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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콘단냐

기자명 법보신문

깨달음 얻은 첫 제자…인자한 성품으로 큰 존경

싯다르타와 함께 고행한 다섯 수행자 중 한명
승단 발전위해 사리풋타 등 후배에 자리 양보
 

 

 

▲삽화=김재일 화백

 


“콘단냐야, 마침내 네가 깨달음을 얻었구나.”


깨달음을 얻은 첫 제자의 탄생에 부처님은 크게 기뻐하셨다.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과 똑같이 깨달음의 문을 연 사람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던 진리가 콘단냐에게로 이어졌다. 이제 그 진리의 빛은 세상 곳곳을 비추며 퍼져갈 것이다. 콘단냐의 깨달음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했다는 것과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분명 또 다른 문제였다. 네란자라강변의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부처님은 자신이 발견한 법의 미묘함을 재인식하며 과연 이를 다른 사람에게 설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침묵하고 말 것인가 망설였다.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세간 사람들에게 설해도 결국 이해받지 못한 채 피로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 자신이 가르침을 설해도 탐진치로 덮여있는 사람들이 과연 그 심원하고 난해하며 미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생각은 점차 부처님으로부터 설법과 교화에 대한 의욕을 빼앗아갔다.


전승에 의하면 이때 부처님의 마음을 읽은 범천 사함빠띠가 간곡히 청했다고 한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법을 설해 주십시오. 선서시여! 바라옵건대 법을 설해 주십시오. 세상에는 천성적으로 그리 때 묻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약 그들조차도 법을 듣지 못한다면 퇴보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법을 듣는다면 진리를 깨달을 것입니다.”


범천의 청을 들은 부처님은 중생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세간을 둘러보셨다. 세상에는 더러움이 많은 자도 있지만 더러움이 적은 자도 있었다. 또한 영리한 자도 있지만 어리석은 자도 있었다. 그리고 내세의 죄과에 대한 공포를 알고 생활하는 자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관찰한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생노병사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설하리라 결심한 것이었다.


‘범천의 권청’이라 표현되는 이 사건은 각자인 부처님이 깨닫기 전의 자신과 똑같은 괴로움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세간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먼저 진리를 본 자로서 그 길을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할 것을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표현한 것이다. 또 부처님의 깨달음이 개인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세상 속으로 퍼져 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설법을 결심한 부처님이 다음으로 고민한 것은 설법 대상이었다. 자신이 깨달은 그 미묘한 법을 들려주었을 때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근기를 지닌 사람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알라라깔라마와 웃다카라마풋타였다. 당시 선정 수행의 대가로 알려졌던 이들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에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가고 없었다.


부처님 탄생 예언했던 바라문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바로 부처님이 한때 더불어 고행 생활을 했던 5명의 동료수행자였다. 콘단냐(Koṇḍañña), 밧디야(Bhaddiya), 왑파(Vappa), 마하나마(Mahānāma)그리고 앗사지(Assaji). 싯다르타 태자가 죽음을 불사하고 맹렬히 고행을 실천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부왕 숫도다나가 태자의 비호를 위해 사캬국의 바라문계급 자제들 가운데 선발해 보낸 자들이었다. 이들은 혹독한 고행을 실천하는 싯다르타를 존경하며 함께 수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네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하고 수자타라는 여인이 건네준 우유죽을 먹는 것을 본 후 타락했다며 곁을 떠났다.


부처님은 5명의 수행자가 있는 바라나시의 미가다야(Migadāya), 녹야원)을 향해 길을 떠났다. 미가다야는 사슴 동산이라는 의미인데 당시 선인타처(仙人墮處), 즉 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불릴 정도로 온갖 종교인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었다. 부처님과 헤어진 후 이들은 이곳에서 자기들끼리 수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부처님이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본 그들은 서로 약속했다.


“저기 수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네. 그는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타락한 자라네. 그가 와도 우리는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나 맞이하지도 말고, 발우와 가사를 받아주지도 말도록 하세.”


하지만 부처님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 위의에 감화된 그들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잊어버리고 일어나서 부처님을 맞이했다고 한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름으로 혹은 벗이라는 말로 자신을 부르는 그들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를 이름이나 벗이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된다. 여래는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할 분이며,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은 분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불사의 경지를 증득하였다. 이제 법을 설하겠노라. 너희들이 배운 대로 행한다면 머지않아 양가의 자식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의 궁극적인 완성을 이 세상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고 체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5명의 수행자는 오히려 부처님을 힐난했다.


“벗 고따마여, 고행을 닦고 실천하고 수행해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智見)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돌아간 타락한 자네가 어떻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두 번, 세 번에 걸쳐 힐난이 반복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잘 생각해 보거라. 내가 예전에 이와 같이 말한 적이 있었느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은 분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불사의 경지를 증득하였다. 이제 법을 설하겠노라. 너희들이 배운 대로 행한다면 머지않아 양가의 자식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의 궁극적인 완성을 이 세상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고 체현하게 될 것이다.”
마음을 연 5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잘 들으려 했고, 참된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5비구를 대상으로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떠나는 중도의 가르침을 주제로 초전법륜을 하게 되었다.


그의 입멸에 히말라야산 통곡


“비구들이여,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들은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여러 가지 애욕에 빠져 그것을 즐기는 것이니, 이는 열등하고 세속적인 범부의 짓이며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느니라.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니, 이 역시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느니라.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원만히 잘 깨달았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수승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키고, 고요함과 수승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을 말하는 것이니,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이니라.…”


이와 같은 설법을 듣고 5명의 수행자 가운데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것이 바로 콘단냐(陳如)였다. 이어 밧디야와 밥파 두 사람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하나마와 앗사지 두 사람이 깨달음을 열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5비구에 관해서는 개인적인 신상이나 출가 후의 생활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힘들다. 하지만 ‘테라가타’에 전해지는 이들이 읊은 게송의 내용 등으로 보아 부처님이 첫 설법 대상으로 삼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행이나 위의 면에서 모두 뛰어난 자들이었던 것 같다. 사리풋타가 첫 눈에 그 위의에 반하여 개종을 결심하게 된 것은 5비구 가운데 한 명인 앗사지였다.


특히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었던 콘단냐는 5비구 가운데 대장 역할을 하던 인물로 관대하고 인자한 성품에 박식함까지 갖추어 대중으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카필라성 근처 마을에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점성가의 명인으로 일찍이 부처님이 탄생했을 때 장래의 예언을 위해 초대된 바라문 가운데 최연소자였다. 이미 고령이었던 그는 자신을 어려워하는 사리풋타나 목갈라나와 같은 유능한 후배들을 배려하여 부처님께 숲 속에 있는 만다키니 호숫가에서 살 것을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청했다. 부처님이 허락하시자 그는 그 곳에서 조용히 홀로 수행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12년을 보낸 후 그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부처님을 찾아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고하고 다시 호숫가로 돌아가 곧 입멸했다. 숲 속에서 홀로 지내는 그를 위해 음식을 날라주던 많은 코끼리들이 그의 장례를 해주고, 히말라야산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통곡했다고 하는 전승으로부터 그가 얼마나 위대하고 따뜻한 수행자였는지 알 수 있다.


무슨 이런저런 수식이 필요하겠는가. 부처님이 첫 번째 설법 대상으로 선택하셨고 그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얻어 평생 수행자답게 살아간 콘단냐 그리고 밧디야, 밥파, 마하나마, 앗사지. 이렇게 부처님을 포함한 6명의 훌륭한 아라한으로 승가는 첫 발을 내딛었고, 이후 진리는 온 세상을 비추며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퍼져나갔다. 콘단냐를 비롯한 5비구의 존재가 그 누구보다 소중한 이유이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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