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스님 [중]
탄허 스님 [중]
  • 심정섭 기자
  • 승인 2012.05.0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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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선해’ 오대산 수도원 외전 채택
▲스님은 주역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다.

“나는 학교 문턱에도 가지 않았다. ‘사서’ ‘삼경’ ‘주역’ 등 한문학을 했다. 수 백 독씩 했고 줄줄 외웠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책을 통째로 외워댈 수 있다. 한문 성경도 읽었는데 ‘성경’은 단편적으로 공부했다.”


1913년 전북 김제 만경에서 독립운동가 율제 김홍규 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탄허는 1918년부터 1928년까지 10여 년간 부친과 조부 그리고 향리의 선생으로부터 ‘사서’와 ‘삼경’을 비롯해 유학 전 과정을 배웠다. 그리고 1929년 17세에 충남 보령으로 옮겨 기호학파 면암 최익현의 제자 이극종으로부터 다시 ‘시경’을 비롯한 ‘삼경’과 ‘예기’ ‘춘추좌전’ 등 경서를 수학했다.


그렇게 경서를 배운 탄허는 1932년 20세 즈음에 이르러 ‘도덕경’과 ‘장자’ 등 도가의 경전을 읽으면서 ‘도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훗날 스승이 된 오대산 한암 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가르침을 받았고, 22세에 입산하기까지 20여 통의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불문에 귀의할 것을 다짐하게 됐다.


탄허는 출가 이후에도 유교와 도교 경전을 도외시하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노자’ ‘장자’ ‘주역’은 후학들에게도 불전과 함께 공부할 것을 권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1955년 조계종 강원도 종무원장 겸 월정사 조실에 추대되고, 다음해 월정사에 설치한 조계종 오대산 수도원 외전으로 이들 서책을 택하기도 했다. 당시 5년 과정의 수도원 입방 자격을 승속을 불문하고 강원의 대교과 졸업자, 사회의 대학 졸업자, 유가의 ‘사서’를 마친자로 한정한 탄허는 내전으로 ‘화엄경’ ‘기신론’ ‘영가집’ ‘능엄경’ 등을 선정하는 한편 외전으로 ‘노자’ ‘장자’ ‘주역선해’를 택했을 정도로 이들 서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탄허는 이때 외부강사를 초빙해 동서 철학 특강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수도원 교육은 불교와 사회 전반에 걸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그의 이상론을 담은 최초의 교육결사이기도 했다.


‘주역’을 바탕으로 한 과거 정립과 미래예측에도 스스럼이 없었던 탄허는 스스로 “나는 역사 진화과정을 불교, 유교, 선교의 동양 사상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반 역사학자들과는 달리 과거의 역사보다는 미래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은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며 남을 해칠 줄 모르고 살아온 것이 결국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동양 사상의 근본 원리인 인과법칙이자 인과응보이며 우주의 법칙”이라고 역설했다.


탄허는 또한 ‘주역’을 근거로 미래 세계가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했다. “주역을 지리학상으로 전개해 보면 우리나라는 간방에 해당되는데 지금 역의 진행 원리로 보면 이 간방의 위치에 간도수(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정신)가 비치고 있다. 이 간도수는 이미 1900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결국 시종을 함께 포함한 간방의 소남인 우리나라에 이미 간도수가 와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문제가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주역’에 ‘불이 물속에서 나오니 천하에 상극의 이치가 없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미래세계는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가 온다는 뜻”이라며 한반도가 새로운 문명의 중심이 되고,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을 예측했다.
그리고 기독교 ‘성경’에서 말하는 심판이나 예언자들의 멸망론은 해석의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멸망이 아니고 성숙이며, 심판이 아니라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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