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돈오(頓悟)
18. 돈오(頓悟)
  • 법보신문
  • 승인 2011.10.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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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의 마음이 그대로 부처이며 진리다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에 깨닫게 하는 것이 최상승법
자기 마음속의 선지식을 바로 알면
밖으로 의지하지 않아도 몰록 해탈

 

 

▲육조 혜능 스님이 30년간 법을 펼쳤던 중국 광저우 남화선사 전경.

 

 

선지식들아, 나는 오조 홍인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자 그 말끝에 크게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단박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치게 하는 것이다.(善知識 我於忍和尙處 一聞言下大悟 頓見眞如本性 是故將此敎法 流行後代 令學道者 頓悟菩提 各自觀心 令自本性頓悟)


혜능 스님의 가르침은 철저하게 견성성불(見性成佛)입니다. 성품을 보아 바로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의 본질을 잘 알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혜능 스님은 홍인 스님의 한 마디에 바로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혜능 스님이 사시던 광저우(廣州)에서 스승인 홍인 스님이 계시던 곳까지 대략 1200km거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리로 치면 부산과 서울을 3번 정도 왔다간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거리를 혜능 스님은 걸어서 가셨습니다. 아마도 진리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 이런 머나먼 길을 떠나게 한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사무쳤기 때문에 단박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먼 길을 걸어온 제자에게 홍인 스님이 들려주신 가르침은 금강경의 한 구절인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基心)입니다. 머무는 바 없이, 혹은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을 내라. 혜능 스님은 이 가르침에 바로 견성했습니다. 견성은 바로 성불입니다. 이것이 곧 돈오(頓悟)입니다. 혜능 스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단박에 깨닫는 것입니다. 혜능 스님의 손자뻘인 마조도일 스님은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라고 했습니다. 또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의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고도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처이며, 일상의 마음이 부처와 다르지 않으며 진리 그 자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은, 또 그 본질에 있어서 부처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만약 이것을 확연히 보거나 알면 바로 부처가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지식들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자성을 볼 것이니라.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최상승법이 바른 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이 큰 선지식이며 큰 인연이다.(若不能自悟者 須覓大善知識 示導見性 何名大善知識 解最上乘法 直示正路 是大善知識 是大因緣)


자기가 곧 부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다면 반드시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배워야 합니다. 선지식의 원래 뜻은 좋은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선불교에서는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스승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 주시는 사람이 선지식입니다. 만약 스스로 깨치지 못한다면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가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불의 인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선지식은 큰 인연이며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부처님을 보게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진리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 바로 선지식입니다. 여기서 최상승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최상승법은 근기에 따라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교화방법에 따른 것입니다. 부처님은 근기가 낮은 사람에게는 선업(善業)을 짓게 하여 선근(善根)을 증장시키지만 상근기의 사람에게는 진리의 당체를 바로 설해 곧바로 깨닫게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최상승법은 단박에 깨닫는 남종선(南宗禪)을 가리킵니다. 견성성불. 즉심즉불의 가르침이 최상승법입니다. 그러니까 최상승법을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선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의 승(乘)은 수레, 혹은 수단의 의미인데 소승(小乘)은 작은 수레, 대승(大乘)은 큰 수레를 뜻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혼자 타는 승용차가 소승이라면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버스나 기차는 대승이 될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느니라.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와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고 말할지라도, 능히 자성을 깨치지 못하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所謂化導 令得見佛 一切善法 皆因大善知識 能發起 故 三世諸佛 十二部經 云在人性中 本自具有 不能自性悟 須得善知識示導見性)


내가 부처라고 하는 진리를 확신할 때 우리는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치의 의심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내가 부처라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내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에 있어서 부처님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것이 혜능 스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과 다르지 않음을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견성성불이 가능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품과 부처님의 성품이 다르지 않기에 성품을 보고 성불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 선불교가 오랜 세월 쌓아온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선지식의 지도는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능히 자성을 깨치지 못하면 선지식의 지도를 통해 자성을 봐야하지만 결국 자성을 보는 것은 자신입니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결국 물을 먹고 안 먹고는 말의 몫이듯이 깨달음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만약 스스로 깨친 이라면 밖으로 선지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밖으로 선지식을 구하여 해탈 얻기를 바란다면 옳지 않다. 자기 마음속의 선지식을 알면 곧 해탈을 얻느니라. 만약 자기의 마음이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라, 한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若自悟者 不假外善知識 若取外求善知識 望得解脫 無有是處 識自心內善知識 卽得解脫 若自心邪迷 妄念顚倒 外善知識卽有敎授 不得自悟 當起般若觀照 刹那間 妄念俱滅 卽是自眞正善知識 一悟卽知佛也)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선지식에 의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궁극적으로 깨달음은 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식의 지도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견성성불은 나의 일입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부처님을 확신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우리의 성품이 부처님과 전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최고의 선지식은 내 안에 내재돼 있는 부처입니다. 다만 마음속에서 오롯하게 빛나고 있는 진여 본체가 구름에 가려 흐려져 있을 뿐입니다. 다른 누가 나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습니다. 또한 깨달음을 외부에서 받거나 획득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부처임을 확연하게 보고 깨달음으로서 성불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달리 변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본래 부처임을 확인하는 것이 견성이며 성불입니다. 따라서 만약 마음이 밝지 못하고 진리를 받을 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하고 은밀하게 진리를 일깨워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지혜로써 스스로를 관조해야 합니다. 항상 내면의 들여다보며 내 안에 내재돼 있는 부처님을 찾아 선지식으로 모셔야 합니다.

 

▲종광 스님
이것이 바로 참된 선지식이며 진정한 선지식이며 번뇌와 망상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몰록 깨달아 부처를 이루게 하는 묘약입니다. 결국 깨달음으로 가는 지도도, 깨달음으로 가는 길도, 그리고 깨달음 그 자체도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깨달음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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