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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가난한 라마들의 일상

기자명 법보신문

라마의 춤은 민초 위한 대자대비의 표현

 

마하깔라춤을 연습하는 라마들의 모습이 정성스럽게 보인다.

 

 

“린포체님! 이것을 한번 당겨보시지요?”


덕킁린포체의 도움으로 며칠 신세진 집의 큰아들 ‘초펠’이 우리에게 활을 자랑했다. 직접 만들었다면서 우리 일행에게 시위를 당겨 볼 것을 권했다. 우리는 각자 한번씩 시위를 당겨보았는데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초펠은 우리가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보더니 직접 시범을 보이며 거들었다.


“시킴에서 인기 있는 남자가 되려면 활을 잘 다루고 말을 탈 줄 알아야 합니다.”
웃음이 나왔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초펠의 한 마디가 놀랍고 재미있었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니, 문화적 차이이리라. 활을 자랑하는 초펠은 물론 그의 가족들은 우리 일행의 마음을 편안하게 배려해 주었다. 이것저것 세세히 신경써주는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럼 올라가 보겠네.”
우리가 잠 잘 곳을 확인한 후 린포체는 “쉬라”고 인사를 건넨 뒤 절로 올라가셨다.
“저희도 같이 올라갈게요.…손전등을 들고 가세요.”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직은 이른 시간이었다. 헤어지기가 아쉬웠고 가로등도 없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린포체께서 홀로 가시는 게 걱정스러워 방사에 짐만 풀어놓은 채 집주인이 내어준 손전등을 들고 ‘푸동사원’으로 향했다.
절 마당으로 발걸음을 들여놓자 은은한 염불 소리가 마음의 바닥을 잔잔하게 자극했다. 법향(法香)이 그득한 법당은 불빛을 맞아서인지 낮에 보았던 그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저기 저 나무를 보시게.”
도량의 장엄한 분위기에 넋을 잃고 빠져 있자니 린포체가 법당 앞에 있는 한그루의 나무를 지목했다.
“생긴 모양이 참으로 특이해요.”
“어떤 모습 같은가?”
“글쎄요. 나무가 법당을 향해서 굽어져 있는 것이 마치 절을 하는 듯 한데요.”
“그렇다네. 이 나무의 나이는 200세도 더 되었다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라면서 법당 쪽으로 굽어지더니 항상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되었지.”


세월에 비해 그리 큰 나무도 아니었다.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내가 살아 온 삶의 몇 배의 세월을 그 자리에 그렇게 서서 염불과 법문을 들으며 합장 배례를 하였을 나무 보살님,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도량의 법향과 항상 함께 했을 이 나무는 지극히 귀의하라는 의미의 ‘나무’(南無)이리라.


마당에 앉아 대나무 그릇에 공양

 

 

어린 동자승.

 


다음 날 우리가 일어난 시간은 새벽 4시였다. 밤을 지새우는 철야 기도에는 참석을 못했지만 새벽 기도에는 함께하고 싶었다. 우리 일행은 잠자리에 들기 전 새벽 기도에 참여하기로 약속했고 모두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간단히 세면을 하고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면서 절로 올라갔다. 마당에 들어서기 전부터 들려오는 법기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 없이 많은 라마들은 밤 지새며 정진했을 것이다. 라마들의 정진을 생각하니 단잠을 자고 일어나 법당에 앉으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에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찬 기운을 뒤로한 채 법당으로 들어서니 스님들의 정진으로 훈훈해진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우리 일행의 자리에 나란히 앉았으나 염불을 할 줄 모르니 그냥 염불소리의 음에 맞출 뿐이다. 둥둥 들려오는 북소리는 맥박이 뛰는 박자와 조화를 이루어서인지 이내 선잠에 들게 했다. 다섯이나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동자승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맨 뒤 줄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수행이 지루했던지 서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저들의 마음엔 적어도 탐욕이 없으리라. 순진무구한 모습에서 부처님의 미소를 보았다.


“공양하러 갑시다.”
동자승들을 따라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내 앞으로 한 라마가 다가오더니 “아침 공양시간이 되었다”며 손짓을 했다. 철야 정진도 안한 사람이 법의를 수한 채 졸고 있으니 한편으론 한심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손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법당 위층에 마련된 아주 특별한 공간에서 아침 공양을 들었다. 내가 밥을 먹었던 공양간은 손님이나 어른 스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일반 라마들은 출입을 하지 않는다. 공양을 마치고 마당으로 나온 순간 마음 속 깊이 미안한 광경이 펼쳐졌다. 법당 앞마당 가운데에 라마들이 둘러앉아 공양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나무로 짠 작은 그릇에 밥과 두서너 가지 반찬을 올린 소박한 아침 밥상, 그것으로 그들은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안함과 송구스러움, 그로 인한 불편함이 밀려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음 속으론 참회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만 찍으세요.”
그런 모습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 ‘제니’를 제지했다. 시드니에서 온 제니가 사진을 찍는 욕심이 그리 보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찍어서 보여 줄려고요.”
“누구에게요?”
“시드니 사람들에게요.”
“무엇을 위해서요?”
그녀의 행동이 못마땅해 참지 못하고 부드럽지 않은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랬다. 그러고 있을 즈음 초펠의 부인이 찾아왔다.
“아침공양을 하셔야지요?”
“이미 했는데요.”
“점심부터는 저쪽에 있는 곳으로 오셔서 드세요.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들이 깊이 배려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킁린포체께서 순례자들을 꼼꼼히 챙기셨던 것이다. 사뭇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가슴 한쪽엔 땅바닥에 앉아 공양을 들던 라마들, 특히 동자승들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린포체를 뵙자마자 여쭈었다.

 

 

푸동사원의 법당문 위에 있는 장식, 법륜과 두 마리 사슴, 두 마리 용의 모습이 이채롭다.

 


“린포체님! 라마들이 마당에서 공양을 하던데요?”
“그래서 어제 말을 했었지, 공양간부터 빨리 지어야 한다고. 이미 내가 준비해 두었네.”
린포체께서 설명을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럼 잘 보시게.”
“어디로 가시나요?”
“나는 ‘라랑’ 사원(Ralang Monastery)으로 가야겠네. 이번엔 ‘걀찹 린포체’와 서로 바꾸어서 행사를 치르기로 했네. 그래서 어제 오신거야.”
걀찹린포체는 시킴 왕국의 국사이며 라랑 사원은 국사가 주석하고 계시는 도량이다. 푸동사원을 떠나시는 덕킁린포체를 배웅하고 돌아 온 알버트가 내게 물었다.
“스님 저기에도 조그만 법당이 있는데 가볼까요?”
“그럽시다.”


우리는 법당 뒤쪽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법당으로 향했다. 그곳은 최근 벽화와 단청 불사를 회향해 도량의 전체적인 모습이 깔끔했다. 우리 일행이 안쪽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있을 때 단청을 담당했던 사람이 와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단청은 매우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기실 그곳에 가보고 싶었던 까닭은 삭발은 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받는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당 위층에 머무르고 있는 그 분은 라마 이상으로 존경받는 분으로서, 무척 뵙고 싶었으나 인연이 허락하지 않아 볼 수 없었다.


현지인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아직은 큰스님들로부터 인가를 받지는 못했으나 까규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도자라는 것이었다. 그런 지도자인데도 세상에 드러내 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라를 잃고 망명해 살아야하는 티베트 민족의 고충을 조금을 헤아릴 수 있었다. 언제쯤 그들은 이 땅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음이 착잡해졌다.


자비심 없이는 불가능한 춤 연습

 

 

푸동사원 법당의 아름다운 밤풍경.

 


“스님! 저 위에 앉으세요.”
법당 마당에 가보니 오른쪽 공간에선 악기를 배치하는 등 무언가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낯이 익은 한 라마가 우리를 보더니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인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방송국에서나 사용하는 카메라를 들고 촬영준비를 하고 있었다.


악기를 다루던 라마들이 이내 자리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법당 앞에선 라마들이 춤추는 자세로 네 명씩 한 조가 되어 둥글게 원을 그렸다. 그날은 내일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는 시간으로, 가면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라마들은 실제 공연처럼 오후 늦게까지 진지하게 연습했다. 우리나라의 굿거리장단과 흡사한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는 발과 몸 그리고, 손동작들은 간단하고 단순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흉내를 내보니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태양이 내리쬐는 무대에서 끊임없이 동작을 하던 라마들의 웃는 얼굴이 점점 변해갔다. 무척 힘들어 보였다.


나라면 저렇게 참을성을 가지고 공연을 할 수가 있을까. 아마도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시간을 헤아려 보니 대단하다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라마들은 이미 육일 동안 잠깐씩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주야로 염불을 했으며 5시간 이상 연속으로 ‘마하깔라춤’(까규파 전통의 가면 춤)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체력이 빼어나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 터, 지극한 신심이 있으니 정성스러움을 다하여 연습에 임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 언젠가 덕킁린포체께 물었다.
“밀교의 수행은 어떤 자세로 임해야 됩니까?”
“자신이 닦은 모든 것을 중생에게 회향하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이 없으면 어떤 수행도 이룰 수가 없어. 자비의 마
음이 바탕이 되었을 때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어.”


모든 것을 중생에게 회향하는 마음, 늘 ‘회향게’를 염송하고 있지만 나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하게 회향을 했었는가를 린포체의 말씀을 듣는 순간 되새겨 보았다. 그 후로 린포체의 한 마디 가르침은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마음을 불보살님의 마음으로 승화시키는 수행법으로 정진하는 ‘밀교’는 일체의 것을 중생과 함께 한다. 중생이 없으면 밀교란 가르침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계율에 따르자면 출가 수행자는 춤을 추면 안 된다. 그런데도 수많은 라마들이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춤 연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엔 신기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시원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의문이 풀리고 나니 라마들의 춤사위는 춤이 아니라 위없는 법문으로 다가왔다. 중생을 위한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만약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보거나 있는 그대로의 소리로서 자신을 추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분명 삿된 도리이니 여래를 볼 수 없게 된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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