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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흙에서 피는 연꽃

기자명 법보신문

평온의 길은 불안한 마음 가운데 있다

 

▲미술가이기도 한 리사 언스트 법사가 그린 백련화.

 

 

연(蓮)은 진흙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성장하고 꽃피우는 방식으로 인해 연꽃은 불가에서는 귀하게 다뤄져 왔다. 연은 탁한 진흙 속에서 무성하게 자라지만 그럼에도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꽃 중의 하나로 거듭난다. 부처님께서는 탁하고 어두운 마음 상태가 바로 우리의 불성이 자라날 곳이라고 가르치셨다.
자성(慈性)을 깨닫기 위해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를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나는 이러한 가르침이 명확하게 내 자신의 삶에서 드러나거나 투영되는 일정한 수준의 상황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래드너호’(호수, Radnor Lake)에서 걸어서 도착할 수 있을 만한 곳에 살고 있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을 때는 ‘태고’(太古)의 순수와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있는 평화로운 주립공원이다.


어두운 마음서도 피어나는 불성


나의 집에서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일주일에 서너 차례 호수 주변의 길을 따라 걷곤 했었다. 우기 때가 되면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종종 질척거렸고 그로인해 찾는 사람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발이 더럽혀지기 때문에 진흙탕 길을 걷는 것을 꺼린다. 우기에 사람들이 호수에 가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한 현상도 경험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나는 그렇다고 해서 ‘하이킹’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가장 질척거리는 장소를 피하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대개 퇴근 후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오후 무렵쯤 그곳에 도착하곤 한다. 호수 주변의 자연과 교감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런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종종 그날 일어난 일에 정신이 팔린 채 바삐 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나의 마음은 종종 내 몸뚱이만큼이나 급하게 변한다. 오랫동안 이렇게 해오다 보니 이제는 주변의 아름다움이나 ‘자연의 환희’에 대해 무감각해진 채로 ‘하이킹’에만 몰두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외형상으로는 ‘래드너호’는 명상수행 외의 방식(Off cushion)으로 내가 깊은 통찰력을 얻는 곳이다.


‘래드너호’에서 혼자 산책하는 일부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대화를 하거나 ‘아이팟’(iPod 단말기기)으로 음악을 듣고자 할 뿐 단순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관심 자체가 없어 보인다. 일부이기는 하나 ‘마음챙김’ 수행을 위해 천천히 길을 따라 걷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 자체로는 좋은 수행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때로는 과도한 심리적 활동으로부터 벗어나 일시적으로 소강상태가 되는 시간일 뿐이다. 나의 경험에 관해 말할 것 같으면 만약 삶에 있어서 일상적인 외부의 고민거리가 없다면 내면의 생각과 감정의 강렬함은 대부분의 경우 길을 걸어갈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다보니 길이 질척이는지 말라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다가 종종 진흙탕 길에 빠져버리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인간적인 나의 불완전성에 빠져들어 감에 따라 반대로 나는 내면의 지혜에 더욱 다가갈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


오로지 평화로운 ‘마음챙김’만이 ‘래드너호’ 같은 장소에 어울린다는 생각에 집착한다면 우리 자신의 위대한 자성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리는 꼴이 된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생각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부정하고 저항할 때나 사용할 수 있다.


수행은 도피 아닌 직시의 수단


‘하이킹’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하게 되면 나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래드너호’로 염주를 가지고 와서 길을 걸으면서 ‘자비수행’을 시도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런 수행을 하는 나의 의도는 바르지 못했다. 가슴과 마음을 열리게 하는 유용한 방편으로서 그 수행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나의 불안에 대해 등을 돌리기 위한 방법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피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효과가 없었고 나는 그런 노력을 중단했다. 오랫동안 간절하게 수행하다 보면 특정 수행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저항하거나 억압하는데 사용하는가를 보다 빨리 분별할 수 있게 되는 이점이 생겨난다.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 대하고, 영적인 이상은 흘러가게 놓아버리고, 경계에 이끌리지 않고 인간의 불완전성 그 한가운데에 머무를 수 있기 위해서는 엄격한 용기가 필요하다. ‘래드너호’에서 길을 걸을 때, 명료함이 깃들어 있는 평온의 길은 나의 불안정한 마음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번뇌로 가득 찬 마음에 덧붙기 마련인 근심과 두려움에 진실로 손길을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멈추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자연의 소리와 풍광은 생생하게 살아나게 된다. 가슴이 온화해지고 열림으로써 눈물을 흘리거나 미소 지을 수도 있겠지만 마음은 급한 발걸음을 지금 이 순간에 오직 멈추게 할 뿐이다. 바로 이 고비의 순간에 먼지투성이거나, 건조한 상태이거나, 진흙으로 질퍽거리거나 관계없이 그 길을 따라가는 걸음걸음은 있는 그대로 ‘존재함’이다. 그 자체는 감사의 마음과 늘 함께한다. 내가 투쟁하느라 몸부림쳤던 그 대상은 무엇이었던 간에 이제 명료해졌고 더 이상은 해결해야 할 문제 덩어리가 아니다. 연꽃은 참으로 진흙 속에서 맑은 꽃을 피운다.
 

백영일 번역편집위원 yipaik@wooribank.com


 


▲리사 언스트 법사

리사 언스트 법사

20여년 전 선불교와 남방불교를 공부하면서 명상수행에 입문했다.
6년 동안 명상수행을 지도해 왔고 수행모임인 ‘인사이트 LA’의 창립자이자 지도법사인 ‘트루디 굿맨’으로부터 2010년 공식적으로 법을 전수했다.
언스트 법사는 교도소와 대학, 기업 등에서 명상수행을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 남동부에 위치한 테네시주에 ‘일법(一法)내슈빌(One Dharma Nashville)’이라는 수행단체를 설립, 수행을 전하고 있다. 불자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루 또는 장기 안거수행 코스를 개설해 수행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그녀는 수상 경력이 있는 전문 미술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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