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 공작새

각종 재앙이나 질병 물리치는 보살

 

▲제등행렬 공작등.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한 시대를 풍미한 김수희의 ‘애모’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한 없이 작아지고 침묵하며 눈물 흘리는 심정을 노래했다. 여기 사랑 아닌 살 떨리는 침묵도 있다. 역시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왜일까. 천적이다. 그대 앞에선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맹독 품은 뱀도 공작새 앞에선 먹잇감일 뿐이다.


공작새가 인도에선 흔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인도 산치에 남아 있는 대탑이나 불교 미술품에 공작 문양들이 많다. 산치 제1탑 북문에도 공작새 부조가 있다. 인도 신화에서는 뱀 잡아먹는 새로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가루다의 깃털 하나가 공작새가 됐다고도 한다. 독사가 많은 아열대 기후인 인도 풍토에선 독사를 먹어치우는 공작새가 감사했을 터다.


‘공작왕주경’이나 ‘불모대공작명왕경’, ‘불설공작경’, ‘불설대공작주왕경’, ‘불설대공작명왕화상단장의궤’ 등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다수 경전 이름에 공작이 들어간다.


공작새는 공작명왕으로 불교에 등장하는데 독사 잡아먹는 공작새가 모토다. 불모대공작명왕보살이라고도 한다. 기원이 오랜 밀교인 잡밀(雜密)에서 말하는 불존(佛尊)이다. 명왕이지만 분노형은 아니다. 공작명왕 대다라니를 수지독송하면 독사 맹독이나 재앙, 질병을 쫓아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얘기가 전한다. 한 스님이 나무를 하다 뱀에게 엄지발가락을 물려 고통 받고 있을 때 부처님이 ‘불모공작명왕대다라니’ 설법을 했다고 한다. 다라니가 독은 물론 모든 병을 낫게 했단다. 한국불교 대표 밀교종단 진각종은 매년 부처님오신날 제등행렬에 불 뿜는 공작등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곤 한다.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꽁지깃 유래도 흥미롭다. 부처님이 설법을 시작하자 중생들이 앞 다퉈 주변으로 몰렸다. 공작새는 부처님 근처로 갈 엄두를 못 냈다. 기연을 놓칠까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안 부처님은 한 줄기의 불광(佛光)을 내보냈고, 불광은 공작새 꼬리에 떨어졌다. 그 때부터 공작새 꼬리는 지금처럼 아름다워졌다고 한다.


계속 새롭게 자라는 꽁지깃은 영생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꽁지깃에 총총히 박힌 반점이 하늘의 별과 같아 힌두교 최고신 브라마가 타고 다닌다. 불교에선 꽁지깃 반점이 항상 뜨고 있는 눈 같아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천개 눈을 상징하기도 한다.


국내엔 강원도 홍천에 공작산이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는 공작이 알을 낳는 형세다. 이곳에 수타사가 자리하고 있다. 수타사 본사 건봉사의 ‘건봉사 및 건봉사 말사서적’의 수타사 앞 뒤 풍광묘사로 공작산 이름을 추론하기도 한다. ‘한 마리 용이 설악산에서 날아오고, 여섯 마리 거북이 이 곳 신령스러운 구역을 머리에 이고서 떠받드는, 구슬항아리 속에 하늘이 열리는 곳’이란 글귀 뒤 ‘파랑새 다투어 재잘거리며 주작이 서로 날은 곳, 동서 앞뒤에 절이라곤 없는 터전’이라 했다. 파랑새를 공작새로 보는 게다.


공작명왕은 게임이나 만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일본 작가 오기노 마코토의 ‘공작왕’은 일본식 퇴마물이다. 홍콩영화 ‘공작왕’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공작왕 화신으로 태어난 밀교 퇴마사 공작이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령에 대항하는 활약상이 담겼다.


‘육도집경’엔 목숨이 위태로운 이유로 색을 탐하는 마음을 들며 세 가지 어리석음을 설하는 공작왕 얘기가 전한다.

 

인류의 큰 재앙이 탐심은 아닐까.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