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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비둘기

중생의 생명 무게 가르친 ‘구구보살’

 

▲무게. 이철수 목판화가 作.

 

 


전국 시내 곳곳에서 참새보다 흔하다. 늘어나는 개체수로 2009년 해로운 야생동물로 지정돼 포획할 수 있는 새로 전락했다. 그래도 ‘평화의 상징’이었다. 비둘기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그러나 불교 안에서 비둘기는 모든 중생들 생명 무게가 같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극명히 알려주는 존재다. ‘육도집경’이 전하는 비둘기 얘기는 불교 언저리나 생명, 생태운동을 하는 이들 모두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인도 시비왕이 보시행을 닦고 있었다. 비수천과 제석천은 그를 시험하고자 했다. 비수천은 비둘기로, 제석천은 매로 몸을 바꿨다. 굶주린 매는 있는 힘 다 짜내 비둘기를 쫓았고, 비둘기는 시비왕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비둘기를 쫓던 매는 주림에 못 이겨 왕에게 “비둘기를 내놓으라”고 말했다. 왕은 “살기 위해 품으로 온 것을 어찌 내놓을 수 있으냐”며 맞섰다. 고픈 배를 채워야 하는 매가 협상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내 먹이를 빼앗은 셈이니 대신할 수 있도록 왕의 살이라도 베어 달라”고 했다.


보시제일 시비왕 아니던가. 매의 제안을 허락한 왕은 살을 떼어 저울에 올렸다. 그럼에도 저울은 비둘기 쪽으로 기울었다. 계속해서 살을 떼어 올려도 소용없자 결국 왕은 자신을 모두 저울에 올렸고, 그제야 저울은 수평을 이뤘다. 비둘기와 매가 비수천과 제석천으로 다시 몸을 바꾸고 왕의 보시행을 칭송했다. 물론 뗐던 살점 모두 왕에게 돌려줬단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여러 가지 해석 여지가 있다. 허나 ‘모든 생명이 존귀하다’라고 읽힌다면 이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하늘 아래 존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다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불살생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 외침은 인권, 동물복지, 생태보호 등 불교계 사회 역할에 있어 탄탄한 바탕이 된다.


생명의 무게를 일러준 가르침 외에도 비둘기와 스님들 일화도 흥미롭다. 정찬주 작가는 저서 ‘산은 산 물은 물’에서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과 성전암 비둘기와 인연담을 소개했다. 성철 스님이 암자를 떠나기 3년 전 ‘구구보살’과 얽힌 얘기다. 스님은 아직 눈도 못 뜬 산비둘기 새끼 두 마리에게 물에 불린 쪼갠 콩을 먹이로 주며 키웠다. 비둘기는 자란 뒤에도 스님 방에서 같이 살았는데 1년 뒤 어미가 돼 알을 낳아 새끼도 길렀다고. 당시 성전암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스님이 암자 둘레에 철책을 둘러치고 안거 하던 시절이었다.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암자를 찾았다 발길을 돌린 이들에게 ‘구구보살’은 부러운 날짐승이었다. 스님이 암자를 떠날 때 일화는 마음 짠하다. 비둘기가 파계사까지 따라왔다 돌아갔다고 한다. 그 때 스님은 자꾸 뒤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구구보살, 니 집은 성전암 아이가. 어서 돌아가그래이. 바람이 찹다.”


평화를 상징하다 유해 야생동물로 신세가 전락한 비둘기. 불살생계를 수지한 불제자들의 지나친 육식. 신세가 처량하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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