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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동서교역의 중심 ‘레’

기자명 법보신문

실크로드의 거점, 레는 국제무역도시였다

 

▲레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이슬람 사원 자미아. 사원은 레팔레스를 가로막고 있지만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레팔레스는 시내 어디서나 쉽게 보인다.

 

 

낯선 땅 라다크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도시나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는 가장 쉬운 방법은 “레를 기준으로 어디어디 쯤”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라다크 지역의 모든 주요 도로가 레를 기준으로 뻗어나가고 있으니 레는 명실상부한 라다크 여행의 출발점이라 할 만하다. 특히 육로를 이용해 라다크로 들어온 이들은 레에 들어서는 순간 미묘한 안도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낯설고 고독한 미지의 땅에서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듯 한 안도감 말이다. 남쪽 마날리를 거치는 길이나 서쪽 스리나가르에서 카르길을 지나오는 길 모두 해발 5000m를 훌쩍 넘는 고봉준령이다. 그 험준한 산길에서는 한 여름이라도 흩날리는 눈발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고 산비탈에서 굴러 떨어진 낙석으로 도로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한 채 몇 시간을 차 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 라다크 방문 경험이 없는 이들은 수십 시간에 걸친 여정(심지어는 비포장 길이 대부분일지라도) 내내 잠 한숨 자기가 쉽지 않기 마련이다.


라다크의 변화 대변하는 도시


라다크의 중심도시 레는 인도의 어느 곳 못지않게 현대화가 진행된 도시다. 레를 외부세계와 연결해주는 도로는 비교적 잘 포장돼 있고 도심은 북적거린다. 비록 고층빌딩과 네온사인 같은 간판은 눈에 띄지 않지만 화려한 조명이 불을 밝히고 있는 상가의 쇼윈도에는 고급 캐시미어와 각종 보석 세공품들이 멋들어지게 진열돼 있다. 거리에서는 인도 전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온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교통 정체도 일상이 돼 있다. 물론 중심도로를 조금 벗어난 골목길엔 싸구려 음식점과 노점상들도 즐비하다.


“레를 바깥 세계와 연결하는 도로의 건설은 라다크를 전 지구적인 거시경제 속으로 끌어들였고, 지역의 경제활동을 수도에 집중시켰다. 현대 생활의 모든 요소가 그곳에 도입되었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표현처럼 레에는 현대인들의 일상에 요구되는 거의 모든 ‘편의’가 갖춰져 있다. ‘도시 중심에서 어느 쪽으로든 5분만 걸어가면 여기저기 커다란 농가가 있는 보리밭이었던’ 그런 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 대신 중심에서 어느 쪽으로 가든 5분 안에 식당과 기념품가게,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레의 이런 모습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현대인’의 범주에 속해 있는 우리 일행뿐일까.


라다크 일정의 마지막 날 레 시내로 나왔다. ‘여름이면 레의 거리는 차량으로 붐비고 공기는 디젤연기로 숨이 막힐 지경’일 뿐 아니라 ‘전통적인 예절은 사라지고 현대도시 생활의 밀치고 다니기가 자리를 잡았다’며 호지 여사가 안타까워했던 레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깨끗하다. 도로에 차가 많기는 하지만 델리를 비롯해 인도의 여타 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는 드물고 사람들은 비교적 친절하다. 어쩌다 길이라도 물어보면 손짓발짓을 다 동원해 방향을 알려준다. 그래도 안 되면 몇 십m 정도의 거리는 기꺼이 앞장서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리고 헤어질 땐 손을 흔들며 “줄레, 줄레”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런 친절한 안내에 힘입어 레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레 시내의 중심인 메인바자르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 사원인 자미아에서 시작한다. 이 사원은 17세기 무렵 이슬람권의 침략을 받으며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 라다크왕국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16, 17세기 전성기를 구가했던 라다크왕국은 17세기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며 확장하던 무굴제국과 맞닥뜨리며 위축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17세기말 이웃하던 티베트와 부탄 사이에 벌어진 분쟁에서 부탄을 도와 티베트를 침략한 것이 빌미가 되어 1679년 티베트-몽골연합군의 공격을 받기에 이른다. 거대한 연합군에 밀린 라다크왕조는 수도 레를 버리고 서쪽 바스고 요새로 후퇴해 결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라다크의 델렉 남걀왕은 무굴제국에 도움을 요청, 아우랑제브황제의 도움을 받아 티베트-몽골연합군을 라다크산맥 너머 판공호수 동쪽으로 밀어내는데 성공한다.

 

 

▲레 시내의 메인바자르 거리. 사람들과 자동차로 늘 북적인다.

 


하지만 도움의 대가는 상상외로 비쌌다. 아우랑제브는 라다크왕국의 수도 레에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건설할 것과 델렉 남걀왕의 이슬람 개종을 요구했다. 라다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던 캐시미어 교역권과 엄청난 양의 조공 또한 무굴제국에 바쳐야했음은 당연지사였다.


막강한 무굴제국의 배경 위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 자미아는 1685년 완성됐지만 무굴제국의 영향력은 모스크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1세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아우랑제브의 사망과 함께 무굴제국이 급속히 쇠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라다크는 독립왕국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주변 이슬람 왕국의 속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인도 잠무-카슈미르주의 일부로 남게 되었다. 이는 잠무-카슈미르주의 동쪽, 주의 거의 절반이 라다크 지역이면서도 주 명칭에 ‘라다크’라는 이름이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자주권을 찾지 못한 채 강대국의 속국이 되어 역사의 강물에 무기력하게 떠내려 온 라다크왕국은 지도상에 ‘라다크’라는 이름을 남길 용기도, 그 이름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의지마저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비록 라다크왕조의 남걀 가문이 지금까지도 ‘자기르’라 불리는 작은 영토와 왕궁을 소유한 채 지방 토후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라다크 민중들로부터 그리 커다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라다크산맥서 내려다본 레. 우측 언덕 위의 하얀탑이 일본 불교계가 건립한 산티스투파다.

 


이슬람 점령 역사의 상징 모스크


역사를 대변하듯 자미아사원은 레팔레스의 전면을 떡하니 가리고 서 있다. 마치 라다크왕국 따위는 이슬람제국에 가려 이제 곧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것임을 예고하듯. 하지만 여전히 레팔레스는 우뚝 솟아 라다크를 굽어보고 있다. 오히려 자미아는 타르초의 펄럭임 속에 휘감겨 있는 듯 보인다. 왕이나 왕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박하지만 살구나무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라다키들과 그들의 불심에 의지해 레는 여전히 라다크의 중심이자 라다크 불교의 중심으로 위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레를 굽어보고 있는 레팔레스.

 


사실 레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레가 외국인들에게 개방되면서 서쪽으로부터 들어온 이슬람상인뿐 아니라 델리 등 남쪽에서 들어온 힌두교도들도 적지 않다. 그보다 앞서 유럽의 영향력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던 19세기 말부터는 유럽의 모라비아교회가 진출해 레에 선교본부를 세우며 기독교 전파의 중심지로 삼기도 했다. 지금도 레에는 모리비아 선교회에서 세운 교회와 미션스쿨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별다른 충돌은 없을까.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힌두교의 신상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튀김가게 옆으로 법륜 마크가 선명한 기념품가게가 있고 그 길 맞은편에서는 이슬람교도가 운영하는 서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오늘날의 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레의 중심, 메인바자르에는 라다크불교협회의 본부인 소마곰빠가 있다. 라다크불교협회는 근현대 이슬람과 유럽의 영향력으로부터 사실상 라다키들의 자치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구심점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라다크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라다크 지역에서 벌어지는 외래 종교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다.


20여년 전 라다크에서는 불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충돌이 발생했었다. 잠무-카슈미르주의 통치권이 주도 스리나가르를 중심으로 이슬람권에 집중되자 이슬람세력의 오랜 지배로 인해 쌓여왔던 라다키들의 불만이 폭발, 1989년 두 종교간의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순박하고 온순한 줄만 알았던 라다키들이 집단 반발하며 잠무-카슈미르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자 당황한 인도 정부는 1992년 라다크자치산악개발위원회를 결성, 라다키들의 자치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여전히 라다키들의 자치를 인정하려들지 않는 잠무-카쉬미르주정부와 종종 충돌이 일기도 하지만 더 이상의 큰 문제는 최근까지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인도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며 무력유혈사태를 불사하는 서쪽의 이슬람세력에 비하면 라다키들의 자치 요구는 차라리 애교에 불과한 수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재래시장엔 각국 물건 모여들어

 

 

▲레에서는 잔스키르산맥의 최고봉인 스톡깡그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레에서 라다키들의 불만이나 종교간 갈등 따위를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는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있는 모습, 그것이 레의 인상이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레의 오래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동쪽의 중앙아시아로부터 서쪽의 유럽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 교역의 거점지였던 레에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종교가 모여들었을 것이다. 길고도 고된 고산의 교역로를 지나온 상인들이 레에 이르러 비로소 짐을 풀고 잠시의 휴식을 맛보았을 것이다. 서쪽으로 더 나아가 파키스탄과 유럽까지 갈지, 아니면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인도로 내려갈지도 이곳 레에서 결정되었으리라. 그러니 당시 레는 명실상부한 국제도시가 아니었을까.


‘레를 바깥 세계와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되기 훨씬 전부터 수많은 상인들이 고갯길을 따라 레를 오갔을 것이며 동서양의 진귀하고 다양한 문물들이 모이고 흩어졌을 것이다. 히말라야 자락의 고립된 하늘도시가 아닌 국제무역도시 레, 그것이 훨씬 더 적합한 이름일 것이다. 라다크가 수세기동안 주변 국가들의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려야 했던 것도 이곳이 동서교역의 중심, 막대한 물자가 오가던 활기 넘치는 교역중심지였기 때문 아닌가.


허름한 천막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는 올드마켓이나 길가의 노점상에서는 네팔과 티베트, 아니면 남인도나 멀리 파키스탄 어디쯤에서 온 듯한, 조금은 비슷하고 조금은 달라 보이는 다양한 물건들이 어우렁더우렁 뒤섞여 펼쳐져 있다. 그 복잡하지만 활기 가득한 풍경 속에 레의 옛 모습이 서려있는 듯 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은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레 도심 어디쯤에서 해질녘까지 계속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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