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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형태의 불교 [하]

기자명 법보신문

“서구명상센터엔 수행만 있고 친목이 없다”

한국도량에선 불자모두가 함께 수행하고 울력
여성불자들 공양간서 요리하면서 우의도 다져
한국도량의 장점은 다양한 세대 공존하는 것

 

 

▲수미런던 법사는 “한국의 사찰에서 가장 이채롭고 긍정적인 모습은 주부 불자들이 함께 요리하고 교류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부산 불교계의 무료급식소인 허허원의 주부 불자들.

 

 

뉴욕의 한국도량인 불광사의 법당에서 절과 염불 수행에 진력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소진되었다. 이내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그 공양간은 모든 사람들이 몰려들어 일순간 북적이기 시작했다. 가장 덜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아마도 새로운 참여자들)이 모여 있는 식탁의 끝 부분에서 우리는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러한 예상은 빗나갔다. 의외로 오늘 처음 이곳에 온 우리 일행은 2층으로 올라가 스님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것은 적어도 나의 생각으로는 정당해 보이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서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원에서의 여러 단계의 계층을 건너뛰어 최고 위치로 상승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다른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듯이 보였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우리는 손님이었고 한국 사회에서 손님은 항상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땐 그랬다.


우리가 맛있으면서도 놀라움으로 가득한 점심공양을 하는 동안 주지 스님이 어떻게 영적인 지도자인 동시에 행정상의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다른 한국 사찰의 주지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불광사 주지 휘광 스님은 법문을 해야 하면서도 또한 전기 요금이 틀림없이 납부되도록 해야 했다. 이러한 형태는 서양식 불교 센터들이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조직 모델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서양식 모델은 서비스 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비영리 행정시스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바레’에 있는 명상수행센터는 이사회와 집행 임원, 직원, 법사회 등을 두고 있다. 법사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지만 운영과 관리 영역에 있어서는 이사회에 안건을 제출하는 집행 임원과 직원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휘광 스님이 재가 불자와 손아래 스님들을 지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주지’ 제도의 효율성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이 영적 지도자로서는 훌륭하지만 행정관리자로서는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 또는 그 반대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원은 이를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 나는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바깥에 나가 아이들이 뛰어 놀고 사람들이 서로 친목 도모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내가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원의 한 기능으로, 즉 ‘사교의 장’을 위한 역할이었다.


공동체 속에서 성장한 나에게 서구식 명상센터는 ‘커다란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세대가 서로 섞이고 대화할 수 있는 것이 허용되는 한국 사원이 바로 그 무엇인가에 대해 해답을 주는 공간이었다. 구성원들은 서로 간에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다.


때로는 서로를 싫어할 수도 있을 만큼의 긴 시간 동안 사찰은 교류하고 대화하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번 방문에서 ‘나’ 자신은 정확히 어느 한 쪽 유형에도 속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교 개종자로서 명상 수행이 불교를 규정한다는 학생들의 입장에도, 명상을 주요 수행법으로 행하지 않는 아시아인 불자들에게도 속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캠브리지로 돌아오자 낯선 외국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머물렀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곳 역시 미국 땅이었음에도, 우리가 머무른 시간이라고 해봐야 단지 24시간에 불과했는데도 그러했다.


두 종류의 불교가 얼마나 다른지 확실히 이해를 했고 이렇게 다른 불교를 서로 근접시키도록 누군가가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언어와 문화에 의해 분리된 두 종류의 불교이지만 한국계 미국인의 다음 세대와 불교의 종교적 측면에 보다 친숙해진 미국인들에 의해 차이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될 시점까지만 ‘그러할 것’이라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여러 차례 불광사를 방문했다. 휘광 스님과 다른 불자들은 항상 나를 ‘법우’로서 반겨주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눈에 거슬렸던 ‘불단’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불단에 봉안되어 있는 화려한 부처님과 꽃, 여러 종류의 과일, 전깃불이 처음엔 현란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대부분의 서양식 수행센터가 부처님이나 어떤 형태의 장엄물이 있을지라도 최소한의 수준에 멈추고 있었기에 그러한 한국식 불단을 처음 보았을 땐 충격적이었다.


그랬는데도 이젠 이 불단의 부처님에 대한 견해 역시 너무나도 많이 교정되었다. 불단의 부처님은 너무나도 정교해서, 마음이 불상의 금빛 선을 따라가다가 분홍빛 연꽃에서 멈추면서 그것을 끊임없이 명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방편으로 변했다. 남녀 불평등의 전형을 한국의 도량에서 보았다는 시각 역시 바뀌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의 도량은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 분명하여 좀 더 조화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어머니들이 사찰의 공양간에 모여서 요리하고 청소할 때 이런 시간은 다른 여성들과의 사교의 시간이 된다. 그것은 내가 다른 여성들과 모여 아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가운데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이다.


결국 한국 사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의식과 법우들 간의 교류는 매우 중요한 심리적 토대와 공동체 구조를 제공하고 있고 서양식 명상센터들은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수미런던 지도법사
서양의 명상센터 단지 수행에만 전력하지 않고 방선이나 휴식, 공양시간 등을 불자들에게 자유롭게 개방한다면 보다 더 자연스러운 수행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삶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이다. 
 

수미런던 듀크 불교공동체 지도법사 simplysumi@gmail.com 
번역 백영일 위원 yipaik@wooribank.com


다음은 영문원고 전문.

 

A Totally Different Style of Buddhism

 

When lunch came, we were thankful because the hall had become hot with everyone packed in. We students expected to eat at the end of the table of the least important-seeming (newest, perhaps) members, but instead we were asked to go upstairs and eat with the monks. To us, this did not seem right. Just because we were Westerners, we were bypassing the various social ranks in the temple and going right to the top? But the members didn’t seem to mind at all, which puzzled me even more. Today I understand that we were guests, and in Korean society, guests are always given excellent treatment.

 

During our delicious, amazing lunch, I got to see how the abbot of the temple was both spiritual head as well as administrative head. Hwi-gwang Sunim, like the abbots of other Korean temples, had to give dharma talks as well as make sure the electricity bill got paid. I realized this was an entirely different organizational model than the one Western centers tend to use. Most of them are based on a non-profit administrative system that is used, for example, by service organizations. The meditation center in Barre, Massachusetts has a board of directors, an executive director and staff, and a board of teachers. The teachers have the greatest authority, in many ways, but when it comes to operations and management, it’s the executive director and staff who enact the agenda of the board. Watching Hwi-gwang Sunim direct lay members and junior monks, I could see the efficiency of the abbot system. But I also wondered about how temples handle the situation when an abbot is maybe good as a spiritual teacher but mediocre as an administrator, or vice versa.

 

After lunch, we stood around outside watching the children play and people socialize. This was one aspect of the temple I really appreciated, its sociability. I had visited so many Western centers where people arrive, meditate, and leave, without saying hardly a word to each other. Having grown up in community, I always felt something huge was missing from other Western meditation centers. But here it was at the Korean temple, with several generations intermingling and speaking allowed. The members clearly had very long relationships with each other -- enough to sometimes dislike each other! On this visit, I realized that I did not exactly belong to either group -- neither the students who as converts felt that meditation defined Buddhism, nor the Asian Buddhists who did not meditate as a primary form of practice.

 

When we all got back to Cambridge, we felt like we had been in a foreign country for a long time, even though we were still in America and had been there for only 24 hours. I certainly understood just how different our two Buddhisms were, and I became skeptical that anyone should try to make these different Buddhists come together. I felt at peace that we would be two styles of Buddhism, separated by language and culture, until the next generation of Korean Americans, as well as Americans more comfortable with the religious aspects of Buddhism, could begin bridging the gap.

 

In the years that followed, I made many more trips to Bulgwangsa. Hwi-gwang Sunim and the members always welcomed me as a friend in the dharma. Over time, I came to appreciate the beauty of the altar. Because it was so elaborate, one could meditate endlessly on it, allowing the mind to trace the gold lines and to rest in a pink lotus. I also began to see how divisions by gender could lead to a more harmonious community, in some ways. When the Korean mothers came together to cook and clean, this was also a time to socialize with other women, in the same way that I gather with other women -- you speak more freely without “the boys” there. Finally, the rituals of a Korean temple provide very important psychological supports and community structures that are missing in Western ce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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