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서는 언어를 통해서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언어로 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능엄경)
선(禪)에서는 흔히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여 언어가 필요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원래 이 불립문자라는 말 앞에는 ‘불리문자(不離文字)’라는 말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불리문자라는 말은 ‘(물론 언어는 필요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진리는 언어를 떠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의 차원에서는 마치 그릇을 버리면 물건을 담을 수 없듯이 언어를 떠나면 진리의 포착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언어를 재도지기(載道之器)라고 했다. 이 말은 ‘언어란 진리를 담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이 그릇 속에 아주 좋은 술을 담았는데 그걸 마시지 않고 계속 그릇만을 들고 서 있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물을 먹기 위해서는 그릇이 필요하듯,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진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언어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을 좀 했다고 해서 무조건 언어를 거부하고 불립문자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동시에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어만을 붙들고 서 있어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불립문자’와 ‘불리문자’ 사이에서 마치 시계추처럼 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는 수레를 타고 가야한다. 그러나 더 이상 길이 없을 경우에는 수레에서 내려 두 발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우파니샤드)
그렇다. 여기서의 차(수레)는 ‘언어’에 해당한다. 언어로 갈 수 있는 곳까지는 언어를 매개체로 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굳이 불립문자를 주장하여 처음부터 아예 언어를 거부하고 걸어간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이런 식의 극기훈련은 한낱 체력소모요 시간낭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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