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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혼의 가치관, 그리고 불교의 유연성

기자명 법보신문

시·공간 인연 따라 결혼 풍습 천차만별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커플 16쌍이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한국 불교계 도움으로 한국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 입고 혼례를 올렸다.

 

 

우리는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은 외국인과 결혼하고, 결혼한 사람들 3분의 1이 이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 전체인구 4분의 1이 1인 가구로, 같은 도시 안에서도 자식이 부모와 같이 살지 않고 원룸을 얻어 산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문화 대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불과 1세대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버젓이 현실이 되어 당연시되고 합리화된다.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제도와 가치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불과 1세대 전만해도 나이가 차면 결혼은 거의 무조건 하는 것이고, 동생이라도 있으면 떠밀려서라도 가야했던 게 결혼이다. 또 외국인과 결혼은 특수한 경우였으며 이혼은 집안망신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그보다 조금만 더 위로 가면 사별한 과부까지도 죽지 못해 사는 미망인(未亡人)이자 죄인 같은 사람으로 취급받을 정도였으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러한 지나친 염려들이 완전히 폐기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명절에 놀림감이 되던 노처녀는 골드미스로, 스님이나 신부가 되는 것도 아니면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나아가 TV와 같은 방송매체들에서는 미혼모를 옹호하는 프로까지 서슴없이 내 보낸다. 만일 이렇게 바뀐 현실에서 우리가 과거 인식만을 고집한다면 사회전체가 비윤리적이라는 악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바로 이점이 결혼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생각이 요청되는 이유다.

 

급변하는 한국 가치관
노처녀가 골드미스 돼


오늘날 우리 결혼관은 당연히 일부일처제다. 그러나 인간을 떠나 동물세계를 보면, 일부일처제는 없다. 힘센 수놈이 보다 많은 암놈을 차지하는 철저한 일부다처제다. 허나 단순히 힘이 센 수놈이라고 해서 강제로 암놈을 취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힘 센 수놈을 암놈이 더 많이 선택한다. 즉 결정권은 수놈이 아닌 암놈에게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동물세계가 능력 있는 수놈이 주도하고 그 수놈을 암놈이 선택하는 것은 보다 우월한 종을 번식시키기 위한 진화론적 결과다. 속칭 우월한 유전자를 보다 많이 퍼트려 종의 발달을 초래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진화 선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보편론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지구상에서 인류만이 진화론적 질서에 반대하는 최초의 종이라고 하겠다. 인류는 문화와 평등을 내세워 진화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에서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것은 극히 최근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다처제는 인류가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해온 결혼관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외에도 인류사에는 그 지역과 환경적인 특성에 따른 실로 다양한 결혼문화가 존재했다. 티베트와 같은 경우는 환경이 척박하다. 그래서 티베트는 전통적으로 일처다부제를 취해왔다. 이럴 경우 산아제안의 효과가 있고 척박한 환경에서 충성도가 높은 남성노동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농경과 유목이 동시에 필요한 티베트의 생업적 특수성도 존재한다. 즉, 남편 한 사람이 집을 떠나 유목을 하면 다른 한 명은 집을 관리하다가, 때가 되면 서로 교대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제들이 한 여자에게 동시에 장가드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와 정반대 경우도 있다. 자매가 한 남자에게 동시에 시집을 간다. 붓다 부친인 정반왕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붓다의 이모는 이모인 동시에 어머니가 된다. 중국에서도 같은 경우가 있다. 중국 성인인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하황과 여영을 동시에 시집보냈다. 요즘 관점에서는 비윤리적인 결혼관이 과거에는 여러 문화권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보편론 중 하나였던 것이다.

 

다른 환경이 결혼에 영향
동생이 형수와 살기도 해
 


동북아 유목문화에서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사는 결혼풍습이 있다. 이를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라고 하는데 고구려에서도 살펴지는 우리와 멀리 않은 풍속이다. 유목문화는 남성이 먼저 죽을 경우 남은 아내와 자식들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동생이 이들과 살며 부양 의무를 지는 것이다. 형들이 계속해서 죽게 되면 어린동생에게는 나이 많은 아내와 여러 조카들을 안고 가야하는 너무 가혹할 수도 있는 결혼문화다.
붓다와 같은 경우는 각술쟁혼(術爭婚)이라고 해서 시합을 통해 1등이 여자를 취하는 결혼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인도와 유럽 등 무사계급에서 종종 발견되는 결혼풍습 중 하나다. 어찌 보면 가장 야만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동시에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타당한 가치로도 이해될 수 있어 흥미롭다.


일부다처제 중 환경적인 특수성이 있는 경우로 이슬람을 들 수 있다. 이슬람은 무하마드가 정한 율법에 따라 부인을 4명까지 두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무하마드 당시가 전쟁의 시대였고, 때문에 남성들이 부족했다. 곧 남녀 성비를 고려한 합리적 조치인 셈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장 특기할만한 하고 잔인한 결혼제도는 우리나라와 중국에 있었다. 그 제도는 조선으로 대표되는 일부일처다첩제다. 부인은 1명이지만, 첩은 얼마든지 둘 수 있는 제도다. 이는 이슬람 일부사처제보다도 훨씬 미개하다. 왜냐하면 첩은 아내라는 정식신분을 부여받지 못하는 일방적인 성적 착취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 첩은 물론이거니와 자식들까지도 투명인간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투명인간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홍길동은 율도국을 세우려고까지 했겠는가. 결혼과 관계된 야만 문화는 놀랍게도 가장 우리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일부일처제의 정착은 인류역사에서 결코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인류는 종전과는 달리 결혼하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다. 반면 동시에 무한 결혼 사회와도 통한다. 쉽게 같이 살 수는 있지만 결혼만 하지 않는 사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자현 스님

우리사회의 변화 속도는 단연 눈에 띈다. 하나의 고정된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불교의 유연한 입각점이 필요한 때다. 연기법은 말하고 있다. 변화는 변화를 통해서 무한 생명력을 가지며, 인간은 이러한 흐름을 타고 갈 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한다고. 애초에 정해 놓은 기준이 없다면, 잘못된다는 개념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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