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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치선(癡禪)

기자명 윤창화

썩은 고목처럼 마음 개발하지 못하는 것
지식만 동원해 禪 해석하는 광선도 병통

어리석으면 심적·육체적 고생이 끊이질 않는다. 지혜롭지 못하면 노력해도 성사되는 것이 없다. 치(癡)·치선(癡禪)은 탐욕(貪)·증오(嗔)·어리석음(癡) 가운데 하나로서, 만사를 패착(敗着)으로 귀결시킨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인성(人性) 가운데 어리석음(무지)을 퇴출 대상 1호로 지목하셨다.


‘치선(癡禪)’이란 ‘어리석은 선’ ‘어리석은 선수행자’를 가리킨다. 아무런 교리적 바탕도 없이 무턱대고 그냥 앉아만 있을 뿐 지혜작용이 없는 선(禪), 썩은 고목처럼 앉아서 심지(心地, 마음)를 개발하지 못하는 선, 깨달음이 없는 선이 치선이다. 무엇이 올바른 수행이고 삿된 수행인지 모르는 무지몽매한 선객, 교학적 바탕이나 안목, 지견이 없는 선객을 치선자라고 한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정혜결사문’에서 당시 참선자들의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누어 논하고 있는데, 그것이 치선자(癡禪者)와 광선자(狂禪者)이다.


“만약 이와 같이 정과 혜를 함께 닦아나간다면(정혜쌍수) 만 가지 행이 깨끗하게 닦아질 것이다. 어찌 쓸데없이 묵(黙)을 지키는 치선과 그저 다만 글자나 찾는 광혜자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若能如是, 定慧雙運, 萬行齊修, 豈比夫空守默之癡禪, 但尋文之狂慧者也).”


무지한 채 앉아서 졸기만 하는 것은 치선자이고, 유식한 척 지식이나 자랑하는 것은 광혜자(狂慧者=狂禪者)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선과 광선에서 벗어나 올바른 수행을 하자면 정과 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보조지눌이 주장하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인데, 치선도 문제지만 지식을 동원하여 선을 해석하는 광선(狂禪)도 큰 병통이라는 것이다. 또 ‘선림보훈음의’에서는 “치선이란 그저 선을 탐미하기만 할 뿐, 지혜가 개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수주대토 등과 같은 유이다(癡禪, 耽味禪而未發慧曰癡禪. 如守株待兔等)”라고 말하고 있다.


수주대토(守株待兔)란 ‘한비자’에 나오는 우화적인 고사로서,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중국 송나라 때 어떤 농부가 우연히 나무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혀 죽은 것을 잡게 되었는데, 농부는 그 후에도 또 그와 같이 토끼를 잡을까 하여 일도 하지 않고 매일같이 그루터기만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밭은 풀이 무성하여 황폐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치(癡)와 합성된 단어 가운데 좋은 말은 별로 없다. 치골(癡骨)은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고, 치행(癡行)은 어리석고 못난 행동을 뜻하고, 치정(癡情)은 어리석은 사랑으로 무지의 극치이다.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을 음치(音癡)라고 하고, 지능지수가 모자라는 바보를 천치(天癡), 백치(白痴)라고 하고, 책에 미친 사람, 책벌레를 서치(書癡)라고 하는데 때론 독서가의 애칭으로 쓰기도 한다. 정상적이던 지능이 대뇌의 질환으로 저하된 상태를 치매(癡)라고 하는데, 치병(痴病) 중에서도 가장 몹쓸 병이다.


선어록에는 ‘치인면전 부득설몽(痴人面前 不得說夢)’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 앞에서는 가능한 꿈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꿈은 사실이 아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찰떡처럼 믿기 때문이다.


임제선사는 자신의 법어집인 ‘임제록’에서 어리석은 수행자를 가리켜 ‘할려변(瞎驢邊)’ ‘할루생(瞎屢生)’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할려(瞎驢)는 눈먼 나귀로 정법의 안목이 없는 바보 같은 선승, 어리석은 선승을 비유하고, 할루생은 눈먼 사람으로 역시 안목이 없는 선승을 가리킨다. 임제선사가 임종 직전에 말했다.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나귀(수행자)에게서 사라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을 마치자 단정히 앉아 입적하셨다(師云, 誰知吾正法眼藏, 向這瞎驢邊滅却, 言訖, 端然示寂. ‘임제록’21단).


▲윤창화
치선의 치료법은 반야지혜이다. 반야지혜를 갖추자면 경전과 어록, 그리고 교학과 문자를 알아야 한다. 다음에는 그것을 사유하여 자기화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어리석은 선승은 무조건 경전은 보지 말라고 하니 치선에서 벗어나기란 금생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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