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야소다라
28. 야소다라
  • 법보신문
  • 승인 2011.07.0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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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향한 그리움 깨달음의 정열로 승화시키다

싯닷타의 아내…아들 라후라 출가 후 자신도 귀의
스스로에 엄격·참회하며 살아 구참괴제일로 불려

 

 

▲ 삽화=김재일 화백

 


창문 밖으로 카필라왓투 거리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거리에서 탁발을 하고 있는 한 수행승을 향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이별인사 한 마디 없이 자신과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버렸던 남편의 등장에 그녀의 마음은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아내 야소다라이다.


일설에는 그녀의 이름을 밧다캇챠나(Bhaddakaccānaā), 혹은 라후라의 어머니라는 의미에서 라후라마따라고 부른다. 그녀는 사캬족 인근에 있던 콜리야족 숫파붓다왕의 딸이었다. 부처님의 종족인 사캬족과 콜리야족은 같은 종족으로부터 나온 밀접한 관계로 콜리야족 역시 소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양족 간에는 예로부터 혼인이 성행했는데 부처님의 생모였던 마야부인, 그리고 양모 마하파자파티 고타미 역시 콜리야족 출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사캬족의 왕자 싯닷타에게 시집온 야소다라는 라후라라는 귀여운 아들도 얻었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출세간적인 삶을 동경하는 남편 싯닷타 때문에 시아버지 숫도다나왕과 함께 속을 태워야했다. 싯닷타의 마음을 돌려보려 부단히도 애썼지만 끝내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채, 결국 어느 날 새벽 남편은 마부만을 데리고 카필라성을 넘어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마부와 말만이 성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마부에게 대신 쏟아내며 울부짖었다.


“어떻게 왕자님을 남겨두고 너만 올 수 있단 말이냐.”
어린 아들의 얼굴이 눈에 밟히지도 않았단 말인가. 나라는 존재는 그에게 있어 무엇이었던가. 야소다라의 가슴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서 싯닷타를 보아왔던 그녀였다. 이별의 방식은 너무나도 매정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마음 한 구석에서 남편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느끼며 그녀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맹서한다.


“오늘부터 그 분의 수행이 끝날 때까지 나는 결코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화장하거나, 아름다운 옷을 입거나, 맛난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그 분과 똑같이 산과 들에 머무는 고행자처럼 생활하리라.”


부처님 성도 때까지 고행생활 자청


그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12년, 남편이 깨달은 자가 되어 고향을 방문한 것이었다. 아들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 숫도다나왕은 수차례 사신을 파견하여 초청의 뜻을 밝힌다. 하지만 그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즉시 아라한이 되어 버렸고, 자신들이 왜 파견되었는지 그 임무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왕이 마지막으로 보낸 것은 깔루다이였다. 숫도다나왕 신하의 아들이었던 그는 어릴적 부처님과 소꿉놀이 친구였다. 그는 부처님의 법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지만, 결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제자들과 함께 카필라왓투를 찾게 된 부처님은 도착한 다음 날 거리에서 걸식을 했다. 바로 이때였다. 애증이 교차하는 미묘한 심정으로 야소다라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남편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한 성인이었다. 보름달처럼 빛나는 얼굴, 코끼리와도 같은 우아한 걸음걸이, 둥글고 부드러운 목 줄기, 사자와 같은 강인한 턱, 황금색으로 빛나는 피부…. 깨달음을 얻은 남편은 외모에서부터 이미 보통 사람과는 다른 성스러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성스러운 징표로 가득 찬 부처님을 바라보며 야소다라는 온 몸으로 감동과 존경의 전율을 느꼈다.


그날 왕궁에서는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한 공양이 이뤄졌다. 부처님이 공양을 마치자 왕궁의 여인들이 부처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그 가운데 야소다라의 모습은 없었다. 시녀들이 그녀에게 나아가 부처님을 만날 것을 권했지만 야소다라는 “만약 나에게 덕이 있다면 왕자님께서 스스로 나를 만나러 오실 것이다.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부처님은 2명의 제자를 동반하고 그녀의 처소를 찾았다. 놀란 그녀는 황급히 엎드려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갖다 대며 경의를 표했다. 오랜 세월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들 라후라와 함께 꿋꿋하게 살아 온 며느리에 대한 측은함이었을까.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숫도다나왕은 부처님께 말했다.


“야소다라는 당신이 가사를 입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가사를 입고, 당신이 하루에 한 끼만을 먹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한 끼만을 먹었습니다. 또한 당신이 큰 침대에는 눕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너덜너덜한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침대에 눕고, 당신이 화환이나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그것들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등 정말 수행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이를 들으신 부처님은 야소다라는 왕녀가 아니었던 전생에도 이미 몸을 잘 지켰던 여인으로 왕녀인 현생에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시며 그녀의 덕을 칭찬하셨다고 한다. 부처님이 카필라왓투를 방문한지 7일째 되는 날, 야소다라는 아들 라후라에게 말했다.
“라후라야, 저 분이 바로 너의 아버지이시다. 가서 네 유산을 달라고 하렴.”


찾아와 유산을 달라는 아들 라후라를 부처님은 출가시켰고, 야소다라는 사랑하는 라후라를 그렇게 존경하는 남편의 곁으로 보냈다. 아들 라후라가 출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인 숫도다나왕마저 저 세상으로 가 버리자 그녀는 부처님의 양모였던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를 따라 불제자가 되었다. 야소다라는 생각했다.


‘내 남편은 출가해서 일체지자의 지위에 올랐으며, 내 아들 역시 출가해 그의 곁에 머물고 있다. 내가 집에 머문들 무엇하리. 나 역시 출가해 사왓티로 가 부처님과 내 아들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그녀는 부처님과 라후라 가까이에 있는 비구니절에 머물렀다. 가까이서 부처님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 그녀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잘 단속했다. 비구니가 된 후 그녀는 자신을 반성하는 일에 매우 엄격하여 불제자 가운데 구참괴제일(具愧第一)이라 칭해졌다. 이는 부처님과 라후라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이를 항상 참회하며 부끄럽게 생각할 줄 알았기에 붙여진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출가 후의 야소다라의 생활을 말해주는 전승은 별로 없어 그녀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기 어렵다.


단, 다음 전승을 통해 한때 왕녀로서 살았던 그녀가 고된 출가자의 삶에도 불구하고 아들 라후라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로 인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남편·아들 근처서 평생 수행정진


한때 부처님이 사왓티 근교에 머무르고 계실 때였다. 야소다라는 복통을 앓게 되었다. 라후라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건만 그녀는 나갈 수가 없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라후라는 어머니인 야소다라의 처소로 들어와 “뭔가 필요하신 게 있다면 제가 돕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야소다라는 “제가 집에 있을 때는 설탕을 뿌린 망고즙을 마시면 복통이 가라앉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걸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처지이니, 어디서 그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라후라는 자신이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다며 일어섰다.


그 길로 라후라는 자신의 화상이자 따뜻하고 세심한 성품의 사리풋타를 찾아갔다. 화상과 제자는 세간의 부모 자식과 같은 관계였으니, 아마도 개인적인 일을 상담하기에는 사리풋타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사리풋타 앞에 서니 망설여졌다. 입 안에서 도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채 라후라는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사리풋타는 물었다.
“라후라야,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느냐?”


라후라는 대답했다.
“저의 어머니가 지금 복통을 앓고 있습니다만, 설탕을 뿌린 망고즙을 마신다면 곧 나을 것입니다. 어찌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측은하게 여긴 사리풋타는 “걱정하지 말거라. 구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며 라후라를 위로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사리풋타는 라후라를 데리고 사왓티로 들어가 라후라를 기다리게 한 후 파세나디왕을 찾아갔다. 사리풋타가 온 것을 안 파세나디왕은 자리를 마련하고 앉기를 권했다. 마침 그때 화원을 지키고 있던 한 병사가 맛깔스럽게 익은 망고를 바구니 가득 담아 왔다. 왕은 망고껍질을 벗겨 설탕을 뿌린 후 스스로 으깨서 장로의 발우에 담아주었다. 사리풋타는 서둘러 일어나 라후라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에게 드려라.”


라후라가 주는 망고즙을 먹자 야소다라의 복통은 가라앉았다. 한편, 파세나디왕은 사리풋타가 자신이 준 망고즙을 먹지 않고 어디론가 가지고 간 것을 이상히 여겨 부하에게 그가 누구에게 망고즙을 주었는지 알아오라고 했다. 사리풋타의 뒤를 밟은 부하는 자신이 목격한 모든 상황을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생각했다.


‘만약 부처님이 가정생활을 하고 계셨다면 부처님은 전륜성왕, 라후라 사미는 태자, 야소다라 장로니는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지배권은 그들 밑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도 그들에게 봉사하면서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출가하여 우리들 가까이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내 어찌 모른 척 하리.’
그리하여 이후 파세나디왕은 야소다라를 위해 망고즙을 계속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자랑 박사

성인을 남편으로 둔 여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것이었을지 야소다라의 일생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야소다라는 그릇이 큰 여인이었던 것 같다. 그 큰 그릇 안에 자신의 고된 삶을 모두 풀어놓은 채 밖으로 그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남편을 스승으로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깨달음에 대한 정열로 바꾸어 정진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여인이었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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