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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성스러운 도량 ‘룸텍’

기자명 법보신문

300년 동안 전법제일 까르마파를 받들다

 

▲1960년에 완공된 시킴 최고의 승려교육기관인 룸텍 사원 전경.

 

 

“야리! 어쩐 일로 시킴의 전통의상을 입은 건가요?”
시드니에서 함께 순례에 동참한 ‘야리’가 며칠 전 맞춘 시킴의 옛 의상을 입은 모습을 보고 물었다.
“오늘이 린포체님 생신입니다.”
“생신이라고요?”


덕킁 린포체의 생일이라는 말에 문득 ‘린포체께 생일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침 ‘소남’도 전통 옷으로 갈아입고 지나가고 있어 물었더니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어떤 의미이냐고 질문했는데 린포체의 정확한 생일은 모른단다. 다만 인도에 망명을 한 뒤 만든 여권에 적힌 생일에 맞추어 축하를 한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날 아침 우리 일행이 머물고 있었던 그 집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전통의상을 입었다. 모두들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은 할 일이 없어 한가했다. 그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모두 법당으로 올라오세요.”


법당으로 올라가니 불단에는 여러 가지 공양물들이 정성스레 진설되어 있었고 우리가 모두 모였을 즈음 린포체께서 들어오셨다. 가사를 수한 덕킁린포체는 부처님께 예를 올렸고 미리 준비한 ‘카타’로 모든 이의 축복을 기원하면서 케이크를 잘랐다.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당신의 생일을 지내는 것뿐이지 린포체에게 생일은 큰 의미가 없으리라. 린포체로서의 생(生)이 열 번이 넘었는데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이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의 얼굴은 그저 담담할 뿐이다. 린포체의 담담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시드니에서 불단을 직접 짜고 있던 그의 얼굴이 생각났다. 언제 그렇게 목수 일을 배웠느냐고 여쭈니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여섯 살 때부터 목수 일을 다녔지.”
“너무 어린 나이인데요?”
“그러게 말이네. 어린 나이 맞지.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16세 까르마파께서 우리 어머니에게 이미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주시면서 써준 편지가 있었어. 우리 형제들 모두 린포체인데 다들 파가 달랐지. 겔룩파도 있고 사캬파도 있고…, 그런데 나는 까규파잖아. 세살 때 절에 가서 린포체 수업을 받았고 다섯 살 때가 되니 정부에서 나를 절에서 살지 못하게 해 집으로 돌아왔지. 그런데 여섯 살 때부터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한 거야. 우리 어머니는 무척 엄하신 분이라 내가 벌어오는 돈을 허투루 쓰지 못하게 했어. 내겐 조금의 돈만 나누어 주시고 나머지는 모두 저금을 하셨어. 그러면서 약사 일도 배우고 어려서부터 많은 일을 경험했지.”
“그렇군요.”
“히말라야를 넘어 온지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남은 가족들은 어찌 되었는지….”


1730년 까르마파 9세가 조성

 

 

시킴의 수도인 강톡의 주거지 풍경.

 


말을 잇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던 당시 린포체의 얼굴이 오늘 생일상을 받는 린포체의 표정과 비슷했다. 생일날 씁쓸해 한 린포체의 얼굴, 아마도 티베트가 처한 현실과 같으리라. 중국 공산당에 의해 자신들의 아름다운 전통을 하나 둘 잃어가고 있는 티베트의 현실은 더욱 가혹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것 좀 보시게.”
시드니에서 온 순례자들만 법당에 남았을 때 린포체는 액자에 담긴 청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게 뭔가요?”
“내가 건립하고 있는 절일세.”
“그래요, 언제 볼 수 있나요?”
“이미 누가 땅을 보시했고 정부에 설립 허가를 신청해 놓았지. 양로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지형에 맞게 설계를 했는데 괜찮아 보이지 않나? 내년엔 착공을 할 수 있을 걸세.”
“그렇군요. 그럼 다음 번엔 여기에서 머물면 되겠네요.”
“허허.”


앞으로 건립할 린포체의 사원은 모든 사람들이 와서 머물 장소이며 특히 노인들의 양로시설을 갖춘 복지도량이었다. 티베트의 의술을 익힌 덕킁린포체 혼자서 모든 병자들을 돌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시킴 사람들은 의료시설이 너무나도 열악해 우선 응급치료만 받고는 인도의 수도인 델리로 치료를 받으러 나간다. 린포체가 복지도량을 짓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인데 복지도량이 완성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린포체께선 도량의 청사진과 함께 티베트 고향에서 라마들과 찍었던 사진도 보여 주었다. 린포체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거실로 내려오자 ‘소남’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스님은 시킴에온지 며칠이나 되셨는지요?”
“글쎄요? 아마도 2주쯤 된 것 같은데요.”
“그럼, 체류기간을 연장해야 되는데….”
“그래요?”


시킴에 들어오려면 인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인도 비자를 받은 다음 시킴에 체류할 기간을 확정해야만 한다. 머무는 기간이 14일이 되면 다시 연장을 해야 한다.


“그럼, 몇 번이나 연장이 가능한가요?”
“외국인은 45일까지 연장이 가능해요.”
“그렇군요.”


이미 시킴에 온지 2주가 훌쩍 지나 버렸다. 하루도 그냥 평범하게 보낸 날이 없었기에 머문 기간이 그렇게 많이 된 줄은 미처 몰랐다. 린포체의 곁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린포체는 항상 민초들의 아픔을 어루만졌으며 그의 아름다운 보살행은 내겐 너무나도 훌륭한 법문이었다. 린포체의 법문은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는 경책이 되었으며 이생에서의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좌표가 되었다.


그날 하루도 꿈을 꾸듯 지나 버렸다.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갔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자 이제는 시킴이 익숙해진 까닭에 아침 산책을 나서 보았다. 길가 곳곳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면서 걷다보니 동녘에선 눈부신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고산인지라 태양 빛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새털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햇살이 골고루 퍼지면서 살짝 낀 안개를 몰아냈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 멀리 숙소가 보였다. 높이 솟은 산 아래 마을의 건물들이 붉게 물들어 마치 벌집을 연상케 했다.


마을로 내려오던 길에 아주 소박해 보이는 부부를 만났다. 아낙네는 바구니에 야채를 잔뜩 담았고 남정네는 굵은 목재 두 개를 어디론가 운반하고 있었다. 아낙의 모습은 어릴 때 보았던 양철통 물동이를 머리에 인 우리네 농촌마을의 어머니 같았다. 집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다란 계단으로 된 길이 동심을 자아냈다. 그곳을 따라 가보니 담벼락 아래에 부끄러운듯 연두색 물든 싹이 눈에 들어왔다. 연두색 싹은 배추 같아서 된장에 싸먹어도 좋을 듯 했다. 아는 길이라면 두어 시간이상 걸어도 좋으련만 초행길이다 보니 멀리 나갈 수가 없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화재로 전소…50년 전 복원

 

 

룸텍 사원의 입구.

 


“오늘은 ‘룸텍 사원’에 갑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설레였다. 드디어 룸텍 사원에 가다니, 다른 사람들은 내가 오기 전에 이미 갔는데 나만 가지 못했으니 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하게 일었다. 점심공양을 간단히 들고 나서 우리 일행은 ‘룸텍 사원’으로 향했다.


룸텍 사원은 시킴의 수도인 강톡에서 24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룸텍 사원은 히말라야를 넘어 시킴에 온 제16세 까르마파 존자에게 시킴의 마지막 왕인 ‘쵸걀 팔덴 뙨둡 남걀’(Chogyal Palden Thondup Namgyal)이 공양을 올린 터에 지은 절로, 1960년에 조성됐다. 1730년 제9대 까르마파 존자가 지은 본래의 룸텍 사원은 지금의 룸텍 사원에서 15분쯤 아래로 내려가야만 도착할 수 있다. 본래의 룸텍 사원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룸텍 사원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달마차크라센터’(Dharma Chakra Centre)는 교육기관인 강원으로, 공부하고 있는 라마들이 무려 400명에 달한단다. 두 번 째 ‘달마챠크라센터’에 오르는 길목은 제16세 까르마파의 혀와 심장과 눈을 봉안해 놓은 사리탑인 ‘골든수투파’(Golden Stupa)가 있는 공간이다. 수투파의 높이는 까르마파 발바닥 길이의 13배 높이로, 대략 3m 정도이며 수투파의 이름을 ‘골든’으로 한 까닭은 순금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사리탑 주변에는 제1세 까르마파부터 제16세 까르마파의 존상이 봉안돼 있으며 존자를 존경하는 수많은 불자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제16세 까르마파 존자가 주석했던 건물인데 이미 폐허가 된 상태로, 이젠 건물터만 남아 있다. 마지막은 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법당 건물로, 일층에는 큰 법당이, 위층에는 작은 법당이 있었다. 법당 앞마당에 높이 조성된 비석이 그곳의 오래된 역사를 대변하는 듯 했다.


우리가 ‘달마차크라센터’에 들렀을 때에는 방학을 해서 그런지 라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절에 들어가는 과정은 매우 삼엄(?)했다. 산문 입구에서 신분증을 검사하고 절 마당에 들어서기 전 공항에서나 있을 법한 검사대가 있었고 몸수색 과정도 거쳐야 했다.


도량에 들어가는데 몸수색이라니, 궁금해서 린포체에게 물었다.
“왜 저렇게 검사를 하고 통과를 합니까?”
“이 절을 지키기 위해 내가 정부에 요청한 걸세. 나는 볼일이 있어 먼저 갈테니 둘러보시게나.”
법당으로 들어가려다 보니 어린 라마가 수줍은 얼굴로 우리에게 ‘신발을 벗어야 된다’고 일러 주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앞에 까르마파 존자상이 봉안돼 있었다. 낯선 분위기인지라 순간 멈칫했지만 삼배의 예를 올리고 법당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 2층 법당으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염불을 하면서 법당을 돌고 있는 노인과 햇볕을 쬐면서 쉬고 있는 노인들 그리고 법당을 지키고 있는 동자 라마의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 차 있다.


“저기로 가시지요.”
이미 이곳을 참배했던 ‘알버트’의 안내로 ‘골든수트파’가 있는 곳으로 향했으나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었다. 우리는 문이 열리는 시간까지 기다려 기어이 참배했다. 문이 열리는 시각이 되자 여러 명의 라마들이 와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수트파를 향해 예를 올린 뒤 관리인 라마의 도움으로 유리문의 열쇠를 따고 들어가 열여섯 까르마파의 존상까지 친견했다. 제16세 까르마파가 지내셨던 건물을 참배했는데 여러 해 동안 돌보지 않아서인지 유리창은 깨졌고 천장은 내려앉았다. 마루도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주인을 잃어서일 게다. 집은 한 명의 주인만을 그렇게 아픔을 견디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 주인이 다시 올 수 있을지….


라마 400명 전통강원서 수학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3층에 있는 법당.

 


“인도 수상까지 만나 얘기를 해 봤어.”
덕킁 린포체가 “제17세 까르마파 존자를 시킴에 모시려고 인도의 수상까지 만났으나 인도와 중국의 외교문제 때문에 인도정부에서 쉽게 허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린포체가 인도 수상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씁쓸해했던 옛 일이 생각났다.


“여기는 내 삼촌이 쓰시던 곳이야. 그래서 내 방은 여기에 세 개나 된다네. 이곳은 다른 라마들이 사용하고 있어.”


절을 모두 참배하고 내려오자 린포체는 우리 일행을 도량의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안내했다. 이층의 맨 끝에 딸린 곳으로 들어가니 린포체가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린포체의 오래된 흑백 사진과 물건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히 설명을 하시는 린포체의 모습은 어린아이 같이 순수해 보였다. 일체 분별의 마음과 삼독(三毒)으로부터 자유로운 린포체의 맑은 얼굴에선 성스러운 보물인 계정혜(戒定慧)의 빛이 발하고 있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염불에 집중하고 있는 시킴의 노인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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