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언어로 법문해야 포교도 가능하다
대중의 언어로 법문해야 포교도 가능하다
  • 법보신문
  • 승인 2011.09.2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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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학 개론'  

포교를 얘기할 때 설법이라는 말도 함께 쓰게 된다. 부처님의 설법 양식을 모델로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포교 방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교에 굳이 방법론을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하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효과적인 포교를 위해 부처님께서 즐겨 쓰신 설법의 양식을 생각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부처님은 찾아온 사람들만을 제도하고 포교하신 분이 아니다. 직접 중생들을 찾아 나서 적극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신 분이다.


“나도 우루벨라의 장군 마을로 가련다” 하신 포교선언대로 끝없이 걸어다니신 분이시다. 또 대상자의 근기와 능력에 따라 그에 부합한 내용을 설하셨다. ‘응병여약’이라 하듯이 스스로를 의사에 비유하고 중생들을 환자로 생각해 약을 처방하는 방식으로 법을 설하셨다. 부처님의 포교 성공요인을 굳이 들라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근기설법을 펼치셨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부처님께서 당초 깨달음을 얻으신 즉시 열반에 드시려했으나 범천의 간청으로 설법하시게 되셨다하시면서 중생들의 근기를 살펴보셨다하는 경전의 내용이 등장한다. 성도직후 설법을 하실 것인가 말 것인가 심사숙고하시다가 가르쳐주면 깨우칠 자들이 있고, 중생들 각자 근기의 차별이 있음을 관찰하셨다고 경전은 밝히고 있다.


대기설법을 흔히 수기설법, 방편설법이라고도 하는데 방편설법에는 인연이나 비유들의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다. ‘법화경’ 방편품을 보면 “내가 성도한 이래 종종의 인연이나 종종의 비유로 널리 연설한 교법은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을 인도하여 집착을 여의게 하고자 함이다”고 말씀하셨다.


연꽃이 수중에 피어있거나 수상에 피어있는 것처럼 각각 근기의 차별이 있음을 관찰하신 부처님께서는 탁월한 비유와 인연설로 무량중생들을 깨치신 것이다. “비구들이여, 눈 먼 거북이가 백년에 한번씩 떠올라 구멍이 있는 궤짝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어리석은 자가 사람의 몸을 얻는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뿐 아니라 ‘법화경’ 등 갖가지 경들의 비유 등은 참으로 통찰력 깊은 관찰과 지혜의 소산으로 포교와 설법을 얘기 할 때 과연 어떠한 법문을 펼쳐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삼라만상의 전개를 인연과 비유로 설명하시는 가운데 펼치신 인과의 법문은 설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삶의 모든 양상은 인과의 도리따라 전개된다” 말씀하시면서 중생세계의 모든 난해한 문제들이 인과의 표현임을 낱낱이 밝히셨다. “네 배를 타고 어떤 아기가 들어올지 너는 아는가, 그저 좋은 아기 낳게 해 달라 기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뱃속에서 나오면 내 아들, 딸이라 하지만 어떤 아이가 들어올지 그 누가 아는가. 어떤 아내를 어떤 남편을 만나게 될지 아는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 기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반대의 사람을 만나게 될지 그 누가 알 수 있는가. 모두가 하나 같이 모르는 것들뿐이다. 그와 같이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만상은 법따라 전개된다”고 하셨다. 그 법이 무슨 법인가. 인연법이요 인과법이다. 모름지기 좋은 인연과 인과를 원하는 자는 법따라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이다. 인과와 인연의 도리를 만상의 근원이라 말씀하신 도리를 이해해야한다.


설법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듣는 사람들을 깨닫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부처님의 설법양식을 항상 곱씹어 보라.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모든 포교의 핵심이 들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자가 누구인가. 항상 경전의 전개 양식을 음미해보라. 그를 바탕으로 듣는 사람들의 근기에 맞춰 설법을 짜나가야 할 것이다.


일방통행식의 얘기는 듣는 사람들의 포괄적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너무 어려워도 안 되고 너무 세속으로 끌어내려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설법·포교의 세계다. 항상 듣는 사람과 하나 된 도리로 그들의 근기에 맞게 할 수 있는 설법이 될 때 그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지광 스님

부처님께서는 앉아서 중생들을 맞아들이신 것이 아니라 중생들 속을 헤집고 다니시면서 그들의 근기에 맞게 대기설법, 방편설법을 펼치셨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광 스님 서울 능인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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