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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호랑이 [하]

기자명 법보신문

목숨 살려준 은혜 갚아 사찰 창건 도움

 

▲청량사지 7층 석탑.

 

 

다짜고짜 호랑이는 스님 앞에서 아가리를 벌리기 일쑤였다. 목에 걸린 비녀를 빼달라는 거다. 어지간히 여인네들을 취한 모양이다. 그런데 꼭 처녀를 스님에게 물어다 놓았다. 스님을 유혹(?)하는 호랑이일까. 얘기는 기묘하게도 사찰 창건 설화와 얽힌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보다 멀지 않은 옛날이다. 신라시대 두운 대사가 소백산 기슭 동굴에서 수행할 때다. 가끔 호랑이가 물끄러미 보다 가곤 했다. 하루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낑낑댔다. 목에서 비녀를 빼주고 나니 척! 처녀를 스님 앞에 데려왔다. 스님은 아픈 처녀를 지극정성 보살폈다. 완쾌한 처녀가 어찌 가만히 있을까. 냉큼 절을 보시했다. 은혜를 갚아 기쁘다는 뜻의 ‘희(喜)’, 두운 대사의 참선방을 상징하는 ‘방(方)’을 써 희방사(喜方寺)라 했다.


고려 말 참의벼슬을 지낸 조한룡은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출가했다. ‘세염(洗染)’이란 이름으로 만행을 하던 스님은 나주 불회사를 복원코자 탁발을 했다. 어김없이 호랑이는 목에 가시마냥 비녀를 걸고 나타나 입을 벌렸다. 살생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비녀를 빼자 호랑이는 처녀를 물어다 절 마당에 내려놨다.

 

스님은 처녀를 간병해 돌려보냈고, 부모는 스님 걸망에 쌀을 시주했다. 하지만 걸망은 쌀을 붓고 부어도 차지 않았다. 결국 곳간을 열었고 스님은 신통력으로 쌀을 불회사로 날려 보냈다. 수미산만큼 많은 쌀을 보관한 곳이 화순 ‘중장터’란다. 화순 운주사와 나주 불회사 사이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어쨌든 스님은 시주받은 쌀을 밑천으로 불회사를 복원했다고. 


‘호랑이의 유혹(?)’을 물리친 스님도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일이다. 상원 대사 앞에 호랑이가 출현했다. 입을 열었다. 이번에 사람 뼈였다. 역시 처녀를 물고 왔고, 대사는 기절한 처녀를 돌본 뒤 겨울이 지난 이듬해 봄 집에 데려다줬다. 그런데 부모는 부부의 연을 맺기를 간청했다. 몇 번을 거절했으나 처녀는 수행처까지 따라왔다. 마침내 대사와 처녀는 의남매를 맺고 계룡산에 청량사를 짓고, 따로 암자를 마련해 수행했다. 이 얘기가 바로 계룡산 청량사지 5층 석탑과 7층 석탑 전설이다. 두 탑을 남매탑이라 일컫는다. 

 

 

▲청량사지 5층 석탑.

 


때론 호랑이가 호법신장이었다. 구족계를 받은 뒤 5년 운수행각을 마친 구산 스님은 호랑이 굴 옆을 수도처로 택했다. 끈질긴 졸음을 내쫓고 잡념을 제거하고자 일부러 그랬다. 1000여일을 정진했다. 토굴 근처에 채마밭을 갈아 재배한 곡물을 양식으로 삼았다. 그러나 수확기엔 어김없이 산돼지가 들끓었다.

 

그때마다 몽둥이를 들고 고함을 지르며 쫓아냈다. 어느 날 집채 만한 산돼지는 스님을 힐끗 본 뒤 다시 채마밭을 들쑤셨다. 그 때! 돌연 호랑이가 산돼지를 쫓아냈다. 그 뒤로도 스님이 정진하던 시간 동안 채마밭을 지켰다. 경허 스님의 세 달로 일컬어지는 수월 스님이 두만강 너머 나자구에 머물 때 호랑이가 따라다녔다는 말도 전해진다. 법력에 감화한 것이리라.


‘삼국유사’ 감통편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파격적인 사랑을 나눈다. 낭도 김현은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며 열심히 염불했다. 삼매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그 와중에 탑돌이를 하던 여인과 정이 움직여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으슥한 곳에서 관계(通)한 뒤 여인 집까지 따라 나섰지만 호랑이 소굴이었다.

 

세 오빠의 악행으로 죽음을 택한 여인은 마을 사람을 해칠 테니 김현에게 자신의 목숨을 거두라고 설득한다. 부부의 연을 맺고 정을 통했으니 말이다. 김현은 2급 벼슬을 사사했고, 훗날 호랑이를 죽인 자리에 아내의 넋을 기려 호원사를 창건했다. 김현이 죽을 때 남긴 ‘논호림’이란 기록에서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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