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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닭

기자명 법보신문

성미 급한 군다리보살 화신…깨달음 상징

 

▲조계사 법당 문에 새겨진 닭.

 

 

보살은 자비롭고 자애로운 이미지가 강하다. 정설처럼 굳어진 얘기다. 헌데 성미가 급하기도 했다.‘천수경’에는 “나무 군다리보살 마하살”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군다리보살은 인간 마음 속 마귀를 잡아 불성을 지키는 신장과 같다. 별나라마다 혼란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무찌르고, 선을 지키는 보살이다. 이 보살이 바로 닭신이다.


군다리보살이 왜 닭과 인연이 닿을까. 닭은 누구보다 먼저 새벽을 맞이하고 울음을 터트려 인간에게 알려준다. 이런 까닭에 신의 새로 여겨졌다. 그런데 깜빡 존다면 어떨까. ‘본생경’에는 아침마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수행하는 500비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닭 때문에 고생한 일화가 나온다. 군다리보살도 졸았다. 낮이나 밤이나 악마로부터 불성을 지키던 군다리보살에게도 졸음이 몰려왔다. 그 순간 들이닥친 악마들로 인해 본래 마음은 혼란에 빠졌고 군다리보살은 변명이나 자초지종을 들을 여유도 없이 긴 칼로 악마 냄새가 나는 모든 것들을 내리쳤다. 자신이 존 탓에 성미 급하게 마구 베다보니 칼 맞은 이가 악마가 아닐 수도 있었을 터다. 악마란 불성을 유혹하는 탐, 진, 치 삼독심이다.


불교에서는 본래면목, 참나, 불성을 바로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 일컫는다. 삼독심에 물들지 않고 불성이 자유자재하기 위해 군다리보살이 존재한다. 하지만 졸았으니 앞뒤 판단할 새가 어디 있었으랴. 그런데 이 군다리보살이 제 때 울기도 한다. 조선시대였다. 서산대사가 지리산 여러 암자로 운수행을 다녀도 일대사를 해결하지 못하자 친구를 만나러 마을로 내려갔을 때였다. 갑자기 닭이 홰를 치며 크게 우는 소리를 들었고, 순간 대사는 확연히 깨쳤다. 그리고 이런 오도송을 남겼다.


“머리는 희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다/옛 사람이 일찍이 말했네/닭 우는 소리 듣는 순간/장부의 할 일 다 마쳤네//홀연히 본래 내 집에 돌아오니/모든 것이 다 이것뿐이구나/팔만 사천 대장경도/본래 이 하나의 빈 종이일 뿐이로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문에는 닭이 새겨져 있는데 속히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걸림 없는 게 자유인이라며 닭고기도 마다 않는 수행자나 불자들. 그 마음 속 군다리보살이 아마 ‘깜빡’ 졸고 있는 탓이리라.


문헌에는 닭과 관련한 설화가 많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시조 혁거세왕이 알에서 태어났다. 더구나 왕후를 구하고자 했을 때 계룡(요즘 유행하는 말로 닭용)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에서 닭 부리 같은 입술을 지닌 여자 아이를 낳았다. 사람들이 월성 북쪽 냇가에 가서 목욕시켰더니 부리가 빠지면서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김알지 탄생담에도 닭이 등장한다. 신라왕이 서쪽 숲에서 닭 울음을 듣고 알아보니 나뭇가지에 걸린 금빛 궤 아래 흰 닭이 울고 있었다. 그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었고, 이 아이는 경주 김씨 시조가 됐다고 한다. 궤가 나온 숲은 그 뒤 계림(鷄林)이라 했으며 신라 국호로 쓰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쌍계사는 대개 두 개의 물줄기를 품고 있다는 뜻인데 신라 서곡대사가 세운 고찰 강원도 홍천 쌍계사는 ‘雙鷄’라고 쓴다. 서곡대사가 닭 울임이 있는 명당에 절을 세우고자 계란 2개를 땅 속에 묻었더니 새벽에 닭 두 마리가 홰치며 운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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