새들의 노랫소리도 전합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 향기도 가르쳐줍니다. “누나. 꽃이 피었다? 겨울인데 말이야. 병아리 가슴털 같이 뽀송뽀송 털이 났어. 저기 저 돌부처님이 입김으로 키우셨나보다. 그치?”


산길에서 만난 동물들과는 하염없이 놀고 싶어합니다. 눈 먼 누나 탓에 놀 친구가 없어서 그런가봅니다. 토끼, 노루, 산양할 것 없이 친구랍니다. 다행히도 스님들이 갈 곳 없는 길손이를 돌봐주게 됐습니다. 절에서 겨울을 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길손이 때문에 절은 늘 시끌벅적하답니다. 길손이는 예불 중에도 법당 안을 뛰어다닙니다. 스님들 신발을 나뭇가지에 거는 건 일도 아니지요. 그것도 잠시, 길손이는 엄마를 무척 만나고 싶어 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봄이 오면 찾으러 가자는 말이 성에 안 차나 봅니다.


스님이 공부를 하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본다고 하자 그 길로 관음암에 따라나섰습니다. 마음의 눈을 떠 흔들기만 하고 보이지 않는 바람 같은 엄마를 보고 싶었나봅니다. 떠나는 날 길손이가 점점 멀어진 고개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스님이 이미 떠났다고 했지만 뒤돌아 계속 손을 흔드는 길손이가 제겐, 보였거든요. 어떻게 관음암에서 지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눈이 몹시 많이 내리던 날 길손이와 함께 떠났던 스님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곧 봄이 왔습니다. 따듯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길손이가 건강하게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곳엔 엄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를 봤습니다. 마음을 다해 불렀습니다. 길손이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넘어 집으로 오는 오솔길을 걸어오는 엄마는 그곳에 있습니다. 뺨을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렀습니다. 길손이는 누나보다 먼저 엄마를 만났나봅니다. 관음암에선 관세음보살님이 편히 잠든 것처럼 보이는 길손이를 꼭 안고 있었거든요. “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니라.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는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이 아이의 순수함이 세상을 밝게 비추리라.”


염원(念願). 마음에 품고 바라는 절절함입니다. 무언가를 가슴 깊이 마음을 다해 부른 적이 있었나요. 하지만 탁한 마음은 절절함도 허락지 않습니다. 길손이가 엄마를 본 것은 간절함이니까요. 머물 던 절에서 길손이가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부처님도 참 성가시겠다. 그치? 누나 사람들이 자꾸자꾸 조르기만 하니까 부처님은 꼼짝도 않고 있는 걸 거야.”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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