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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개

기자명 법보신문

무자 화두 주인공…팔만대장경 제작 도와

 

▲삼목구. 가희민화박물관 소장.

 

 

유명인사다. 친근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주인을 모시는 충성심도 깊다. 무자 화두 주인공 개 얘기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없다(無).” 선가(禪家)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심심치 않게 들어본 무문관 제1칙 화두다. 조주구자(趙州狗子) 또는 조주무자(趙州無子)로 불리는 이 화두는 번뇌의 씨앗을 송두리째 뽑는 지름길로 알려져 왔다.


하필 개가 화두 주인공일까. 사람들 지척에 늘 개가 있어서다. 개는 전통적으로 잡귀와 액운을 물리치고 집안 행복을 수호하는 영물로 여겨졌다. ‘동국세시기’에는 새해가 되면 부적으로 개 그림을 그려 곳간 문에 붙였다는 풍습이 전한다. 1700년 동안 한국에 뿌리 내린 불교 역시 개가 빠지지 않는다. 삽살개는 ‘귀신과 액운을 쫓는 개’다. 중국서 지장보살로 추앙받는 신라 왕자 교각 스님과 뗄 수 없는 도반이기도 하다. 삽살개 ‘선청’을 데리고 당나라로 구법과 교화의 길에 올랐고 지금도 구화산에는 ‘선청’을 타고 있는 지장보살상이 남아있다.


마치 문수보살과 사자 같은 인연이다. 이 대목에서 자장율사를 빼놓을 수 없다. 자장율사는 신라 28대 진덕여왕 때 대국통을 관뒀다. 대신 석남원에서 수행하며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지성을 다했다. 그러던 날 남루한 옷차림을 한 노인이 망태기를 메고 찾아와 “자장, 자장”하고 율사를 불렀다. 자장율사를 모시던 시자가 그를 나무랐고 자장율사는 좋은 말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노인은 “아상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보리요”하고 망태기에 넣어둔 죽은 개를 허공에 던졌다. 개는 사자로 변했고 노인은 사자 등에 올라타 날아가 버렸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문수보살을 겉모습으로 외면했던 자장율사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합천 해인사 ‘유진 팔만대장경 개강 인유’에는 팔만대장경 제작을 도운 개 설화가 아로 새겨졌다. 이거인이라는 합천 사람은 어느 날 길에서 눈이 셋 달린 강아지를 만나 3년을 한 집에서 동고동락했다. 3년이 지나자 개는 병들지도 않았는데 밥도 먹지 않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 거인은 불쌍히 여겨 관을 짜 깨끗하고 양지바른 곳에 개를 묻었다. 제문도 지어 슬픔을 달랬다. 뒤이어 거인도 죽어 저승길에 올랐다. 웬일인가. 첫 번째 관문에서 만난 눈이 셋 달린 삼목대왕(三目大王)이 거인 손을 잡으며 반가이 맞이하는 게 아닌가.


사연인 즉 삼목대왕이 죄를 지어 개 모습으로 이승에 귀양 왔다 거인에게 신세를 진 것이다. 삼목대왕은 은혜를 갚고자 거인에게 염라대왕 앞에서 고할 말을 귀띔했다. 거인은 삼목대왕이 시키는 대로 했다. “법보(法寶)의 고귀함을 판에 새겨 세상에 널리 알리지 못하고 온 것이 후회스럽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명부에서 거인 이름을 지웠다.


비슷한 얘기도 전해진다. 용왕 딸이 노부부의 개로 살았다. 3년 뒤 죽은 개는 용궁에 노인을 초대했다. 노인은 용왕 딸이 미리 일러 준대로 ‘해인(海印)’을 선물로 받아와 여생을 행복하게 살다 절을 지었다는 설이다. 민화 가운데 삼목대왕을 표현한 세눈박이 개 그림이 있다.


개의 충직함은 전생과 금생을 넘나드는 불교설화에서도 끔찍하다. 복날이면 보신탕 음식점을 찾아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하는 인간들도 끔찍하다. 경전은 동물이 전생에 부모나 형제라 이르는데, 인간이 영양을 보충하는지 악업을 보충하는지 모를 일이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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