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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출라판타카

기자명 법보신문

더러워진 흰 천에서 무상의 진리를 깨닫다

친형 권유로 출가했으나 우둔함에 절에서 쫓겨나
불법에 대한 굳은 믿음·정진으로 아라한과 증득

 

 

▲삽화=김재일 화백

 


어느 날 부처님은 정사 앞에서 우왕좌왕 방황하고 있는 한 수행승을 발견하셨다. 얼마 전에 형 마하판타카(Mahāpanthaka)를 따라 출가했던 출라판타카라는 자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몹시 당황한 모습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정사 주변을 헤매고 있었다.


“출라판타카야, 왜 그러고 있느냐?”
걱정이 되신 부처님은 다가가 자상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갑작스런 부처님의 출현에 그는 애써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폭발한 듯  울먹이며 대답했다.


“형에게 쫓겨났습니다. 저보고 정사를 떠나 환속해버리라고 합니다.”
원래 마하판타카와 출라판타카는 마가다국의 라자가하에 살던 한 거부 장자의 딸과 그 집에서 일하던 하인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였다. 신분이 현저히 다른, 그것도 여성이 상층계급이었던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주변으로부터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은 도망치듯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서 살았다. 하지만 임신을 하게 되자 장자의 딸은 친정에 가서 해산하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홀로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그녀는 떨쳐버릴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남편과 상의해 보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자신에게 주어질 처벌에 남편은 두려워하며 망설였다. 결국 그녀는 홀로 친정을 향해 나섰다. 그런데 친정에 도착하지 못한 채 도중에 길에서 사내아이를 낳고 말았다. 그래서‘길’이라는 뜻을 가진 판타카라는 말을 이름에 붙였다.


그런데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그녀는 큰 아이에게는 마하(큰) 판타카, 둘째 아들은 출라(작은) 판타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둘은 형제이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도 달랐다. 똑똑하고 현명했던 형과는 달리, 동생은 우둔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본생담’에 의하면 출라판타카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둔하게 된 까닭은 그 옛날 가섭불이 이 세상에 오셨을 적에 그는 똑똑한 제자였는데, 가섭불의 가르침을 외울 수 없었던 우둔한 비구를 조롱했기 때문에 그 과보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4개월간 시구 한 구절도 못 외워


형 마하판타카는 부처님을 만난 순간 이미 부처님으로부터 강렬한 감동을 느끼며 이분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 여겼다고 한다. ‘테라가타’라는 초기 문헌에는 마하판타카가 읊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전해진다.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스승을 처음 보았을 때, 최상의 사람을 보았기에 내게는 감동이 일어났다. 손발을 가지고 머리를 굽혀 이와 같이 훌륭한 스승이 오신 것을 존경하는 사람이 어찌 과실을 범하리오. 그때 나는 처자도 재산도 곡물도 버리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자르고, 출가하여 집 없는 생활로 들어갔다. 배워야 할 것, 올바른 생활 법을 몸에 갖추고, 여러 가지 감관을 잘 제어하여 올바르게 깨달음을 연 사람을 경례하면서 그 어떤 것에도 좌절하는 일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나는 서원을 일으키고 마음에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었다. 망집의 화살이 뽑혀지지 않는 이상 나는 잠시도 앉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생활하고 있는 나의 노력 분투를 보라. 세 가지 명지는 이미 체득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완성되었다. 나는 전세(前世)의 생활을 알고, 천안(天眼)을 얻었다. 나는 경배를 올리기에 어울리는 사람, 보시를 받을 만한 사람이며, 미망의 생존의 원인도 없어져 해탈하고 있다. 그로부터 밤이 끝나가고 해가 나올 무렵, 모든 망집을 고갈시키고 나는 결가부좌한 채 명상에 들었다.”


부처님을 만나 멋진 깨달음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 형 마하판타카는 동생에게도 이 훌륭한 가르침을 접하게 해 주리라 생각하며 동생 출라판타카에게 출가를 권했다. 이렇게 해서 형을 따라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건만, 태어날 때부터 우둔했던 출라판타카는 4개월 동안 한 구절의 시구조차 외우지 못했다. 앞의 한 구절을 외우고 나면 그 다음 구절은 잊어버리고, 다음 구절을 외웠다 싶으면 앞 구절은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나도 아둔한 그를 사람들은 경멸하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동생을 이끌어보려던 형도 이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절망하며 환속을 권한 것이었다.


부처님이 출라판타카를 발견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부처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사 주변을 서성거리는 출라판타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손을 잡고 승원 안으로 들어가셨다.


“출라판타카야, 실망하지 말거라. 너는 나를 의지하여 출가한 것이 아니더냐. 이제 내 곁에 있거라.”
‘테라가타’에는 훗날 출라판타카가 당시를 회고하며 읊었다고 하는 게송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나의 진보는 느렸다. 나는 이전에 경멸당했다. ‘자, 너는 집으로 돌아가거라.’ 형은 이렇게 말하며 나를 쫓아냈다. 이렇게 쫓겨나, 나는 승원 통로에 있는 작은 공간에 실망한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무언가 가르침이 있기를 기대하며…. 거기에 존경하는 스승님이 오셔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손을 잡고는 승원 안으로 데리고 가셨다. 자비의 마음으로 스승님은 나에게 발을 닦는 수건을 건네시며 말씀하셨다. ‘이 청정한 천에만 전념하며 주의를 기울이거라.’”


부처님이 그에게 내민 것은 하얀 천 조각이었다.
“출라판타카야, 너는 아무 것도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 천 조각으로 사람들의 신발을 깨끗하게 닦아 주는 일에 전념하면 되느니라.”


출라판타카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그저 천 조각을 들고 다른 출가자들의 신발을 닦아주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처님께 처음 받았을 때의 천은 새하얀 것이었는데, 점차 더러워져 지금은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때가 묻어 까만 천이 되어 있었다. 이를 보는 순간 출라판타카의 마음은 동요했다. 무언가 모를 한 줄기 빛이 그의 마음을 가로질러 달렸다.


한 치 의심없이 부처님 가르침 실천


‘아, 그렇구나. 새하얀 천이 이렇게 변해가듯 다른 모든 것 역시 이렇게 달라져 가겠구나. 세상의 모든 것이 어느 한군데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말하는 것이구나.’
4개월 동안 한 구절의 시구도 외우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출라판타카였지만, 천에 때가 묻어 더러워져가는 과정을 보며 무상의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출라판타카의 마음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아차리신 부처님은 다시 이런 가르침을 주셨다.


“출라판타카야, 이 천만이 먼지나 때에 더렵혀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번뇌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
인간의 마음만큼 쉽게 더러워지는 것도 없으며, 또한 더럽혀진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도 지난한 일이기에 수행자라면 항상 자신의 마음을 청정히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출라판타카에게 새하얀 천 조각을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도 한다.
“이 자리에서 동쪽을 향해 앉아 ‘먼지, 때를 털어버리자. 먼지, 때를 털어버리자’라고 말하며 이 천을 어루만져라.”


그리고 출라판타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조금의 의구심도 없이 매일 태양을 바라보며 “먼지, 때를 털어버리자”라고 중얼거리며 천을 만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손 안에 있는 천이 어느 새 까맣게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터득했다고 한다. 어느 전승에 의하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수한 믿음과 성실한 실천이 출라판타카에게 깨달음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우둔하다고 버림까지 받은 출라판타카였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인 그는 이렇게 하여 큰 깨침을 얻었다. 그리고 곧 아라한이 되었으며 이후 많은 신통력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그를 부처님은 마음을 개발하는 능력에 있어 일인자라고 평가하셨다.


부처님과의 만남을 이루었던 자들은 실로 다양한 근기를 지닌 자들이었다. 부처님과의 첫 만남에서 설법을 듣고 즉시 깨달음을 이룬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출가하여 성실하게 수행하다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는 자들도 있었다. 한편 천성적으로 어리석고 둔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출라판타카는 그 중에서도 특히 아둔한 머리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4개월 동안 시구 한 구절도 외우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이라는 훌륭한 스승, 그리고 그의 순수한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천 조각으로 다른 사람의 신발을 닦으라는 혹은 천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먼지, 때를 털어버리자”라고 중얼거리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그는 조금의 의심이나 불쾌감도 품지 않았다. 스승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 그리고 명석함 대신 그가 갖고 태어난 우직함…. 부처님과 출라판타카의 만남이 이루어낸 멋진 성과는 지혜롭지 못하고 명석하지 못한 우리 일반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이자랑 박사

진리의 길도 깨달음의 길도 좋은 스승과 더불어 각자 찾아가기 나름인, 그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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