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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그리고 우리사회의 이중성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교단은 나이보다 능력이 선행 가치

 

▲ 공주 마곡사 영산회상도에 담긴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들의 모습.

 

 

서구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많이 놀라는 것으로, ‘흔들리는 관광버스’와 ‘전화에 대고 노래하는 한국인들’을 거론하곤 한다. 요즘은 단속 강화로 관광버스 춤사위는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우리는 유교문화에 억압된 여성들이, 비좁은 공간에서나마 해방공간을 만들어보려는 서글픈 한(恨)의 정서를 인지해 보게 된다.


전화에 대고 노래한다는 것은 언뜻 보면 이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라디오에는 지금도 전화에 대고 노래해야하는 다양한 시청자참여 프로가 존재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이것을 보면서, 과연 저렇게까지 노래를 해야 하는가라고 의아해하곤 한다.

 

동서양 가치 혼재한 한국


이와 더불어 거론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대중교통의 노약자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구인들은 노인들에 대한 일방적인 양보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젊음을 이상화하는 서구의 유목문화와, 노인을 존중하는 동양의 농경문화에 따른 가치관 충돌이라고 하겠다.


유목문화는 풀을 따라 이동하는 구조이다. 이는 몽골인들이 오늘날에도 게르라는 텐트식 가옥에서 생활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통해 단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정주가 아닌 이동식 생활에는, 가옥을 정리하고 길을 인도하는 젊은 인도자가 필요하다. 때문에 유목문화에서는 젊은이에게 의지하는 능력주의 문화가 나타나게 된다.


그에 비해 농사는 정주된 장소에서 매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구조이다. 이는 연륜의 축적이라는 가치를 파생한다. 또 대가족적인 집단성이 강하다. 그로 인하여 농경문화에서는 가부장적 권위와 연장자를 우대하는 집단적인 서열문화가 존재하게 된다.


농경문화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다툼은 나이 따지기와 연관된다. 초등학교 시절 ‘너 몇 학년이야?’는 어른이 되어서는 ‘너 몇 살이야?’가 되고, 장년이 되면 ‘너 만한 동생(혹은 조카)이 있다’ 등으로 전화된다. 논쟁과 같은 다툼에서 중요한 것은 각기 주장하는 논리에 있다. 그런데 판단기준에 있어 뜬금없게도 나이가 개입되는 것이다.


주먹다툼에서도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는 등 상황과 별반 관련 없는 욕설이 난무한다. 이쯤 되면 우리문화에는 나이가 많다는 것이 특정 지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선생(先生), 즉 먼저 난 사람이라는 표현에 존중의 의미가 내포된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인도는 아리안이라는 유목문화적인 집단과 드라비다와 문다라는 피지배층의 원주민들에 의한 농경문화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중심이 되는 것은 아리안에 의한 상층문화이다.


인도의 유목문화가 중심이 되는 풍토는 불교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젊은 능력적인 타당성은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된다. 붓다의 제자들 중 붓다보다 연배가 위인 경우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초기제자인 우루빈라 가섭은 성도 직후인 36세 때 제자가 되는데, 당시 그는 120세였다고 한다. 또한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수제자들도 붓다보다 연배가 위인 분들이다. 이는 불교교단에 있어서 능력이 나이에 선행하는 가치라는 알게 해준다.


이에 반해서 공자의 제자들 중 공자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마천의 ‘중니제자열전’을 보면, 공자의 72제자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이는 공자보다 6세 연하였던 안로이다. 이는 나이를 거스를 수 없는 중국문화의 특징을 잘 대변해 준다.

 

윤리적인 이중잣대 팽배


중국 농경문화에서 나이에 대한 상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는 노자(老子)이다. 노자의 본래 이름은 이이(李耳)로, 노자란 ‘노숙한 지혜로운 선생님’이라는 뜻의 존칭이다.


노자와 관련된 전설에는, 노자가 어머니 뱃속에서 80년 만에 태어났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노자는 태어나자마자 지혜로워 노자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반대로 팔삭동이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파생하게 된다.
중국문화와 관련해서 우리의 표현 중 재미있는 것으로 ‘영감(令監)’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본래 종2품과 정3품의 당상관을 부르던 존칭이었다. 그러던 것이 노인에 대한 칭호로 변모되어 일반화되다, 검사에 대한 호칭으로 귀착된다. 즉, 검사는 젊어도 ‘영감=노인’인 것이다.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차이는 존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노자와 신선상은 천편일률적으로 대머리에 백발 노인으로 나타난다. 공자와 같은 경우도 노회하고 진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붓다와 같은 경우 마투라 불상에서는 16세의 당당한 소년으로 묘사되고, 동북아에 영향을 주로 미친 간다라 불상에서는 중년의 전륜성왕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로 인해 불교의 동북아 전파 이후에도, 불상은 노년의 모습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이는 두 문화권의 융합 속에서의 차이를 잘 나타내준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불교를 타고 서쪽에서 들어온 유목문화와는 또 다른, 유럽과 미국을 통해 동쪽에서 진출한 유목문화와 충돌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전통적인 가치에서의 늙음에 대한 존중과, 젊음이라는 강건한 우월성이 충돌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같은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형이라고 불리기 위해 나이를 속인다. 심한 경우 주민증을 대조하거나, 호적이 잘못되었다는 등의 주장을 피력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율배반적이게도 여성과 만나게 되면, 한 살이라도 더 젊어 보이려고 노력하며 ‘오빠’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즉, 남성들과 있을 때는 나이를 통한 전통적인 인식에서의 이익을 보려고 하는 동시에, 여성과 함께할 때는 서구적 가치의 능력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윤리적인 이중 잣대이다.

 

▲ 자현 스님

서구의 외국인들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우리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한 딜레마를 우리는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과거 불교의 동점시대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가치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인 혼란상 속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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