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참선의 경지
39. 참선의 경지
  • 김형효 교수
  • 승인 2012.03.21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상이 모두 지워진 상태로 살아가는 것
철학적으론 존재론적 사유의 경지 도달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 스승을 찾고 도를 물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참선을 위함이라.” 영가대사는 불법을 찾고 대도를 깨칠 수 있는 방도가 있으면, 어떤 수고도 아끼지 말고 용맹정진하라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스님이나 재가불자에게 이 보다 더 급선무가 없음을 역설한다.


그런데 영가대사는 이처럼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참선을 위함과 같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보통 참선이라 하면 앉아서 고요히 좌선하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영가대사는 도와 진리를 찾기 위하여 전력을 다 하여 일념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다 참선이라고 말했다. 좌선(坐禪)만 선이 아니라, 동선(動禪)도 다 참선의 일종이라는 의미를 영가대사가 암시했다.


성철 큰스님은 그의 ‘심신명 증도가 강설’에서 설봉, 암두, 흠산 등과 같은 큰 스님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도를 구하기 위하여 큰 노력을 경주하였는가를 설명했고, 구정과 운봉 등의 큰 스님들이 도를 구하기 위하여 험로를 마다하지 않고 길을 떠났던 고사 등을 자세히 부연하고 있다.


성철 큰스님의 글을 읽어 요약하면, 저 모든 선사들의 공통적인 면모는 한결 같이 선사들이 자기들의 아상을 다 버리고 무심으로 진리를 찾기 위하여 헌신하였다는 것이다. 세속인들도 돈을 벌기 위하여 또는 학문을 하기 위하여 저 선사들처럼 심혈을 다 쏟아 붓는다. 그러나 이들과 저들의 큰 차이는 이들은 다 자기 아상을 굳건히 지니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비하여, 저들은 자기들의 아상을 온전히 버리고 삶을 지탱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저들은 참선의 길로 매진하였고, 이들은 참선의 길과는 달리 그냥 열렬하게 그들의 삶을 살아 나갔다는 것이다. 참선은 무아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영가대사의 가르침이다. 참선은 치열하게 일념에 집중하는 것이지만, 가장 핵심으로 참선은 아상이 다 지워진 상태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겠다.


“조계의 길을 증득하고 나서부터는 생사가 서로 상관하지 않음을 분명히 깨달았도다. 걸어 다녀도 참선이요, 앉아도 참선이니, 어묵동정(語動靜)에 본체가 편안함이라.” 영가대사가 조계의 육조 혜능조사를 뵙고 나서부터는 참선의 깨달음이 솟아나서 참선의 본체와 함께 고요해지면서 생사가 서로 마음을 흐트려 놓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영가대사가 고백하고 있다.


참선으로 일념에 집중하는 것과 돈과 지식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과의 차이는 전자는 후자처럼 마음의 바깥에 있는 대상의 세계를 소유하려는 소유욕이 아니고, 마음이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장 절실한 의심의 존재와 한 덩어리를 형성하는 일이겠다. 마음의 일념이 그 의심과 한 덩어리를 이루었을 때에, 그 의심에서 일말의 해답이 솟아난다. 이것이 참선의 효과이겠다.


참선은 의심하는 마음이 의심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대상처럼 풀려고 하는 의식이 없이, 의심하는 마음이 돌연히 자기 내부에서 그 마음을 산산이 파괴하면서 깨달은 마음으로 전변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의심하는 마음과 깨달은 마음이 어느덧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이것이 참선의 평온이겠다.


▲김형효 교수
참선의 경지가 깨달은 대원경지(大圓鏡智)에 이르렀음을 아는 경지는 실제로 영가대사의 말처럼 ‘창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독약을 마셔도 전혀 동요가 없는 한가롭고 한가로운 경지’를 체득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 마구니가 그리는 망상에 불과하리라. 참선으로 도달한 마음의 경지는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음이 존재론적 사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것이겠다. 존재론적 사고방식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고 여여한 공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