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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라다크불교의 미래가 자라는 삼텐링곰파

기자명 법보신문

절 마당 뛰어노는 동자승 미소에서 참 붓다를 보다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삼텐링곰파는 혈기 왕성한 청년처럼 싱그러운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말쑥하게 새 단장을 한 곰파 내부는 라다크불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육지서만 살던 사람들이 배를 타면 배 멀미를 하고, 배를 오래 탄 사람들이 육지에 내리면 땅 멀미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고갯길의 땅 라다크에 제법 익숙해지니 평지를 달리는 기분은 차라리 지루하다. 이건 평지 멀미라고 해야 하나. 간혹 비포장도로가 나오기도 하지만 누브라계곡의 도로들은 라다크의 다른 지역과 달리 평지에서 평지로 이어진다. 몸이 편해지니 부지런한 손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바쁘지만 게으른 눈은 아름다운 풍경을 맘껏 즐기며 호사를 누린다.


쇽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강을 건너면 쇽강과 합류하는 누브라강을 따라 길이 계속된다. 강줄기를 따라 넓게 펼쳐있는 모래강변엔 누군가가 세워 놓은 초르덴이 줄지어 있다. 근방에 인적이라고는 없는데 누가 저 초르덴을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초르덴은 누구나 조성할 수 있다. 개인이 세우기도 하고 혹은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우기도 한다. 초르덴을 세울 때는 좋은 날을 고르고 스님을 초청해 법회를 봉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스님이 직접 불사금을 모아 초르덴을 세우는 일은 없다. 주로 개인이 공덕을 쌓기 위해, 혹은 내생의 복을 기원하며 초르덴을 세우지만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세워지는 초르덴도 많다. 인적 드문 강변에 서있는 초르덴은 아마도 후자에 해당될 것이다.

 

 

▲누브라계곡의 모래 강변을 따라 세워져 있는 초르덴. 

 


강변을 따라 평화롭게 이어지던 길은 작은 마을 수무르로 들어선다. 수무르는 한 눈에 보아도 작고 소박한, 예쁜 마을이다. 낮은 담장 너머로 마을 주민들의 흙집이 올망졸망 모여 있고 마을 입구에서부터 사원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사원 삼텐링곰파는 일곱 개의 작은 사원들이 모여 있는 커다란 사원군의 중심이다. 제법 복잡한 마을길을 지나 곰파 앞에 다다르니 넓은 마당을 앞에 두고 우뚝 솟은 삼텐링곰파의 입구가 화려하다.


인적 드문 강변에도 초르덴이


검붉은 기둥에 화려한 금색 문양들로 장식돼 있다. 입구를 지나 법당까지 이어지는 계단에도 붉은 벽돌이 깔려있어 마치 레드카펫을 펼쳐놓은 듯 하다. 하얀색 건물에 붉은 창문, 금색 지붕을 이고 있는 삼텐링곰파의 법당은 왕궁처럼 화려하다.


하지만 진짜 왕궁은 삼텐링곰파와 마주보고 있는 맞은편 언덕 위에 있다. 짜라사로 불리는 궁전이다. 누브라계곡이 레왕국의 통치를 받기 전까지 이 지역의 주인이던 누브라왕실의 겨울궁전이다. 하지만 지금은 낡고 허물어진데다 관광객의 발길조차 드물어 저 곳이 왕궁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이곳 삼텐링곰파는 혈기 왕성한 청년처럼 활기 넘치고 아름답다. 사실 삼텐링은 역사가 150년 이상 된 고찰이다.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후 이곳을 중창해 더욱 말쑥해졌다. 그 후에도 달라이라마는 자주 이곳을 방문해 법회를 열곤 하는데 이곳 스님 역시 겔룩파를 대표하는 고승 가운데 한 분이란다.


그런 사원의 위상을 보여주듯 이곳에는 50여 명의 스님들이 생활하고 있다. 법당 앞마당 한쪽 바닥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철문이 있는데 문을 젖혀보니 그 아래 지하가 커다란 곡물창고다. 입구는 어른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지만 아래쪽 공간은 그 크기가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렇게 넓은 곡물 창고가 있어야 될 만큼 곰파의 대중이 많다는 뜻이다.

 

 

▲삼텐링곰파의 법당 안에는 훌륭하게 복원된 프레스코 벽화와 고색 창연한 탕크들이 즐비하다.  

 


이 크고 화려한 곰파의 건물들 가운데 일반에게 공개되는 곳은 법당 두 곳 뿐이다. 그것도 스님이 문을 열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대낮인데도 법당 문을 자물쇠로 꼭꼭 잠가 놓은 것이 눈에 거슬린다. 입구엔 ‘카메라 플래시를 꺼라’는 안내판까지 붙어있다. 안에 뭐가 있길래 그러는지 잔뜩 부푼 호기심을 안고 법당에 들어선다. 그리고 법당은 그 호기심을 단박에 채워준다. 화려하게 복원된 프레스코 벽화가 벽에 가득하고 연대를 가늠하기 어려워 보이는 탕카들도 즐비하다. 이곳의 탕카는 앞서 보았던 다른 곰파들의 탕카보다 더 섬세하고 화려한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방문객 안내소임을 맡은 듯 한 젊은 스님은 우리 일행이 법당을 참배하고 탕카와 벽화 등을 다 둘러볼 때 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다.


왕궁보다 더 화려한 곰파


법당을 나오는데 입구 쪽에서 또 한명의 참배객이 들어온다. 긴 머리카락을 수십 가닥으로 나눠 쫑쫑 땋아 늘인, 일명 ‘레게머리’를 한 서양인 남자다. 라다크 지역 곰파 순례에 제법 익숙한 듯 신발을 벗더니 스님에게 안내를 부탁한다. 스님은 그 남성을 따라 다시 법당으로 들어간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참배객이 오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저렇게 법당을 드나들 것이다. 하지만 지루한 기색도, 귀찮은 기색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소임에 충실한 스님에게 합장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삼텐링곰파에 위치하고 있는 불교학교의 동자스님들. 외출 준비를 하는지 싱글벙글이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저쪽에서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 무리의 동자스님들이다. 들꽃이 가득 피어있는 예쁜 화단이 담장을 대신하고 있고 그 너머엔 단정한 요사채들이 줄지어있다. 그 앞에서 동자스님들이 무슨 일 때문인지 무리지어 있다. 커다란 짐 가방을 놓고 잔뜩 들뜬 얼굴로 이야기 나누는 모양새가 아마 곧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학교 건물 출입 금지’라는 안내판이 입구에 있다. 이곳은 삼텐링곰파가 운영하는 동자스님들의 학교다. 안내판 덕분에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 너머에서 학교 안을 들여다본다. 삼텐링곰파에서 느껴지는 밝고 싱그러운 기운은 아마도 저 동자스님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웃음소리 덕분이었나 보다.


안을 기웃거리는 낯선 외국인들을 알아챈 스님들은 눈길이 번거로워서인지 아님 부끄러워서인지 고개를 돌린다. 괜히 동자스님들의 즐거운 한담을 방해한 듯해 머쓱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인사를 전하기도 마땅치 않아 서둘러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원 입구를 나서니 마당에서도 동자스님들이 모여 신나는 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다. 무엇을 하고 노는가 싶어 다가가 보니 축구와 굴렁쇠 돌리기를 하고 있다. 조금 큰 스님들은 축구를 하고 있고 더 어린스님들은 ‘형님스님’들이 축구를 하는 옆에서 굴렁쇠를 돌리고 있다. 축구하는 스님들의 신발이라야 슬리퍼가 고작이지만 공 다루는 솜씨는 제법이다. 이제 갓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 스님들은 굵은 철사를 동그랗게 엮어 만든 굴렁쇠를 똑같은 철사로 만든 손잡이로 돌리며 절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다. 저렇게 가느다란 굴렁쇠를 다루기가 쉽지 않을 텐데 참 잘도 굴린다.


반갑게 손 흔드는 동자스님들


비록 스님이지만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 귀엽고 예쁘기는 마찬가지다. 한참을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한 스님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그러고는 금세 축구놀이에 정신이 쏠린다. 가까이 가서 이야기라도 나눌까 싶지만 저 즐거운 놀이에 방해가 될 것 같아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우리나라에선 절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 사찰에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아니, 절에서 아이들을 보기도 결코 쉽지 않다. 이렇게 많은 동자스님들이 뛰노는 모습은 더더군다나 흔치 않다. 부처님오신날 단기 출가한 동자스님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것도 그만큼 보기 드문 광경이기 때문이다.

 

 

▲절 마당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신나게 뛰어노는 동자스님.

 


하지만 이곳에선 이렇게 동자스님들의 웃음소리가 항상 들릴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도 하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저렇게 뛰어노는 것이 더 좋은 나이일 테니까. 그리고 머지않아 저 동자스님들이 라다크의 불교를 이끌어가는,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는 주역들이 돼 있을 것이다. 저 가운데에서 존경받는 스승도 나올 것이고, 수행의 성취를 이룬 고승도 나올 것이다. 비록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건네고, 먼발치에서 합장으로 작별을 대신하지만 수많은 미래의 고승을 한 자리에서 친견한건 아닐까. 알 수 없는 기쁨이 차올라 돌아서는 걸음이 두근두근 설렌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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