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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계 最高의 자동차도로 ‘카르둥라’

기자명 법보신문

해발5602m 하늘 허리서 무릎을 꿇다

 

▲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 카르둥라. 하얗게 눈이 쌓인 미끄러운 길을 차들이 거북이 걸음으로 지나간다. 카르둥라의 도로 표지판은 더 높은 곳, 하늘 가까이 올라가는 길을 알려주는 듯 하다.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던 겨울 점퍼를 꺼낸다. 인도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괜히 짐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그 점퍼다. 인도, 라다크에 도착한 이후 내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꼬깃꼬깃 구겨진 채 짐가방 속에 처박혀 있던 그 점퍼를 아침 눈뜨자마자 서둘러 찾아 꺼낸 것이다. 벌써 며칠째 가방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탓에 불쌍하리만치 구겨져 있다. 그런 점퍼를 향해 헤어진 애인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움과 미안함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낸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멀리 라다크산맥에 하얗게 눈이 덮였기 때문이다.


간밤에 비가 내렸다. 저녁 무렵부터 날씨가 흐리기 시작했는데 레 도심에서는 보기 드물게 밤새 비가 내렸다. 같은 시각, 해발 5600미터를 훌쩍 넘는 라다크산맥 정상에는 비대신 눈이 내린 것이다. 라다크의 겨울 시즌이 성큼 다가왔음이다. 그러니 이 두툼한 겨울 점퍼가 반가울 수밖에. 창문을 열자마자 훅 밀려들어오는 냉랭한 기운에 몸서리를 치며 점퍼 속으로 파고든다.


오늘은 지구상에서 차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 해발 5602미터의 카르둥라를 넘는 날이다. 카르둥라는 ‘눈 얼굴의 고개’라는 뜻이다. 이름값을 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일행을 맞이하느라 신경을 썼는지 카르둥라는 밤새 하얀 눈으로 곱게 얼굴을 단장했다. 라다크산맥을 베일처럼 휘감고 있는 희뿌연 구름 사이로 그 하얀 얼굴이 언뜻 언뜻 스친다. 그 얼굴을 만나러 가는 길, 전장에 나서는 선발대처럼 비장한 각오로 중무장을 한다.


해발 3500m 레에서부터 5602m 카르둥라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고작 2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비록 며칠 동안 고산에 적응했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2000m 이상을 더 올라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

 

 

▲ 티베트불교의 성인 파드마삼바바 조각상도 카르둥라를 넘고 있다.

 


눈길에 미끄러지며 벼랑끝에 선 차


우선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하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도록 뜨겁게 끓인 차를 물통 가득 담아 챙긴다. 고산병 예방약도 미리 먹어두고 사탕, 초콜릿, 죽염(과도한 수분 섭취로 인한 저나트륨혈증 예방을 위해) 등도 주머니에 잔뜩 집어넣어 수시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무엇보다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두툼한 옷차림에 털모자까지 푹 눌러쓴다. 알고 있는 모든 예방법을 총 동원한 셈이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도로, 하늘로 오르는 길, 카르둥라를 향해 출발한다.


레 시내를 벗어나자 차는 금세 라다크산맥을 타고 오른다. 산등성이 어디에도 나무 한그루 없다. 덕분에 비탈길을 오르는 내내 산 아래로 레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푸른빛에 쌓여있는 레와는 달리 라다크산맥에는 듬성듬성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녹색의 잎을 간직하고 있는 풀들은 지면에 바짝 붙어서 겨울맞이 차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 위로 성급한 눈이 하얗게 내려 앉아 마치 흰 풀꽃이 지천에 피어있는 듯하다.

 

 

▲카르둥라를 오르는 도중 내려다본 레. 맞은 편에 보이는 잔스카르산맥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지만 레에는 아직 푸른빛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고도가 좀 더 높아지자 그나마 풀들도 자취를 감추고 사방이 하얀 눈이다. 산을 넘어가는 차가 적지 않은 탓에 비포장 흙길은 녹은 눈과 뒤섞여 걸쭉한 진창으로 변해있다. 천 길 낭떠러지 위의 도로엔 가드레일도 없는데 바퀴에 체인을 장착하지 않은 차는 어느 순간부터 눈길 위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한, 두 번 헛바퀴가 도는가 싶었다. 조금 불안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기사에게 “그리 나쁘지 않네, 그래도 조심해서 가자”며 태연한 척 허세를 부려본다. 그러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앞차들이 줄줄이 미끄러지며 멈춰 선다. 그 꼬리를 물고 우리 차도 결국 가파른 비탈길에 서고야 만다.


그런데 이 차가 출발을 못한다. 아니, 오히려 바퀴가 돌때마가 차가 왼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쪽은 낭떠러지다. 그것도 해발 5600미터 낭떠러지다. 미끄러운 눈길을 박차고 오르기 위해 차바퀴가 다시 힘을 쓴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 번번이 헛바퀴만 돌리며 뒷걸음질 치던 차가 이번엔 제법 많이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돌멩이 몇 개에 걸려 간신히 벼랑 끝에 섰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이 기막힌 지경의 차 안에 앉아있자니 지레 죽을 것 같다. 비명 소리도 나오질 않는다. 평생 이렇게 간절하게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구한 적이 있던가.


잠깐 차가 숨을 고르는 사이 재빨리 가방을 챙겨든다. 더 이상 차 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차라리 걸어서 이 고개를 넘는 한이 있어도 이대로 차안에서 해발 5600미터 벼랑 끝에 매달려있고 싶지는 않다.
“걸어서 갈래요. 정상에서 만납시다.”


대답은 듣지도 않고 차에서 내린다. 그런데 차문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눈의 동공이 확 벌어지는 듯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땅이 파도를 친다. 몸은 균형을 잃고 사방으로 휘청인다. 해발 5600미터 고산 카르둥라의 격렬한 환영 인사를 받은 것이다. 순식간에 온몸의 감각이 무뎌지고 몰려드는 어지럼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잔뜩 공포에 질려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희박해진 산소와 낮아진 기압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위력을 발휘했다. 온 몸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마치 거친 파도 위에 떠있는 조각배에 올라탄 듯 어지러움과 울렁임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잠시 그대로 앉아 숨을 고른다. 부족한 산소를 최대한 많이 들여 마시도록 심호흡을 크게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꼬리를 물고 서 있는 다른 차 안의 풍경들도 이미 말이 아니다. 특히 외국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차안에서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심한 두통을 겪는지 손으로 머리를 쥐어 싸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처절하고,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의자 위에 벌렁 쓰러져 있는 사람도 애처롭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차에선 창밖으로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모두들 고산증이다. 그에 비하면 길바닥에 주저앉는 정도에 그쳤으니 훨씬 양호한 편이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는 사이 차는 벼랑 끝에서 벗어나 도로 안쪽으로 조금 들어와 있다. 하지만 저 차에 다시 올라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뒤도 안돌아보고 야멸치게 돌아서서는 카르둥라 정상을 향해 숨찬 걸음을 옮긴다. 100m 전력질주를 해 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도 까마득하지만 그때만큼이나 숨이 가쁘다. 불과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헐떡거린다.

 

 

▲ 카르둥라 정상. 오색의 타르초가 봉우리를 이룬 아래서 고갯길을 넘어온 차들이 잠시 휴식을 취한다.

 


허공을 가로지른 한 조각 고갯길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다 보니 머리위로 타르초가 펄럭인다. 카르둥라 정상이다. ‘카르둥라. 해발 18,380ft(5602m),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도로’라는 표석이 오색의 타르초 아래 당당히 서 있다. 옅은 구름이 사방에 가득해 산 아래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하얀 구름에 휘감긴 하늘, 하얀 눈에 뒤덮인 땅. 온통 흰색인 그 곳에서 카르둥라는 하늘 허리에 덩그러니 떠 있는 한 조각 땅이다. 그저 여기가 하늘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과 감격에 두려움도, 가쁜 숨도, 어지러움도 잠시 잊는다.
카르둥라 정상에선 모든 것들이 잠시 쉬어간다. 고산증을 참아내며 올라온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찻집임을 자처하는 이곳 카페테리아에서 차를 마시며 숨을 고르고, 눈길을 헤치고 온 차들도 잔뜩 가열된 엔진을 잠시 식힌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화장실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군대 캠프도 이곳에 있다.


카르둥라가 처음 건설된 것은 1976년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였고 지금도 이곳을 통과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하다. 그 허가증을 확인하기 위해 멈춰선 차와 사람들로 인해 카르둥라 정상은 늘 북적인다. 군사시설이었던 카르둥라가 지금과 같은 자동차도로로 개통된 것은 1988년에 이르러서다. 그리고 이제는 자동차 뿐 아니라 오토바이나 산악자전거로도 이 길을 넘는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며 각자의 의지와 체력의 문제다.

 

 

▲ 카르둥라 정상에 주둔하는 인도 군부대의 군인들.

 


고갯길 카르둥라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중앙아시아와 서역을 이어주는 실크로드의 주요 루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카르둥라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한 옛 카라반들은 카르둥라를 넘어 레를 지나 오늘날의 인도와 파키스탄 등 서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전성기에는 약 1만 마리의 말과 낙타가 해마다 이 고갯길을 오갔다고 한다. 그 흔적은 카르둥라 너머 누브라계곡에 아직까지도 남아있는데 바로 쌍봉낙타다. 몽골의 고비사막에 주로 살던 일명 ‘사막의 배’가 이곳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카라반들의 발이 되어 이곳까지 유입된 쌍봉낙타가 지금도 누브라계곡의 북쪽 훈데르지역을 중심으로 키워지고 있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카라반들의 낙원, 누브라계곡이다. 죽을힘을 다해 이 고갯길을 넘어선 이들만이 만날 수 있었을 휴식과 온기의 땅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잠시 쉬어야겠다. 사람의 땅을 너무 멀리 떠나온 탓인지, 아니면 감히 하늘의 땅에 너무 가까이 다가선 탓인지 온몸으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구름이 조금만 비켜준다면, 저 아래 펼쳐지는 광경이 보일 터이다. 하늘의 땅에서 내려다본 인간의 땅은 어떤 모습일까. 아쉬운 마음에 자꾸 아래를 굽어보지만 구름은 꿈쩍도 않는다. 이제 막 하늘 길에 발을 들인 초면의 객에게 그렇게 쉽게 비경을 열어줄리 없다. 머리위에서 펄럭이는 타르초를 올려보며 히말라야의 한 자락을 향해 기원한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그때는 부디 구름을 걷어 하늘의 땅을 보여 달라’고. 카르둥라 정상에 걸려있는 수천개의 타르초가 사방으로 오색의 빛을 흩뿌리며 끝없는 흰색 풍경을 달래준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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