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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약홍은선(藥汞銀禪)

기자명 윤창화

수은이 순은 아닌 것처럼 내용없는 짝퉁선
환영을 깨달음인양 착각하여 날뛰는 경우

문제가 있는 선(禪)을 찾다보니 정말 별난 선도 다 있었다. 약홍은선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그 명칭이 하도 특이해서 되래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먼저 ‘약홍은’이라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약홍은(藥汞銀)은 수은(水銀, mercury)을 가리킨다. ‘홍(汞, 수은 홍)’이라고도 하고 ‘약홍은’이라고도 한다. 수은은 넓은 의미에서는 은(銀)의 일종이긴 해만 순도가 낮은 은(銀)으로 순은(純銀)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천자들은 장생불사를 위하여 수은을 먹기도 했는데, 진시황은 수은 중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수은은 주로 진사(辰砂)를 불에 녹여 만드는데, 온도계 등 열(熱) 전달 용도로 많이 쓴다.


약홍은선(藥汞銀禪)은 ‘짝퉁선(禪)’ ‘가짜선(禪)’ ‘사이비선(禪)’을 가리킨다. 수은이 은의 일종이긴 해도 순은(純銀)은 아닌 것처럼, 약홍은선 역시 진정한 선이 아닌 짝퉁선, 사이비선을 가리킨다. 겉모양새, 행태는 선(禪)인 것 같은데 내용물은 없는 엉터리 선으로, 다른 말로는 상사선(相似禪, 사이비선)이라고도 한다.


요즘 유명 메이커의 짝퉁 상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초심자로서는 이런 짝퉁선, 가짜선, 사이비선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체로 가짜나 짝퉁일수록 말이 거창하고 요란해서 빨려 들어가기 쉬운데, 문제는 불확실한 지식,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수행법, 얼치기, 엉터리 깨달음을 가지고 다 알았다고 하면서 도인 행세, 큰스님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언론이나 인터넷 등에 그럴싸한 글이나 수행담, 체험담을 올려서 마치 자신이 도인(道人)인양 포장한다. 이미 열반하신 어느 선승으로부터 사사했다느니, 특별한 가르침을 전수 받았다느니, 몇 년 동안 장좌불와, 용맹정진 등을 했다고 하면서 장막을 친다. 심지어는 전생을 안다느니, 미래를 훤히 내다본다느니 하는 등 그럴싸한 말로 초심자를 홀린다.


또 이들은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면서 상대를 카리스마로 제압하여 믿도록 하는데, 그런 다음에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서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금전을 요구한다. 당연히 많이 내면 빨리 깨닫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이런 엉터리, 짝퉁 수행법, 약홍은선 등이 적지 않다.


운서주굉(1535∼1615) 선사가 편찬한 ‘선관책진’에는 초석범기(1296∼1370) 선사의 법문이 실려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약홍은선(짝퉁선, 엉터리선)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약홍은선자들은) 입만 열면 자신이 곧 진짜 선승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것이 선입니까’하고 물으면 어름어름 하다가 마침내는 벙어리가 되고 만다. 이 어찌 부끄럽고 딱한 노릇이 아니겠소. 버젓이 부처님 밥을 처먹고 있으면서 본분사(本分事, 선의 핵심)는 모르고 너도나도 세속적인 지식이나 글을 가지고 큰 소리 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소. 또 어떤 자는 부모 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과 같은 뜻임) 소식은 규명하려고 하지 않고 방아나 찧으면서 복이나 짓기를 바라며, 업장을 참회한다 하니, 참으로 도(道)와는 너무도 멀구나. (…) 이와 같은 선(禪)을 약홍은선이라고 칭하나니 이 은(銀)은 진은(眞銀)이 아니다. 불에 한번만 들어가도 곧바로 녹아 흘러내리고 만다(恁麽參的 是藥汞銀禪, 此銀非眞, 一鍛便流. ‘선관책진’ 초석범기 법문)


▲윤창화
엉터리 선사들은 선의 핵심, 선의 진수(眞髓)가 뭐냐고 물으면 이런 말 저런 말로 얼버무린다.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진정견해가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다른 경계 즉 환영(幻影)이나 환시(幻視) 혹은 마음이 조금 평온해 진 것을 가지고 곧 깨달음으로 착각하여 날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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