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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목갈라나

기자명 법보신문

초기불교교단 안정·발전 위해 헌신한 신통제일

산자야 제자서 앗사지 비구 만난 후 출가
사리풋타와 더불어 부처님 2대 제자 칭송

 

 

▲ 삽화=김재일 화백

 


지혜제일 사리풋타와 더불어 부처님의 2대 제자로 꼽히는 목갈라나. 목갈라나는 라자가하의 북쪽에 위치한 코리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코리타(Kolita). 인근 마을에 사는 사리풋타와는 어릴 적부터 함께 뛰놀며 자란 죽마고우였다.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목갈라나는 유복한 청년기를 보내며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16세의 어느 날 친구 사리풋타와 함께 산정제(山頂祭)를 구경하러 가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일까. 넘쳐나는 인파로 축제의 흥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두 사람은 똑 같이 이런 생각을 했다.


‘참으로 화려한 축제로구나. 하지만 100년 후에는 무엇이 남으리….’


그 어떤 행복도 아름다움도 시간이 지나면 한 순간 꿈처럼 저 멀리 사라질 수밖에 없는 무상한 것임을 느낀 것이었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의지하여 수행할 스승을 찾다가 당시 라자가하에서 크게 번영하고 있던 산자야의 교단으로 들어가게 된다. 누구든 먼저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을 인도해 주자는 약속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열심히 수행 정진했다. 그러나 산자야의 교설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던 그들은 낙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라자가하에서 우연히 앗사지(Assaji)라는 비구를 만나 불법을 접하게 된 친구 사리풋타와 함께 목갈라나는 부처님을 찾게 된다. 한편, 저 멀리 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본 부처님은 “저 두 사람이야말로 내 제자 가운데 신통·지혜제일이 될 것이다”라 예견하시며, 캇사파 형제 위에 앉게 하셨다고 한다. 이를 보고 캇사파의 제자들 가운데 불만을 터뜨리는 자도 있었으나, 부처님은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특별하다고 하시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셨다. 이후 두 사람은 항상 부처님의 좌우를 장식했다. 오른쪽에는 지혜제일의 사리풋타가, 왼쪽에는 신통제일의 목갈라나가 앉았다. 이 둘은 서로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결코 상대방을 견제하거나 비방하는 일 없이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며 수행에 힘쓰는 그야말로 최고의 도반이었다.


이교도 폭행으로 생 마감해


온화하고도 순수한 성품을 지닌 지혜로운 수행승 사리풋타와는 달리, 목갈라나는 행동형의 전통적인 수행승이었다. 아마도 서로 다른 성격이기에 두 사람은 더욱 더 서로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한때 부처님께서 아마라키원에 계실 때였다. 안거를 끝낸 목갈라나와 사리풋타는 각자 500명의 비구를 데리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찾았다. 안거 기간 동안 잘 지내셨는지 안부도 묻고 그 동안 못 들었던 가르침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먼저 와 있던 비구들과 나중에 도착한 비구들 사이에 그만 싸움이 발생하고 말았다. 부처님은 각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였던 목갈라나와 사리풋타의 부덕을 꾸짖으신 후 그곳으로부터 떠나도록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훗날 부처님은 두 사람에게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사리풋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500명의 비구를 버리고 홀로 조용한 곳에 가서 살고 싶어졌습니다.”
한편 목갈라나는 대답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비구들의 분열을 막을 수 있을까 궁리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목갈라나를 칭찬하시며 사리풋타에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너를 의지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하셨다고 한다. 대조적인 두 사람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목갈라나의 신통력은 출중한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6신통이라 하여 원하는 장소에 자유롭게 출현할 수 있는 신족통, 사람들의 미래의 운명을 예견하는 천안통,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천이통, 다른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타심통, 자신이나 타인의 과거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숙명통, 그리고 세계와 인생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인 누진통을 든다. 깨달은 자는 누구든 이 6가지 신통력을 갖추게 된다고 하는데, 목갈라나는 특히 뛰어난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엄지발가락을 가지고 제석천이 사는 궁전을 흔들어대기도 하고, 동원정사 건축의 감독을 맡아 9개월 만에 완성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목갈라나가 지닌 신통력 때문이었을까. 후대의 전승에서는 그가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우안거가 끝나는 날 비구들에게 공양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어느 날 신통력을 사용하여 죽은 어머니가 있는 장소를 찾던 목갈라나는 아귀의 세계에서 먹을 것이 없어 뼈와 살이 말라붙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놀란 목갈라나는 곁으로 다가가 먹을 것을 주려 해보지만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음식은 불이 되어 버려 결국 어머니가 먹을 수는 없었다. 목갈라나는 크게 울며 슬퍼했다. 그리고 부처님을 찾아가 사정을 고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너의 어머니의 죄업은 너무나도 뿌리 깊은 것이라 너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신들 역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16명의 비구를 공양한다면 그 위신력에 의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시킬 수 있을 것이다”고 하셨다. 부처님의 지시대로 하자 목갈라나의 어머니는 그 날 일 겁에 걸친 아귀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누진통 이외의 신통력에 대해서는 남발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다. 부처님의 만년, 사캬족의 멸망을 눈앞에 했을 때 목갈라나는 신통력으로 이를 막자고 제안한다. 이전에 어머니의 고향인 사캬족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어머니의 비천한 혈통을 둘러싼 내막과 이를 모욕하는 발언을 들은 코살라국의 비두다바왕은 부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자마자 부처님의 고향인 사캬국을 공격하고자 했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비두다바는 어느 날 군을 일으켜 카필라왓투로 향했다. 이른 아침 세상을 관찰하다 이를 알게 된 부처님은 카필라왓투의 교외에 있는 마른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고 계셨다. 부처님의 뜻을 안 비두다바는 차마 사캬국을 공격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비두다바는 부처님을 무시하지 못한 채 군을 돌려 코살라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국 왕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네 번째 공격을 감행한다. 이때 목갈라나는 부처님에게 제안했다.


“신통력을 써서라도 사캬국을 지켜야 합니다. 철로 된 바구니로 사캬국을 완전히 덮어버리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부처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석가국 사람들이 쌓은 업의 과보를 누가 대신 받을 수 있단 말이냐.”
아무리 훌륭한 신통력으로도 업으로 인한 과보는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영가 천도 우란분절 제도화


훗날 목갈라나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업의 과보를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과거세의 업의 과보로 인해 이교도로부터 폭행을 당하여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목갈라나는 사리풋타와 더불어 초기불교교단의 안정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부처님은 당신이 설법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이 두 제자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게 하였고, 교단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이들로 하여금 수습하게 했다. 그 유명한 데와닷타의 파승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비구들을 설득하여 사태를 수습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불교교단의 발전을 시기하는 다른 종교가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특히 갖가지 신통력으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갈라나의 존재는 매우 불안하고 달갑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목갈라나는 니간타파 사람들의 계략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신통력으로 여러 세계를 방문한 후 돌아온 목갈라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좋은 세상에 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이교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악처에 태어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이교도의 신도 수는 현저하게 감소했고, 격분한 이교도들은 악한을 보내 목갈라나를 죽이고자 했다. 몇 번은 신통력을 써서 사태를 피했지만 결국 이들에게 붙잡힌 목갈라나는 뼈가 부러지고 살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폭력을 당하게 된다.
거의 죽도록 맞아서 누워있는 목갈라나에게 달려간 사리풋타는 말했다.


“벗이여, 그대는 신통제일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법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 자리를 피하고자 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맞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자 목갈라나는 대답했다.


“나는 전생에 부모를 괴롭힌 적이 있다네. 이제 그 과보를 받은 것뿐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게나.”
목갈라나는 전생에 자신의 처의 말에 넘어가 눈먼 양친을 숲으로 데리고 가서 죽이는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이 악업으로 인해 그는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이제 마지막 생을 맞이하며 폭력으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업의 과보라는 것을 알지만, 피투성이가 되어 눈앞에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에 사리풋타는 괴로웠다.


“우리는 함께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자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이제 깨달음도 얻었네. 이제 함께 입멸해도 좋지 않겠는가.”

 

▲ 이자랑 박사

부처님을 찾아 간 사리풋타는 그 뜻을 고하며 허락을 구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부처님은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부처님께 작별 인사를 고한 사리풋타는 고향인 나라다마을로 가서 친척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고 조용히 입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떠난 2주 후, 목갈라나 역시 그 뒤를 따라 입멸했다. 위대한 두 거목을 잃은 부처님 역시 그들의 입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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