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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식사교육’의 중요성

기자명 법보신문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가 마음의 자양분

 

▲ 히로나카 스님의 요리 솜씨는 일품이다. 새벽마다 식사를 챙겨주는 스님의 마음이 아이들에겐 제일 큰 영양소 일 것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어릴 때 교육만큼 더 중요한 것이 없다. 그리고 유아교육 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식육(食育)’이다.


우리는 평소 하루 세 끼를 먹는다. 사람은 배가 불러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린아이는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며 가정의 따뜻한 정을 느낀다. 또 따뜻한 가정에서 식사를 하며 부모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식사라는 것은 단지 식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식사를 통한 교육, 즉 ‘식육’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보기엔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불등교(不登校) 아이들 중 99%가 음식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2008년 10월, 어떤 부부가 딸을 데리고 우리 절에 상담하러 왔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 딸은 초등하교 4학년인 요코다. 요코는 이미 3주 동안 학교를 못 갔다고 했다. 그 원인은 요코의 담임선생이 급식시간에 요코가 싫어하는 당근을 억지로 먹였기 때문이다. 당근은 영양가 있고 좋은 야채이니 남기지 않고 꼭 먹어야 하며 먹을 때까지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일하는 어머니들은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은 잘 만들어 먹이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음식을 가리는 아이들을 일일이 돌봐주지 않고,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내버려두는 것이 요즘 관례처럼 되어있다.


그런데 요코의 담임선생은 그렇지가 않았다. 결국 요코는 싫어하는 당근 때문에 수업이 끝나 다른 아이들이 청소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고도 혼자 교실에 남아 울면서 당근을 먹었고, 다음 날부터 학교를 못 가게 되었던 것이다. 요코의 부모는 어린 딸이 너무나 안쓰러워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우리 절을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그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새 학교 선생들은 아이들이 싫어하는 음식은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요코는 싫어하는 것도 먹어야 된다고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행복한가요? 요코 담임은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시네!”
요코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요코 어머니도 내일부터 10일 동안 학교를 가지마세요. 그리고 어머니는 매일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요코를 위해 차려주세요. 그리고 요코가 싫어하는 당근을 꼭 하루에 한번씩 먹을 수 있도록 요리를 하세요. 갈아도 되고 구워도 되고 다른 야채와 저려도 되고, 꼭 요코와 함께 같이 먹어요.”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 사흘째가 되던 날, 요코는 다시 학교에 가겠다고 말했다. 요코와 어머니는 밥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당근의 영양소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친구들, 그리고 공부, 어머니의 어릴 때 이야기나 어머니가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가정에 있어서의 ‘식육’이다. 생각해보면 옛날에는 어느 집이든 다 하고 있었던 일이다. 나도 어릴 때 우유와 콩이 너무너무 싫었는데, 남기면 부모님에게 혼나서 억지로 먹곤 했었다.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먹이는 것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면 누가 무엇을 싫어한다고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고, 자란 환경도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면서 같이 지내야 되는데, 상사나 동료가 싫으니 내일부터 회사를 안가겠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앞으로 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성장 시키려면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식육’을 실천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 절에서 지내는 아이 중에는 집에서 항상 혼자 밥을 먹었다는 아이도 있고, 집에서 아무도 자신을 위해 밥을 해주지 않았다는 아이도 있다. 심지어는 학교 급식 만으로 겨우 하루의 영양을 보충해왔던 아이도 있다. 부모의 이혼 등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가정에서의 ‘식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들을 보면 나는 제일 가슴이 아프다.


밥은 배불리 그리고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우리 절에선 언제나 모두가 모여서 아침, 저녁을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 아내 마치코씨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으니 야근도 자주하고 집에 없는 날이 많다. 그래서 내가 있는 날은 항상 내 스스로가 부엌에서 아이들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아침에는 쌀밥과 된장국, 그리고 계란이나 햄, 생선 등으로 간단하게 차리고, 저녁에는 아이들도 당번제로 부엌일을 도와준다.


부모가 이혼해서 혼자 아이를 키운 엄마 밑에서 자란 유리라는 여자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뜰 때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나면 너무나 행복해서 식탁에 앉으면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절에 왔을 무렵엔 말라깽이에 예민한 성격이었던 유리는 하루 세끼 식사를 제대로 하면서 성격도 확실히 온화해지고 명랑해졌다.


열다섯 살에 우리 절에 들어와 삼년을 같이 지냈던 스스무라는 남자아이는 부모가 맞벌이로 어릴 때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중학교 때 만난 친구 권유로 시너 중독이 되었고, 폭주족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가출도 빈번했었다.
집에 있었을 때 청소는커녕 부엌일도 해본 적이 없었던 스스무는 사이쿄인

(西居院)에 와서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부엌일을 도우면서 요리를 배워, 다른 아이들이 맛있다고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스스무는 요리전문학교를 나와 요코하마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큰 중국집에서 이름 난 요리사가 되었다.

 

▲ 히로나카 스님

우리 절에선 아이들한테 식비나 숙박비를 일체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부족한 살림에 식욕이 왕성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항상 나의 과제이긴 하나, 이미 졸업해 간 아이들이나 부모님, 그리고 나의 활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가끔씩 야채나 생선, 고기 등을 갖다 주기도 하고, 절에는 항상 쌀 시주를 보내주는 신도들이 있어 쌀이 떨어지는 날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번역=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
자료제공=주식회사 日本標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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