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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고양이

장화 대신 불심 챙겨…화두에도 등장

 

▲오대산 상원사 고양이 석상.

 

 

요즘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슈렉보다 유명한 캐릭터가 떴다. 장화 신은 고양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애교가 스크린에 비출 때면 신음 섞인 탄성이 객석을 장악한다. 소위 ‘내가 제일 잘 나가’는 동물이다.


장화와 모자 그리고 칼로 무장한 서양 고양이와 달리 불심 챙긴 고양이도 있다. SBS 동물농장에서 소개한 상주 용흥사 ‘해탈이’다. 법당 안에서 오매불망 부처님만 바라보고 꼼짝 않는 해탈이 모습이 제작진 카메라에 잡혔고, 놀라운 사실은 꽁치 조림을 마다하는 등 육식을 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아 ‘4년 째 묵언수행’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했다. 사연인 즉 용흥사 인근에서 상처 입고 떨고 있던 새끼 고양이 해탈이를 발견한 스님과 묵언은 물론 살생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왕의 고양이’도 있다. 조선시대 세조는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전신에 종기가 돋고 고름이 나는 피부병에 신음했다. 상원사에서 참회기도를 올리며 병이 낫길 기원하던 중 문수동자에게 등을 맡긴 뒤 피부병은 사라졌다. 가피를 입은 뒤 다시 상원사를 찾은 세조가 곧바로 법당에 올라 예배를 드리고자 할 때였다.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옷자락을 물고 놓지 않았다. 이상히 여긴 세조가 호위무사들에게 법당을 살피라 했고 뜻밖에 불단 밑에서 자객을 발견했다. 세조는 상원사에 고양이를 위한 밭, 묘전(猫田)을 하사하고 한 쌍의 묘상을 석물로 만들어 안치했다. 고양이를 죽이지 말고 잘 보호하라는 왕명까지 내렸다. 서울 근교에도 여러 절에서 묘전을 설치해 고양이를 키웠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서울 봉은사 소재 밭이 묘전이라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당시 부처님께 바치던 쌀을 ‘고양이를 위한 쌀’이라는 뜻으로 ‘고양미’로 불렀다고도 한다. 혹자는 ‘고양미’가 ‘공양미’로 발음이 변했다고 한단다.


화두에도 고양이가 등장한다. ‘무문관’ 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다. 남전화상 회상에서 고양이 새끼를 두고 스님들이 다투자 남전화상이 “누구든지 한 마디 말하면 살리고 그렇지 못하면 단칼에 베겠다”고 했다. 대중이 우물쭈물하자 새끼 고양이를 벴다. 이 소식을 들은 조주는 말없이 신발을 머리 위에 올리고 방을 나갔고, 남전화상은 “조주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다”고 말한 일화에서 온 화두다.


애교가 많아 반려동물로도 인기인 고양이는 언제부터 안방까지 들어왔을까. 제법 그럴듯한 설화가 있다. 잉어로 변한 용왕 아들을 낚았던 어부는 잉어를 놓아준 대가로 여의주를 받고 부자가 됐다. 이를 탐낸 방물장수 할멈이 여의주를 훔쳤고, 격분한 어부집 개와 고양이가 할멈 집에 잠입했다. 개는 망을 보고 고양이는 쥐왕을 볼모로 잡아 쥐떼를 시켜 여의주를 찾아냈다. 아뿔싸. 여의주를 입에 물고 개 등을 타고 강물을 건너던 고양이가 여의주를 물에 빠뜨렸고, 둘은 앙칼지게 싸우다 개만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고양이는 어부가 잡아 올린 물고기 중 죽은 것들 배를 뒤져 여의주를 찾아 주인에게 건넸고, 이때부터 개는 방 밖에 고양이는 이부자리를 차지했다. 개가 고양이와 눈만 마주쳐도 짖어대는 이유다.


그러나 길고양이는 삶과 죽음 경계에서 오늘도 외줄을 탄다. 장화 대신 불심을 갑옷처럼 두르면 무엇 하나. 굶주림에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차는 남전화상이라도 되는 양 무자비하게 고양이를 벤다. 연일 날이 차다.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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