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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짐 내려놓기

기자명 법보신문

물건 정리는 곧 자기 삶에 대한 성찰
작은 보시가 누군가에겐 놀라운 선물

우리 병원에서는 12월20일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와 미얀마로 의료봉사를 떠난다.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 네 분과 행정을 지원해주시는 분이 함께 간다. 의료봉사 때면 법당에서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보다 철저히 준비할수록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묵은 짐 내려놓기’가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이 때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기증받았던 물건들을 의료봉사 현장에서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벌써 큰 박스로 60개나 될 정도로 많은 물건이 모였다. 옷, 가방, 신발, 학용품, 혈압계, 안마기, 그림, 글씨, 차와 다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엊그제는 옷 공장을 운영하는 거사님이 철지난 옷을 곧 보내겠다고 했으니 봉사활동을 떠날 때면 100박스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묵은 짐 내려놓기’를 시작한 것은 작년 8월이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그 분은 할아버지가 입던 옷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계셨다. 태우거나 버리기에는 너무 새것이었던 것이다. 또 한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속가 가족들은 그 분이 남긴 승복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태우거나 버리지 말고 가져오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나눠주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옷을 받아 나눠드리다 보니 이왕이면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 그것을 꼭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른바 ‘묵은 짐 내려놓기’가 그것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쇼핑은 취미나 스트레스 해소방법의 하나라고 한다. 그렇게 쇼핑을 즐기는 가정은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에도 의외로 쌓아놓는 물건들이 적지 않을 듯싶다.


돌이켜보면 주변 환경은 마음상태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필요보다 넘쳐나는 물건들. 그것은 누군가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기보다 번잡스럽게 만들기 십상이다. 마음이 단순명료할수록 내면에 평화가 깃들듯 일상도 정리가 잘 될수록 여유로움이 생긴다. 이런 면에서 집안의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일이다. 꼭 필요할 것 같아 샀지만 한두 번 사용하고는 눈길이 가지 않는 물건들. 새로 산 물건과 비슷한 물건이 이미 있었음도 종종 발견한다.


이런 물건들…. 큰 관심을 못 받던 물건들이 다른 주인을 만나게 되면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상에는 셔츠 한 장 없어서 추위에 떨고 얼어 죽는 이들이 있다. 신발이 없어 돌밭길을 맨발로 다녀야 하고, 연필과 공책이 없어 멀뚱멀뚱 듣고 있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에게 누군가의 묵은 짐은 놀라운 선물이자 새로운 에너지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엄청난 보시바라밀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월에 묵은 짐을 모아 연 바자회에서는 16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의약품을 구입해 몽골에 보내기도 했다. 우리 집 한 켠에 쌓여있던 물건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게 된 것이다.
‘묵은 짐 내려놓기’를 2년째 진행해오면서 두 가지 작은 바람이 생겼다. 하나는 우리의 묵은 짐과 그것으로 마련한 의약품이 북녘 동포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가능하면 많은 사찰들이 묵은 짐을 모아 사회에 회향했으면 하는 점이다.

 

불교가 대중에게 다가서는 일인 동시에 불자들에게 자긍심과 공덕을 쌓도록 도와주는 일인 까닭이다. 


대엽 스님 동국대병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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