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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야호선(野狐禪)-下

기자명 윤창화

꾀 많은 여우처럼 분별심 가지면 깨닫지 못해
임제는 귀신 타령 수행자 여우도깨비라 비난

이에 백장선사가 “불매인과(不昧因果)니라”라고 하자, 즉시 노인은 합장하면서 “저는 이미 깨달아서 여우의 몸을 벗었습니다. 뒷산에 가면 죽은 여우의 시체가 있을 것이오니, 망승(亡僧, 죽은 스님)을 천도하는 법식대로 화장하여 주옵소서.” 이에 백장화상이 유나(維那)를 시켜 노인의 부탁대로 화장을 해 주었다고 한다.


이 공안에서 핵심은 불낙인과(不落因果)와 불매인과(不昧因果)이다. 그 차이점은 ‘낙(落)’ 자와 ‘매(昧)’ 자에 있는데 무슨 차이일까?


불낙인과는 인과응보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대수행인(大修行人, 大悟한 수행자)은 인과응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도 자기가 지은 선악의 과보는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지은 죄가 있다면 누구든 그 과보를 받게 되는데, 다만 대수행인은 받아도 흔적 없이 받으므로 받지 않는 것이나 같다는 것이다. 주고받는데 실물이 오고가지 않을 뿐인 것이다.


즉 ‘대수행인도 인과에 떨어집니까?’라는 질문에 노인이 ‘인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不落因果)’고 대답했는데, 결론적으로 이 말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인과응보설을 부정한 것이 되므로, 그 과보로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매인과(不昧因果)는 인과응보를 분명하게 인식(不昧)하고 있다는 뜻인데, 인과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 한마디에 여우의 몸을 벗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견(正見)은 불매인과(不昧因果)이고, 사견(邪見)은 불낙인과(不落因果)이다. 노인으로 둔갑한 여우가 정견도 없이 함부로 불낙인과라고 했기 때문에 야호선으로 매도된 것이다.


사실 이 백장야호 공안은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다. 픽션으로서 백장선사가 인과응보설을 믿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는 수행자들에게 교육적인 차원에서 경종을 울려 주기 위하여 만든 의도적인 것이다.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기 싫거든 언행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호리호골(狐狸狐搰)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는 의심이 매우 많아서 자기가 물건(고기 등 먹을 것)을 묻고 나서 의심이 나서 또 자기가 파본다는 것인데, 의심이 많으면 일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는 말로 쓰인다.


의심이 많으면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그리고 선의 정신에 입각하여 말한다면 부질없이 불낙(不落)과 불매(不昧) 두 글자를 놓고 분별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꾀 많고 의심 많은 여우처럼 분별심을 가지면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제선사는 ‘귀신을 보았다느니’, 또는 ‘유령을 보았다’고 하는 수행자 무리를 지칭하여 야호정매(野狐精魅, 여우 도깨비)라고 비난한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평상심이 곧 선이오. 이것저것 조작하고 흉내 내지 마시오. 요즘 옳고 그른 것도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승려들이 있소. 그들은 귀신을 보았다느니, 유령을 보았다느니 헛소리하고 있소. 또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을 가리키면서 ‘맑은 날이다. 흐린 날이다’라고 떠들고 있소. 이와 같은 무리들은 진정(眞正)한 견해가 없는 자들로서 모두 시주의 빚을 지고 있소. 반드시 염라대왕 앞에서 뜨거운 쇳덩이를 삼키게 될 것이오. 양가집 자제들이 야호정매(野狐精魅, 엉터리 선승)에게 홀리면 인생을 버리게 되오. 눈먼 자들이여, 그동안 공짜로 먹은 밥값을 지불해야 할 날이 있게 될 것이오.(‘임제록’ 시중 10)”


임제선사의 법어와 같이 정법안을 갖추고자 하는 선승이 귀신이나 유령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는 이미 중병에 걸린 사람이다.


▲윤창화 대표
여우 도깨비에게 홀린 것이므로 선원에서는 고칠 수가 없다. 좌선한다고 앉아 있어봐야 소용이 없으므로 양복을 입혀서 미아리고개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 이런 수행자들은 참으로 불쌍하고 딱하기 그지없다. 잘못된 줄도 모르고 그것도 수행이라고 일평생 허송세월할 것이 아닌가? 진정 견해를 갖추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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