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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돼지

8계 지키며 성불 꿈꾸다 ‘고기’로 전락

 

▲밀양 표충사 대웅전 추녀의 저팔계 잡상.

 


지글지글 굽던 ‘돼지고기’는 하늘에선 제독이었다. 10만 수군을 이끌던 천봉원수(天蓬元帥)였다. 천봉원수는 아홉 날 쇠스랑 하나로 무력을 뽐내며 하늘 수군을 수족처럼 부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늘과 고추에 된장을 찍어 쌈을 싸 입으로 가져가던 ‘돼지고기’가 사실 핏줄 선 팔뚝을 자랑하며 권력을 휘두르던 존재였다는 거다.


어쩌다 ‘고기’로 전락했을까. 먼저 돼지로 환생한 이유를 ‘서유기’가 소상히 밝히고 있다. 평소 색을 밝히는 게 흠이었다. 천봉원수가 술자리서 선녀를 희롱했고, 하늘에서 쫓겨난 원수는 돼지로 몸을 바꿨다. 자업자득인 게다.

 

다행히 인생역전 기회는 왔다. 관세음보살에게 서역으로 가는 스님 한 분 잘 모시면 성불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능히 깨달으라’는 법명 저오능(猪悟能)도 받았다. 부처님 된다는데 앞뒤 잴 것 없지 않은가. 오신채와 육식을 끊는 등 8가지 계를 지키며 지내다 인도로 법 구하러 순례 중인 삼장법사 현장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계율을 철저히 지키라며 팔계(八戒)라고 불렀다.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완수하자 석가여래께 각자 벼슬을 받았는데, 팔계는 공양 음식을 먹는 정단사자(淨壇使者)에 임명됐다. 나름 출세한 셈이다.

 

경남 밀양시 표충사 대웅전 기와지붕 추녀마루 위 장식용 기와인 잡상(雜像)으로도 등장한다. ‘어우야담’은 잡상이‘서유기’ 등장인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궁궐과 사찰을 수호한다며 돼지를 잡상 서열 3번째라고 했다.


상징처럼 굳어진 부정적 이미지는 별 수 없다. 5백 권속을 데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던 돼지왕은 한 마리 호랑이를 만났다. 길을 비키라는 호랑이 말에 돼지왕은 무리들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고 평소처럼 허세 작렬하며 말을 건넨다. “대대로 내려온 갑옷을 입고 싸우자”며 돼지똥을 온몸에 칠갑한다.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한 호랑이는 “더러워서 피한다”고 자리를 뜬다. 돼지왕은 더욱 더 의기양양 한다.

 

‘중아함경’에 전하는 이 설화는 맑고 향기로운 수행을 택한 납자들이 세속 물욕에 찌든 이들과 다투지 말라는 얘기다. 돼지왕의 어리석음도 꾸짖고 있다.


돼지가 인간 눈에 띈 뒤부터 대대로 내려온 안 좋은 이미지는 낙인이 됐다. 개, 고양이와 달리 살찌고 더럽다는 이미지까지 천형처럼 더해졌다. 선녀에게 수작 건 죄로 하늘서 쫓겨난 뒤 돼지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아예 먹거리로 떨어진 게다. 여인을 탐한 죄는 지금도 계속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소, 닭, 돼지는 총 7억4000여만 마리가 도축됐다. 우리는 1인당 총 50.4kg의 고기 중 돼지고기 19.3kg을 먹어치웠다.


꼭 돼지만 탓할 문제일까. 이미지는 인간이 만들었다. 지나친 육식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은 말해 입 아프다. 육식에 따른 동물학대도 돼지에겐 고통이다. 세상 빛 본지 얼마 안 돼 생식기가 잘린다. 수퇘지 고기 특유의 노린내를 인간이 싫어해서다. 스트레스로 서로 꼬리를 문다며 이빨과 꼬리도 잘라버린다.


그 많은 업은 누가 책임질까.‘능엄경’은 말한다. “고기 먹는 자들은 서로 살생해 먹는다. 이 생에서는 내가 너를 먹고 다음 생에서는 네가 나를 먹는 악순환을 영원히 끊지 못한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업에 따라 윤회한다는 부처님 가르침이 과연 어디까지 통용될까. 오늘도 저팔계는 가마솥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져 사람들 입에서 성불(?) 중이다. 돼지를 성불시킨 업은 어떤 몸을 받을지 두렵다.              


최소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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