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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신라의 설화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의 업보윤회사상 신라인들 세계관으로 정착

형제 얘기 다룬 설화 등
신라의 설화문학 본격화


법화경 신앙·영험담 모은
다양한 설화들도 선보여

 

 

▲신라의 불교수용과 더불어 업보윤회사상은 설화를 매개로 일반 민중에게 폭넓게 확산됐다. 사진은 신라 ‘법화경’ 설화의 무대로 등장하고 있는 문경 사불산 대승사 전경.

 


신라의 제일귀족 김(金)씨의 먼 조상 방이에게는 한 동생이 있었는데, 재산이 매우 많았다. 형 방이는 동생과 분가해서 살았기에 의식을 구걸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빈터 1묘를 주자 방이는 동생에게 누에알과 곡식의 씨앗을 달라고 했다. 동생은 누에알과 씨앗을 쪄서 주었지만 방이는 이를 몰랐다. 누에알이 부화했을 때 단 하나만 살아 있었는데, 그것은 날마다 1촌(寸) 정도가 자라 열흘 만에 소처럼 커서 몇 그루의 뽕잎을 먹어도 부족했다.

 

동생은 그 사실을 알고 틈을 노려서 그 누에를 죽여 버렸다. 하루가 지나자 사방 백리 안의 누에가 모두 방이의 집으로 날아들었다. 나라 사람들은 죽은 큰 누에를 누에의 왕이라고 했다. 방이의 사방 이웃이 함께 고치를 켜도 일손이 부족했다. 씨앗은 오직 한 줄기만 자랐는데 그 이삭은 1척 정도나 되었다. 방이가 항상 그것을 지켰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새가 그 이삭을 꺾어서 물고 가버렸다. 방이가 그 새를 쫓아서 산을 올라 5~6리나 갔는데, 새가 한 돌 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해가 지자 곧 어두워졌지만 방이는 그 돌 곁에 머물러 있었다. 밤중이 되어 달이 밝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붉은 옷을 입고서 함께 놀고 있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너는 무엇이 필요하니?”
다른 한 아이가 말했다.
“술이 필요해.”


그 아이가 하나의 금방망이를 꺼내어 돌을 치자 술과 단지가 모두 차려졌다. 또 한 아이가 음식이 필요하다고 함에 또 그것을 치니까 떡과 국과 불고기 등이 바위 위에 차려졌다. 한참 만에 그들은 음식을 다 먹고 흩어지는데, 금방망이는 돌 틈에 끼워두었다. 방이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그 금방망이를 가지고 돌아왔다. 원하는 대로 금방망이를 두드려 갖춤에, 이로 인해서 부가 국력과 같을 정도였다. 방이는 항상 진주와 구슬을 동생에게 넉넉히 주었지만, 동생은 나도 형과 같이 금방망이를 얻었으면 하고 말했다. 방이가 그 어리석음을 알고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동생도 누에알을 부화시켜 하나의 누에를 얻었지만, 보통 누에와 같았다. 곡식 종자도 심어서 역시 한 줄기가 자랐는데, 장차 익을 무렵에 또 새가 물고 가 버렸다. 동생이 대단히 기뻐하면서 새를 따라 산에 들어갔다. 새가 들어간 곳에 이르러 한 무리의 도깨비를 만났는데, 그들은 화를 내면서 말했다.
“네가 우리의 금방망이를 훔쳐 간 자이다.”
이에 그를 붙잡고서 말했다.


“너는 우리를 위해 3판(版)에 이르는 담장을 쌓겠느냐? 아니면 네 코를 1장(丈)으로 길어지게 해주기를 바라느냐?”


동생은 3판의 담장을 쌓겠다고 청했지만, 3일이 지나자 배고프고 피곤하여 담장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도깨비에게 애걸했지만, 도깨비는 그의 코를 잡아 뽑았다. 동생은 코끼리 코와 같은 코를 하고서 돌아왔다. 나라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그를 구경하고자 모여들자 동생은 원망하고 부끄러워하면서 죽고 말았다. 그 후 방이의 자손들이 장난삼아 금방망이로 이리의 똥을 요구하자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금방망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상은 방이설화다.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이 860년에 편찬한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수록되어 전하는 설화다. 이 설화에는 착한 형 방이와 심술이 많은 동생이 등장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구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도깨비 방방이의 위력이 돋보인다. 권선징악의 성격이 강한 이 설화에는 아직 불교적 영향은 보이지 않는다.


7세기 후반에 활동한 의적(義寂)은 25부 70여권의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법화경’ 신앙 영험담을 모은 ‘법화경집험기(法華經集驗記)’는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영험담은 거의 모두가 중국 것이지만, 신라의 ‘법화경’ 신앙을 고취하는 의미는 있었을 것이다. 신라에도 ‘법화경’의 독송이나 강의와 관련된 영험설화가 있었다. 대승사(大乘寺)에는 ‘법화경’을 독송한 비구의 무덤에 연꽃이 피어났다는 설화가 있었다. ‘신라고기(新羅古記)’에 전한 이 설화는 대략 이렇다. 상주 사불산(四佛山)의 대승사는 진평왕 10년(588)에 창건되었다. 그리고 이 절에 ‘법화경’을 독송하는 비구를 청하여 향화를 맺게 했다. 용맹정진으로 수행하기 몇 년에 비구가 입적하자 제자들이 암석 사이에 묻었는데, 훗날 그 무덤 위에 연꽃이 피어났다. 이때부터 이 신령한 유적을 찾아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불산에는 백련사(白蓮社)가 있었는데, 원효가 이곳에서 ‘법화경’을 강의함에 맨 땅에서 흰 연꽃이 피어났으므로 이렇게 이름 했다는 이야기가 산중에 전하고 있었다.


김과의(金果毅)의 아들이 ‘법화경’을 애독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김과의의 아들은 어려서 출가하여 즐겨 ‘법화경(法華經)’을 읽었는데, 제2권에 이르러 잘못으로 글자 한 자를 태웠다. 그는 나이 18세에 갑자기 죽어서 다른 곳의 또 다른 김과의(金果毅)의 집에 환생(還生)하였다. 또 다시 출가하여 ‘법화경’만을 애독하였는데, 제2권의 한 글자만은 매번 물어도 잊어버렸다.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말했다.


“스님은 전생에 어느 고을 김과의의 집에 태어나서 또한 출가하여 ‘법화경’을 독송하다가 잘못으로 글자 하나를 태웠으므로, 금생(今生)에서는 알았다가는 곧 잊어버리곤 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그 ‘법화경’이 지금도 있으니 가서 스스로 살펴보십시오.”


이 젊은 스님은 꿈에서 일러준 대로 찾아가 보았더니, 과연 그 집이 있었다. 들어가서 물어보니 전생의 부모임이 거의 확실하였다. 옛 경을 찾아내어 제2권에서 실제로 한 글자가 탄 것을 보았다. 스님과 전생의 부모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두 집은 마침내 친해져서 한 집안처럼 지냈다. 이 사실이 주현(州縣)에 알려지고 고을에서는 나라에 보고하여, 온 나라에 전해졌다. 7세기 전반 정관(貞觀, 623~649) 때의 일이었다고 하니, 대개 선덕여왕대에 해당한다.


업보윤회 관련 설화 다수
신라사회에 폭넓게 유포


화 잘내는 승려 뱀 되거나

나무 된 승려 얘기도 등장


불교설화 중에는 업보윤회와 관련된 설화가 많았던 것 같다. ‘석문자경록(釋門自鏡錄)’에는 평소에 화를 잘 내던 승려가 죽어서 뱀으로 환생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흥륜사(興輪寺)는 신라 최초의 왕실 사찰이다. 흥륜사의 제일노승(第一老僧) 도안(道安)이 어려서 출가하여 이 절에 주석했는데, 경론(經論)에 해박했다. 그러나 그는 음식을 편식하여 그 맛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몽둥이를 휘둘렀다. 아침저녁으로 급급했지만 편안한 날이 없었다. 대중에게는 환난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훗날 병으로 인해 더욱 심해져서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집어던져 안팎의 친한 이웃도 감히 엿보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뱀으로 변했는데, 길이가 100여척이나 되었다. 으르렁거리며 방을 나가 임야(林野)로 달려갔다. 이를 보고 들은 도속(道俗)이 마음 아파하면서 교훈으로 삼았다. 그 절에는 또 한 비구니가 있었는데, 그의 성품도 진심(瞋心)이 많아 화를 잘 내었다. 죽은 며칠 뒤에 나타나서 스승에게 아뢰었다.


“좋지 못한 곳에 태어나 독사의 몸으로 변하여 성(城)의 남쪽에 살 것입니다.”
그리고 울면서 물러갔다. 뒤에 과연 성 남쪽 수리에 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머리는 말과 같이 크고 몸은 길어서 3장(丈)이나 되었고, 굴러서 다니고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쫓겼다.


평소에 화를 잘 내던 승려가 죽어서 뱀이 되었다는 설화는 다분히 교훈적이다. 이처럼 신라에는 업보윤회와 관련된 설화가 상당히 많았다. 이들 설화는 업보윤회사상이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신라 사회에 유포되어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전생에 진 빚을 갚기 위해 그 집 정원의 나무에 버섯으로 환생했다는 설화도 있었다.


7세기 전반인 수(隋)나라 말경 신라에 한 스님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수행이 훌륭했고, 저서도 많았다. 그 스님은 한 신도 집에서만 10년간 공양을 받았다. 신심 깊고 가세가 풍족한 신도는 아침저녁으로 그 스님에게 사사(四事)로 공양하기를 극진히 했다. 스님이 연세 많아 돌아가심에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다. 며칠 후 그 신도 집 정원의 고목에 부드러운 버섯이 돋아났다. 그것을 따 국을 끓임에 맛이 고기와 같았다. 온 식구가 기뻐하며 매일 그 버섯을 땄지만 나무에 두루 돋아나 부족함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서는 친한 이웃이 다 함께 나누어 먹었다. 어느 날 밤 서쪽에 사는 이웃사람이 담을 넘어 들어와 칼로 도려내어 훔쳐가고자 했다. 갑자기 나무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누가 내 살을 도려내는가? 나는 당신에게 빚진 일이 없소.”
그 사람이 놀라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지난날의 모 스님이요. 나는 도행(道行)이 경미하여 주인의 중한 마음의 공양을 받았지만, 그 업을 능히 소멸시킬 수 없었소. 이 때문에 이곳에 와서 그 빚을 갚고 있소. 당신이 나를 위하여 물건을 구걸하여 주인에게 돌려준다면 나는 곧 해탈(解脫)을 얻을 것이오.”


그 사람은 스님을 기억했으므로 기이하게 생각하고 감탄하면서 곧 주인에게 고했다. 이를 들은 주인은 놀라면서, 나무에 대하여 참회하고 사죄하며, 서로의 빚을 면하기로 맹세했다. 이웃 사람이 쌀 100석을 구하여 주인에게 주었다. 그 뒤로는 정원의 고목에 버섯이 돋아나지 않았다.


▲ 김상현 교수
출가한 승려들은 시주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수행이 높은 승려도 평소 신도로부터 받은 시주의 은혜를 갚기 위해 그 집 정원의 고목나무에 버섯으로 돋아났다는 이 설화는 출가 승려들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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