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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푸동 사원에 귀의한 사람들

기자명 법보신문

린포체의 손끝 인연으로 새해를 시작하다

 

▲법석에 올라 관정수기를 주관하고 있는 걀찹린포체와 시킴의 불자들.

 

 

“꼬끼오~”
차가운 바람이 콧등을 시리게 하는 데 어디선가 닭의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골 향기가 가득한 닭의 건강한 외침이 반갑기만 하다. 이틀이나 아침을 같은 집에서 맞이했으나 해뜨기 전에 심하게 기침을 했던 터라 미처 듣지 못하고 있다가 고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만히 눈을 뜨고 이불을 정리하고 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왔다. 순간 마음이 쓰였다.


“라마들은 잘 쉬었을까?”
다들 일어나지 않았는지 조용한 분위기 속에 날은 이미 밝았다. 어두운 밤에는 잘 몰랐으나 눈앞에 선명하고 예쁜 풍경이 들어왔다. 천연의 노란 빛을 띤 옥수수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한 종자용이거나 가루로 만들기 위해 말리다보니 호박꽃보다 더 노랗게 빛을 발했다. 천연색이다.


아직도 잠에 들어 있는 이들을 위해 나무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오고 있는데 이미 부엌의 아궁이에선 나뭇가지 타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지난 번 어느 절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을 쬐는 고양이가 나를 보자 자꾸 울었다. 고양이가 이방인의 방문을 불편해 하는 것 같아 부엌으로 가지 않고 곧장 세면장으로 가서 씻고 나왔다. 일행들도 이미 기상을 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은 ‘푸동 사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오후엔 강톡에 있는 숙소로 가야하기 때문에 짐을 챙겨 절로 향했다. 법당 옆에 늘어선 가옥들 가운데 한 집으로 들어가 푸동 숙소에서 차려준 아침 공양을 들었다. 사흘을 머물렀을 뿐인데 우리가 머문 숙소의 사람들은 작별이 아쉬웠던지 공양이 끝날 즈음 식구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복잡한 세상이 아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어서 그럴게다. 며칠이었는데도 가족 같은 정감이 느껴졌다.


잠시 떠나기 전 짐을 맡겨두고 마당으로 나오니‘마하깔라’축제를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관정수기 법석을 준비하는 라마들이 보였고 끝없는 행렬의 사람들이 절로 이어지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법당 건물의 벽에 설치된 ‘마니 라코’( Mani Lhakor, 건물에 고정된 Player Wheel)를 돌리며 법당 벽을 한 바퀴 돌면서 소원을 빌고 난 뒤 법당을 참배했다. 순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엔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하다.


라마들의 춤으로 한 해 마무리

 

 

▲전통 의상을 입은 시킴의 어르신들이 관정수기 법회에 동참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후원에 들락날락하는 라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후원의 두 아궁이에선 진한 냄새를 풍기며 무언가가 푸짐하게 끓고 있었고 야외에 마련된 아궁이에는 물과 차를 끓이는 어린 라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예.”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한 그들은 각자 자세를 취하는 데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일에만 열중하던 라마들이 사진을 찍으려하자 카메라를 향해 경직된 눈빛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제 찍어요, 하나 둘 셋.”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나중에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더니 모두가 좋아라한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이번엔 발원을 담아 버터 등을 올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동자승이 열심히 등불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미 수많은 등불들이 공양을 올리는 이들의 정성을 담아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 동자승이 수줍게 미소를 띠었다. 때 묻지 않은 동자승의 얼굴은 그 자체가 천진불을 연상하게 하였다.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가 등불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왔다. 동자승은 가만히 나의 움직임을 살 필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불단을 차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절로 몰려들었다. 어제 왔던 사람들도 보였는데 특이한 점은 사람들의 숫자가 어제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겐가 그 연유를 물었더니 관정수기가 일 년을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이라고 답해 주었다.


‘그 옛날 불교가 국교로 추앙받고 민초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켰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이러 했을까?’
굳이 예전으로 가지 않더라도 우리네 시골의 아낙들과 불자들은 해마다 초파일이나 칠석, 백중, 동짓날이면 어김없이 절에 들르는 풍경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도 시킴의 불자들처럼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자주 들렀을 것이다. 교통도 불편했던 시절에 먼 길을 마다 않고 공양물을 이고지고 다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린포체께서 앉을 자리를 살펴본 뒤 노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절에 갈 때는 가장 성스러운 전통의상을 입는 풍습이 있어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화려한 색깔의 의상을 뽐내고 있었다. 오전 10시가 넘어갈 무렵 마당은 인파로 꽉 찼다. 그 모습이 흡사 한 폭의 장엄한 탱화 같았다. 라마들의 악대가 풍악을 울리며 법당에서 나왔다. 그때까지 주변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어디에 앉을까 고심하다가 린포체가 앉을 불단의 바로 앞에 앉았다.


이윽고 야단법석이 시작됐다. 전날의 ‘마하깔라춤’이 중생의 염원을 담아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인 ‘마하깔라’를 청해 지난 죄업을 씻었다면 오늘은 부처님을 대신해 ‘걀찹 린포체’(Gyaltsab Rinpoche)’가 부처님의 마음을 중생에게 심어 앞으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법석이다. 그날의 행사가 얼마나 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법석이 시작될 무렵이 되자 널따란 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빼곡했다.


의식에 맞추어 행사가 진행됐고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숨죽은 듯 조용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두 시간 가량 진행되는 의식에 집중하는 그들의 일치된 불심이 감탄스럽기만 하다. 알아듣지 못하는 염불에 맞추어 의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전체적인 흐름을 살피면서 린포체의 모든 동작에 집중했다. 한 치의 어색함도 없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린포체의 법체에선 계정혜(戒定慧)의 가르침이 분출되는 듯 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기운이 많이 필요해.”


새해 기도법석 펼쳐 행복 기원

 

 

▲푸동 사원 법당 앞에서 어린 라마들과 함께 한 필자.

 


지난해 시드니에서 덕킁린포체가 문수보살 관정수기를 마치고 내게 웃으면서 한 말이다. 법좌에 앉아서 수기를 하는데 받는 사람은 잘 알지 못하지만 수기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법력으로 온 마음을 집중해 수계자에게 보시한다고 설명했었다. 마음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동요가 없어야 한다. 그날 ‘걀찹린포체’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 법기나 공양물을 다루는 라마들이 법의를 입에 물고 호흡까지도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는 법석을 더욱 엄숙하게 했다.


행사에 집중했던 사람들은 약이 들어있는 것을 나누어 줄 때가 되자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관정을 받을 때가 되자 그 많은 사람들이 앞에 먼저 서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토록 고요했던 불자들이 아니었던가, 그 어느 법석을 가든 불자들은 법을 보면 정성스럽게 법에 귀의하는 듯 하지만 눈앞에 법과 공양물을 개인적으로 받아야 할 때는 순간 중생심이 살아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여느 법회에서처럼 큰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없었고 뒤 사람에 의해 밀리면서도 웃는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라마들은 마당 뒤편이나 법당 앞에 앉아 일반인들의 순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린포체와 불자들의 지극한 노력들을 사진에 담았다. 몰래 사람들을 찍어야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소리를 내지 않고 ‘티’ 안 나게 찍으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한 라마에게 들켜 버렸다. 법당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찍다가 들켰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나를 보고 자세를 잡을 테니 다시 찍으라며 손짓을 했다. 찍히고 나서는 나에게 같이 찍자고 권하기도 했다. 머나먼 이국의 시킴에 있는 고찰에서 그곳의 스님들과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인파가 어느 정도 빠져 나간 후 나 역시 관정을 받았다. 관정을 기다리기 위해 줄을 섰던 라마들도 관정을 받았는데 그들의 얼굴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청정함 그 자체였다. 아마도 그것이 부처님의 얼굴이요, 보살의 마음이리라.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동자승부터 노승에 이르기까지 함께 모여 관정수기를 받으며 한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법석에선 각자 소원을 비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색다른 경험을 했지만 라마들은 8일 중 7일 동안 기도와 ‘마하깔라춤’ 그리고 관정수기에 몰입했고 동참한 불자들은 일 년의 끝과 시작이라는 그 시간 속에서 마음에 깃든 묵은 때를 정화하고 새로운 서원을 마음에 담아 귀가했다. 그냥 해마다 하는 평범한 행사 같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부처님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푸동 절에서의 마지막 점심 공양을 들고 나서 라마들이 준비해준 차를 타고 강톡으로 출발했다. 절을 떠나는 이별에는 강한 미련이 배어 있었다.
“어린 라마들은 어딜 가는 것인가요?”
“집으로 가는 겁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린 라마들이 차를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흥미로운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일 년에 한번 ‘마하깔라’ 기도와 관정수기를 마치면 속가로 돌아가 일정기간 쉬고 온단다. 그들을 데리러 온 가족들까지 법석에 동참해 사람들이 그리 많았던 것이다. 길에는 푸동 절에서 출발한 차들이 기차처럼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길을 내려오다 보니 산사태가 나서 몇 대의 차량이 멈추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가 탄 차도 멈추었다. 그런데 움직일 수 있는 시간까지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가를 가늠할 수 없어 차에서 내렸더니 대부분의 차량에서도 사람들이 내린 상태였다. 여자들은 차 안에 있고 남자들은 내려서 상황을 살폈다. 급한 우리의 모습과는 달리 시킴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냥 길이 정리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30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니 길을 막았던 흙은 길 아래로 밀려났고 앞길이 환하게 열렸다. 두어 시간을 달려 강톡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푸동 절은 어땠습니까?”
간단하게 짐 정리를 한 뒤 저녁 공양을 했다. 덕킁린포체가 오기를 기다리며 우리끼리 차를 마시는데 밖에서 돌아오던‘소남’이 환하게 웃으며 소감을 물었다.
“좋았어요?”


우리는 한결같이 “네”라고 답했다. 제니는 한 마디 덧붙여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가서 의식을 지내보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러한 미련이 남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일었다. 한참을 우리끼리 푸동 절에서의 느낌에 대해 대화하고 있을 때 린포체가 돌아오셨다.


동네사람 8일 동안 일심 정진

 

 

▲관정수기를 위해 줄을 선 라마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어땠는가?”
린포체도 소남처럼 푸동 절에서의 느낌을 물었다. 물론 답은 같았다.
“등불은 잘 켰나?”
“모르겠는데요.”
“뭐라고 등불을 켜지 않았어? 자네들이 켤 수 있도록 준비하라 했는데….”
“바빠서 챙기지 못했겠지요.”
“안되지, 당장 전화해서 공양금을 돌려보내라고 해야겠구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공양금은 그들에게 ‘독’이 될 뿐이야.”


덕킁린포체의 반응은 의외로(?) 단호했다. 우리들이야 그들의 수행을 위해서라도 공양금을 댓가 없이 그냥 두고 왔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건만 린포체는 달랐다. 어느 한 순간도 출가자의 삶에 잘못된 인연을 지을 수 없다는 가르침이 배어 있었다. 누군가의 잘못된 연민으로 한 수행자의 습의와 계행이 흔들리게 된다면, 바른 길을 갈 수 없게 된다면 그 수행자는 물론이요, 원인을 제공한 사람까지도 악연을 피할 수 없다는 교훈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알기는 쉬운 당연한 가르침이지만 순간 지킬 수 없는 게 일상의 계행이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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