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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야사(Yasa)

기자명 법보신문

진리를 좇아 부처님께 출가한 첫 번째 비구

쾌락의 본질 꿰뚫어보고 자유를 찾아 방황
친구 54명 잇따라 귀의…불교 확산 계기돼

 

 

▲삽화=김재일 화백

 


5명의 비구에게 초전법륜을 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새벽이었다. 좌선을 즐기시던 부처님은 피로를 느껴 잠시 쉬고자 경행을 하고 계셨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절규하듯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싫다, 괴롭다,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본 부처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젊은이였다. 무엇이 그리도 힘겨운지 그는 괴롭다는 말을 연발하며 주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처 없이 새벽녘의 산야를 헤매고 있었다. 잠시 그를 관찰하던 부처님은 경행처로부터 내려가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부처님이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는 울부짖으며 걸어왔다. 부처님은 따뜻한 어조로 말을 건네셨다.


“이곳에는 괴로움이 없다네, 비참함도 없다네. 어서 이리 와 앉으시게. 내 그대를 위해 법을 설하겠네.”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수행자. 그리고 그 수행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그는 한 줄기 가느다란 희망을 느꼈다. 앞에 앉은 그를 위해 부처님은 먼저 이렇게 설법을 시작하셨다.


“보시를 실천하고 계율을 지키면 하늘에 나게 되느니라. 여러 애욕에는 환난과 공허함과 번뇌가 있기 마련이니, 애욕으로부터 벗어나면 큰 공덕이 드러날 것이다.”


부처님은 그에게 보시의 가르침, 지계의 가르침, 생천의 가르침, 모든 욕망의 재난과 해악과 더러움 및 출리의 뛰어난 이익에 대해 설하셨다. 가난한 자나 종교가 등에게 자비의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고, 생물을 괴롭히거나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잘못된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그 과보로 내세에는 하늘에 태어나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시론(施論)·계론(戒論)·생천론(生天論)의 이 설법은 원래 불교 이전부터 당시 인도의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신앙되고 있던 사상으로, 부처님은 난해한 교리가 아닌 일반적인 인과응보의 도덕론으로 그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고자 하신 것이었다.


이는 부처님이 재가신도를 대상으로 주로 펼친 설법 형식인데, 상대방이 업보 사상을 이해하고 인과의 도리를 올바르게 신앙하게 되면 이어 불교적인 고집멸도의 사제를 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를 차제설법(次第說法)이라고 한다. 만일 상대방의 마음이 인과의 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제나 인연법을 설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문 듣고 곧바로 출가


보시·지계·생천의 가르침을 듣고 그의 마음이 건전하고 유연하며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환희용약하는 마음이 되었음을 아신 부처님은 이어 사제를 설하셨다. 그는 마치 청정하고 오점 하나 없는 천이 깨끗하게 물들듯이, 그 자리에서 “인연법에 의해 모이고 생기하는 성질이 있는 것은 모두 멸하는 성질이 있는 것”이라며, 즉시 사제의 도리를 이해하고 진리를 보는 눈을 얻어 제1단계의 성자가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과 운명의 만남을 이룬 이 젊은이의 이름은 야사. 5비구 이후, 다시 부처님의 깨달음의 빛을 이어 받은 자이다.


야사는 초전법륜의 땅인 미가다야(鹿野苑)가 있는 바라나시의 한 부호 상인의 아들이었다. 바라나시는 일찍이 인도의 16대국 가운데 하나였던 까시국의 수도로 갠지스강을 따라 수륙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상업무역의 중심지로 항상 사람과 물건이 넘쳐나는 활기찬 곳으로 부유한 상인들도 많았다. 야사의 아버지는 바라나시에서도 유명한 대부호 상인이었다. 부자 아버지를 둔 덕에 야사는 어려서부터 물질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


여름, 겨울, 그리고 우기를 위한 3개의 궁전을 갖고 있었으며, 그 궁전에서 수많은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밤낮으로 환락을 즐기는 등 매우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생활…. 하지만 야사는 뭔가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아름다운 처도, 기녀들과 함께 하는 환락의 시간도 그에게 큰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사는 지금 자신이 즐기고 있는 쾌락의 본질을 꿰뚫어보게 되는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그날도 역시 밤늦도록 아름다운 시녀들과 함께 향연을 즐기다 잠이 들었다. 목이라도 말랐던 것일까. 새벽녘 문득 잠에서 깨어난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야사는 순간 역겨움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태를 부리던 여인들은 어디로 가고, 뒤엉킨 머리카락에 침까지 흘리며 잠꼬대하는 추한 여인들이 쓰러진 채 자고 있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자고 있는 그녀들은 마치 버려진 시체처럼 해괴망측하여 마치 무덤가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야사는 그 길로 집을 나섰다. 혐오감과 무상함이 야사의 전신을 휘감았다. 홀로 집을 나선 야사는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호소하며 정처 없이 헤매다 미가다야를 향하게 되었다. 부처님이 그를 발견하신 것은 바로 이때였던 것이다.


고타마 싣닷타와 출가 과정이 너무나도 유사한 야사. 하지만 두 사람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싣닷타는 오랜 세월 정진하며 스스로 깨달음의 길을 열어야 했지만, 부처님이라는 훌륭한 스승과 조우할 수 있었던 야사는 훨씬 쉽게 그 길로 다가갈 수 있었다.


한편, 아침 무렵이 되어서야 야사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그의 집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야사의 부모는 사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가 미가다야로 향한 것을 알고 서둘러 그 쪽으로 향했다. 부처님은 저 멀리 야사의 아버지가 오고 있는 것을 보자, 신통력으로 그 자리에 있던 야사를 아버지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했다. 눈앞에 아들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야사의 아버지는 부처님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야사라는 청년을 못 보셨습니까?”
“이리 와서 앉으시오. 여기 앉아 있으면 야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오.”
부처님의 대답을 들은 야사의 아버지는 기뻐하며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를 위해 야사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시론·계론·생천론 등을 설하셨고 그 역시 진리를 보는 눈을 얻었다. 감격한 그는 부처님께 귀의의 뜻을 밝히고 우바새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가르침이 설해지고 있는 동안, 야사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경지를 관찰하여 집착을 여의고 마음이 번뇌로부터 해탈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더 이상 그가 욕망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신통에 의한 신변을 거두셨다. 야사의 아버지는 아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야사야, 네 어머니는 밤낮으로 슬픔에 젖어 살고 있단다. 어서 가서 어머니의 목숨을 구해다오.”
그러나 야사는 자신은 이미 진리를 보았고, 집착을 여의었으며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고 하며, 더 이상 세속생활로 돌아가 재가자의 몸으로 여러 가지 욕망을 누리며 살 수 없음을 전했다. 결국 야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부모·처는 최초 우바새·우바이


아버지가 떠나자 야사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 밑에서 출가하여 계를 받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여. 가르침은 잘 설해졌다. 괴로움을 완전히 멸하기 위해 청정한 수행을 해라.”
부처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야사의 구족계가 되었고, 이렇게 해서 이때 세상에는 부처님과 5비구를 포함하여 7명의 아라한이 존재하게 되었다. 한편, 야사의 아버지의 공양 초대를 받아 그들의 집으로 가신 부처님은 야사의 어머니와 야사의 출가 전의 처를 교화하셨으며, 이들 역시 재가신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야사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는 각각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최초의 우바새와 우바이가 된다.


또한 이때 야사의 친구인 위마라(Vimala), 수바후(Subāhu), 푼나지(Puṇṇaji), 가왐파티(Gavaṃpati)의 4명도 출가하게 된다. 이들 역시 바라나시의 대장자의 아들이었는데, 야사가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자 “야사 정도의 양가집 아들이 출가할 정도라면, 그것은 아마도 훌륭한 가르침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야사를 찾아갔다. 야사는 자신을 찾아온 4명의 친구를 데리고 부처님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이들은 제가 재가생활을 할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입니다. 이들을 위해 가르침을 설하여 부디 깨우쳐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기꺼이 법을 설해 주셨고, 이들 역시 야사처럼 진리를 보는 눈을 얻어 출가했다. 한편, 야사의 다른 친구 50명도 그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앞의 4명의 친구와 마찬가지 과정을 거치며 출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는 61명의 아라한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적극적으로 포교활동을 펴라는 취지의 ‘전도선언’을 하셨다고 한다. 야사와 그의 친구들의 귀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 세상으로 퍼져가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던 것이었다.


야사와 그 친구들의 귀의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들의 귀의 후, 우루웰라에서는 30명의 청년들이 부처님께 귀의한다. 이들은 모두 왕족 출신이었는데, 부부동반으로 혹은 미혼인 자는 기녀를 동반하고 야외로 나와 놀다가 이들이 잠든 사이에 기녀가 귀중품을 가지고 도망쳐 버렸다. 잠에서 깬 후 이 사실을 알고 미친 듯 기녀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질문을 던지신다.

 

▲이자랑 박사

“청년들이여, 자기 자신을 찾는 일과 기녀 한명을 찾는 일 중 너희들에게 있어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이렇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당시 갠지스강 주변의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급격한 물질적 풍요 속에 매몰되어 욕망의 노예로 살아갈 수도 있는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이들의 삶을 진리로 인도했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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