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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소(聖所)에 세운 사원들

황룡 나투고 길상초 솟으니 천년 이어질 가람터라

가람이 들어 선 자리는
동·식물이 예견한 성소

 

신묘한 예시 강조해
사찰에 신성성 부여

 

 

▲낙산사 홍련암은 의상 스님의 꿈에 현신한 관음보살이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난 자리에 정사를 세우라”고 알려 주어 창건되었다. 

 

 

성스러운 공간은 세속적인 공간과는 구분된다. 가람은 성소(聖所)다. 가람에는 금당이 건립되고 금당에는 불상을 봉안한다. 그리고 금당 앞에는 탑을 세우고 탑 속에는 불사리를 봉안한다. 이 밖에도 가람에는 강당 등 여러 건물을 세운다. 이렇게 건립되는 가람은 주변의 세속적인 공간과는 달리 성스러운 장소가 되는 것이다. 원래는 세속적인 장소였지만 가람이 건립됨으로서 그 장소는 성스러운 곳으로 변하는 것이다. 성소는 언제나 그 어떤 것에 의해 지시되고 표시된다. 히에로파니(hierophany)를 드러내는 표지에 의해 그 지점이 지시된다는 것은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주장이다. 동물에 의해 그 지점이 지시되기도 하고, 특이한 식물이나 꽃에 의해 그 장소가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에 의해 성소가 지시된 예는 ‘삼국유사’에도 적지 않게 보인다.


진흥왕은 그 즉위 14년(553) 2월에 월성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도록 명했다. 그런데 그 곳에 황룡이 나타났다. 황룡이 나타났다는 것은 천인감응(天人感應)을 의미한다. 회남자(淮南子)에 의하면, 상서로운 별이 나타나고 황룡이 내려오며 상서로운 봉황이 이르는 것은 하늘과 사람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황룡이 나타나자 진흥왕은 계획을 바꾸어 절을 세우고 황룡사(皇龍寺)라고 했다. 이렇게 원래 궁궐을 짓고자 했던 계획을 바꾸어 세운 황룡사는 신라 왕실의 중심 사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황룡사는 가섭불이 강연하던 전불시대의 절터라는 설화와 아육왕이 보낸 황철로 조성한 장육존상(丈六尊像)을 봉안했다는 설화도 전해지면서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 발전했다.


자장(慈藏)은 선덕여왕 12년(643)에 오대산으로 가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흘 동안이나 날씨가 흐리고 어두워서 문수진신을 못 보고 돌아왔다. 자장은 다시 원녕사(元寧寺)로 가서 문수보살을 뵈었다. 보살은 말했다.
“칡덩굴이 있는 곳으로 가라.”


자장은 태백산 갈반지(葛蟠地)를 찾아 나섰다. 헤매며 찾던 그는 큰 구렁이가 나무 밑에 서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시자(侍者)에게 말했다.


“이곳이 갈반지다.”


이에 석남원(石南院)을 세웠는데, 곧 지금의 정암사(淨岩寺)이다. 칡덩굴이 얽혀있는 갈반지에는 큰 뱀이 서리고 있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성역에는 생명수가 서 있고, 그 나무에는 뱀 종류가 서리고 있으면서 그곳을 지킨다고 한다. 정암사를 세운 갈반지도 구렁이가 지키고 있던 성역이었던 셈이다.


의상(義相, 625~702)이 낙산에서 7일을 재계(齋戒)하고 또 다시 7일을 재계하여 관음의 진용(眞容)을 보았을 때, 관음보살은 말했다.


“좌상(座上)의 산꼭대기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다.”


의상이 그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니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왔다. 이에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조성해 모셨다. 그 대나무는 없어졌다. 그래서 관음진신(觀音眞身)이 거주하는 곳임을 알았다. 이처럼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난 곳에 낙산사를 세웠으니, 대나무는 히에로파니를 드러내는 사인(sign)이었던 셈이다.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태자가 오대산의 산속에 이르렀을 때, 문득 땅 위에 푸른 연꽃이 피어났다. 이곳에 보천이 암자를 짓고서 보천암(寶川庵)이라고 했다. 다시 동북쪽을 향하여 6백여 보를 갔을 때, 북쪽 대의 남쪽 기슭에 또한 푸른 연꽃이 핀 곳이 있었다. 이곳에 효명(孝明)도 또한 암자를 짓고 머물렀다. 두 태자는 저마다 부지런히 업을 닦았다. 이처럼 보천과 효명이 암자를 지은 곳은 모두 푸른 연꽃이 피어난 성소였던 것이다. 진흙 속에서 피어도 더럽혀지지 않고 언제나 깨끗한 꽃, 그것이 연꽃이다. 그리하여 연꽃은 불교의 꽃이 되었다. 연꽃이 피어난 곳에 지은 암자는 수행에 적합한 성소였던 것이고, 연꽃은 성소를 알려준 표지였던 것이다.


진표(眞表)는 경덕왕 19년(760)에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으로 가서 3년 동안이나 부지런히 수행했다. 부사의방은 전북 부안군 변산에 있었는데, 매우 험한 절벽에 지은 작은 방장이었다. 절벽 위에 있었기에 백 척이나 되는 나무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도록 되어 있었다. 진표는 하필이면 이처럼 험하고 외진 곳을 택하여 수행하려 했을까? 그에게는 세속적인 공간과는 다른 성스러운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스러운 공간은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할 경우가 많다. 3면은 모두 위험한 골짜기라 백 척이나 되는 나무사다리로만 오르내릴 수 있던 부사의방은 세속과는 단절된, 그러기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현신할 수 있는 참으로 좋은 성소(聖所)였을 것이다. 진표는 이곳 부사의방에서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부지런히 수행하여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을 친견할 수 있었다.

 

상상속 동물 등장은
하늘과의 소통 상징

 

사찰명에 인연설화 반영
신성·청정 장소임 부각


 

▲자장 스님의 꿈에 나타난 문수보살이 알려준 ‘칡덩굴’을 찾아 세워진 정암사.

 

 

훗날 진표는 속리산 골짜기에 이르러 길상초(吉祥草)가 난 곳을 보고 그곳에 표시를 해두었다. 그리고 그는 제자 영심(永深) 등에게 말했다.


“속리산으로 돌아가라. 그 산에 길상초가 난 곳이 있을 것이니, 그 곳에 정사(精舍)를 세우라.”


영심 등은 속리산으로 가서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길상사(吉祥寺)라고 했다. 길상초는 습지나 밭에서 자라는 감청색의 향기로운 풀로 공작꼬리 같은 모양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길상이라는 사람이 바친 풀로 만든 자리 위에서 결가부좌하여 정각을 이루었다. 그래서 이 풀을 길상초라 불렀다. 이처럼 길상초가 난 곳에 절을 세웠으니, 그곳은 세속적인 공간이 아닌 성스러운 공간이었던 것이다.


심지(心地)는 신라 제41대 헌덕왕(809~826)의 왕자로 15세에 출가했다. 속리산의 영심(永深)으로부터 진표의 불골간자(佛骨簡子)를 전해 받아 그것을 머리에 이고 중악(中岳) 즉 팔공산으로 돌아왔다. 산신이 두 선자(仙子)를 데리고 나와 그를 맞이하여 산꼭대기로 갔다. 산신은 심지를 인도하여 바위 위에 앉히더니, 그들은 돌아가 바위 아래에 엎드려 삼가 정계(正戒)를 받았다. 심지는 말했다.


“이제 적당한 땅을 가려서 간자(簡子)를 모시려 하는데, 우리들만으로 정할 일이 아니다. 삼군(三君)과 함께 높은데 올라가 간자를 던져 점을 쳐보자.”


신들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서쪽을 향해 간자를 던졌다, 간자는 바람에 날려서 날아갔다. 이 때 신이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


“막혔던 바위 멀리 물러가니 숫돌처럼 편편해 지고/ 낙엽이 날아 흩어지니 앞이 밝아지는구나./ 불골간자를 찾아내어서/ 정결한 곳을 맞아 치성을 하련다.”


노래를 마치자 간자를 숲속 샘 안에서 찾았다. 곧 그곳에 당을 짓고 간자를 모셨는데, 동화사 참당(懺堂)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 바로 그곳이라고 했다. 바람에 날려 보낸 간자가 떨어진 곳, 그곳은 정결한 성소였던 것이다.
신문왕 3년(683)에 있었던 일이다. 재상 충원(忠元)이 동래 온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면서 굴정역(屈井驛) 동지야(桐旨野)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매에게 쫓긴 꿩 한 마리가 굴정현 관청 북쪽의 우물 속으로 숨었다.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고 우물 속의 꿩은 두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는데, 물은 마치 핏빛 같았다. 매도 측은히 여기는지 그 꿩을 잡지 않았다. 재상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 땅을 점쳐보았더니, 절을 세울 만하다고 했다. 재상은 왕에게 아뢰어 현청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절을 세우고 영취사(靈鷲寺)라고 했다. 이처럼 꿩이 두 새끼를 매의 공격으로부터 지켰던 굴정현청의 우물, 그곳은 매도 꿩을 공격하지 못했던 성스러운 곳이었다.


김대성(金大城)은 토함산에서 곰 한 마리를 잡았다. 그날 밤 그 곰이 꿈에 귀신으로 나타나서 시비를 걸었다.


“네가 어째서 나를 죽였느냐? 내가 도리어 너를 잡아먹겠다.”
대성은 두려워하며 용서를 청했다. 귀신은 말했다.
“네가 나를 위해 절을 세워주겠느냐?”


대성은 곰을 위해 절을 지어주기로 맹세했다. 그 뒤로 그는 사냥을 하지 않았고, 곰을 잡았던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어떤 야생동물이 노획되었을 때 그것이 살해된 자리에 성소를 세우는 경우, 동물에 의하여 장소의 신성성이 계시된 것이다.”


엘리아데의 이 견해에 비추어 보면, 곰을 잡았던 자리에 세웠던 장수사나 꿩이 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우물이 있던 곳에 지었던 영취사는 곰이나 꿩에 의해 신성성이 계시된 것이었다. 고구려에서는 흰 사슴이 나타난 곳에 절을 세우고 백록원사(白鹿薗寺)라고 한 경우도 있다. 백록원사는 흰 사슴에 의해 신성성이 계시된 성소에 세워진 것이었다. 황룡이 나타난 곳에 세운 황룡사와 곰을 잡았던 장소에 세웠던 장수사와 꿩이 숨었던 곳에 세운 영취사와 뱀이 도사리고 있던 곳에 세운 석남원과 흰 사슴이 나타난 곳에 세운 백록원사 등은 동물에 의해 그 성소가 지시된 곳이다. 대나무가 솟아난 곳에 세운 낙산사와 청련화가 핀 곳에 세운 보천암과 길상초가 자라는 곳에 세운 길상사는 식물에 의해 드러난 성소였다.


동국대 사학과 교수 sanghyu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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