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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실의 자리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면 정직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
경청하다보면 ‘자비’ 싹터

 

수행 도반의 용기있는 고백
도반들의 진솔함 이끌어 내


 

▲안거수행 지도에 앞서 합장 반배 인사를 나누고 있는 리사 언스트 법사와 미국인 불자.

 


최근 나는 한 수행공동체로부터 “12단계 안거수행 과정에서 결제 명상을 지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묵언 명상에 몇 분간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갈망했고 수행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명상 중 방안을 둘러보았더니 거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고요함과 평온함에 잠겨있었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가졌던 그 조용한 명상의 시간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말해 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불교와 ‘12단계 회복 프로그램’(12Step program)에 대해 면밀하게 생각하게 했다. 비록 그들 사이의 호환성과 유사성 전부를 비교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는 좋은 책들은 이미 여러 권 나와 있다. 어떻게 해서 12단계 프로그램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영역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이를 명확히 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가에 대해 나는 주목했다. 12단계 미팅에서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용기 있는 정직’이다. 그것은 물론 우리가 지극한 명상 수행을 통해 증진될 수 있는 덕목이기도 하다.


12단계 미팅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여러 해 전이었고 대략 3년 정도는 규칙적으로 참가했다. ‘알코올 중독자 갱생회’(Alcoholics Anonymous)가 12단계 회복 프로그램을 가장 널리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많은 다른 형태의 12단계 미팅도 또한 중독 및 그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나의 경우 약물 중독 문제를 대처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일부 사람들은 나의 초콜릿 중독으로 인해 그런 내적 검증을 하게 되었다고 자연스레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블랙 초콜릿이 건강식품으로 분류되면서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주장과는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알코올 중독자 집안에서 성장한 것이 부분적인 원인이 되어 생긴 대인 관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12단계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삶에서 부딪쳤던 많은 도전들은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에 관한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족의 약물 중독 유무와 관계없이 우리들 대부분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번민하던 바로 그 집착과 혐오의 마음 작용이 그 근본에 자리하고 있다. 실제적인 측면에서 12단계 회복 프로그램은 내가 알코올 중독자 집안에서 성장함으로써 겪었던 후유증을 대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명상 수행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다년간의 수행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명상 수행만으로는 마음과 가슴의 문을 충분히 열게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록 명상 수행이 우리 내면에 숨겨진 많은 부분을 밝혀내는 강력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좌선의 형식이던 아니던 불교 명상은 나의 수행방법의 기초가 되었고 나의 삶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수행을 확대하고 깊게 하기 위해 심리치료와 지원그룹(support group. 공통된 고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서로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 역자 주), 12단계 프로그램 등 몇몇 부수적인 방법들을 활용했다. 삶의 진실을 마주하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수행 그리고, 좀 더 건설적이고 자비심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용기를 찾게 해주는 수행 방법도 나의 ‘다르마 수행’을 강화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내가 참가하기로 했던 12단계 프로그램의 첫 번째 미팅은 내 고향 ‘내슈빌’(미국 테네시주의 주도)에서 30분가량 떨어진 마을인 ‘프랭클린’에서 열렸다. 그 미팅의 시작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러시아워’의 교통 혼잡 중에 운전을 해야만 했다. 이것 하나로도 나에게는 좋은 인내 수행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통근에 장시간이 걸리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차량 불빛을 기다리기에 거의 끝이 없어 보이자 나는 집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주중의 저녁 시간을 왜 이렇게 포기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잡지를 뒤적이거나 푸드네트워크(Food Network 미국의 요리 전문 TV 채널. 역자 주) 프로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요리사를 쳐다보고 있겠지. 그래 그건 아마도 집에 남아 있어야 할 좋은 이유가 되지는 못할 수도 있어. 그 미팅은 불교 수행에 비해 매우 이질적이고 그래서 양립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다른 건 아닌가.”


나는 이렇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사념들에 빠져있다 보니 걱정이 통렬해지면서 “방향을 돌려 집으로 되돌아가야겠다”고 확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년간의 수행 덕분에 나는 근심의 목소리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이를 자각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프랭클린을 향해 멈추지 않고 계속 운전해 미팅에 참가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를 환영하는 다정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곧바로 집에서처럼 편안한 기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미팅 동안 나는 침묵하면서 단지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보여준 정직과 용기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실한 삶을 말했고, 고통과 파괴적인 행위로 유도했던 그들의 숨겨진 부분을 드러내는데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집중하고 있었다. 12단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고통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다른 참가자와 공유해야만 한다.


이런 직접적이고 진솔한 경험의 공유는 항상 다른 동참자들의 공감과 수용을 불러오게 한다. 어떤 형태로든 평가나 심판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래서 솔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충분히 형성된다. 12단계 참여자들은 또한 불교의 승가 조직과 매우 유사하게 공동체 의식과 자비심을 증장하게 된다. 비록 대부분의 시간은 참여자간의 경험 공유에 할애하지만 명상의 시간이 12단계 프로그램 미팅에 종종 포함되기도 한다.


몇 차례의 미팅을 갖는 동안 내 자신이 몸부림치던 고통의 순간에 도움이 되었던 개인적인 경험과 솔직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접근 방식은 나의 불교 수행과 상당히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 그 미팅은 매주 일어나는 규칙적인 일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나는 몇몇 새로운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미팅에서 자리를 잡고 앉게 되는 저녁 시간 대부분의 경우 깨달음의 순간이 나타났고 나의 마음은 명료해졌다. 가려져 있었던 가슴과 마음의 어떤 부분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통찰력으로 인해 나를 고통 속에 가둬놓았던 낡은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다르마 수행’과 매우 유사해 보이는 대목이다.


‘다르마’(Dharma)’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순간의 진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는  12단계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수행의 길이라는 범주 내에서 까다로운 감정과 낡은 방식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다. 그 미팅이 명상 수행을 대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미팅은 이 순간의 진실을 체험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해 주었다.


수년 동안 12단계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나서 알코올 중독자 집안에서 성장하면서 체험했던 고통과 아픔으로 인한 후유증에서 내 자신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 리사 언스트 법사
나는 타인들과 좀 더 편안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치던 고통과 절망의 묵은 이야기는 속삭임으로 잦아들었다. 곧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미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백영일 번역편집위원 yipaik@woori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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