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천창(天唱)
9. 천창(天唱)
  • 법보신문
  • 승인 2012.05.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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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징계하고 지극정성에는 감응하는 하늘 외침

계집종 욱면 염불하다가
하늘소리 듣고 서방정토

 

추위 속 산모 구한 스님
하늘서 왕사 책봉 명령

 

 

▲ 자장 스님은 이곳 평창 월정사에서 “자기 홀로 착하기보다 바다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두루 구제함이 낫다”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고 ‘오대산월정사사적’에 기록돼 있다.  월정사 제공

 

 

신라 사람들은 가끔 천창(天唱)을 들었다고 한다. 천창은 하늘의 외침이고 하늘이 일깨워 주는 소리다. 또한 가끔 천악(天樂)이 들렸다고 한다. 천악은 하늘의 음악이다. 하늘의 소리와 하늘의 음악, 그것은 하늘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눈치 채지 않고는 하늘의 소리를 듣기 어려운 법, 그리고 진정으로 귀가 밝게 열려 있지 않고서야 어찌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가.


경덕왕(742~765) 때의 일이다. 미타사(彌陀寺)에는 만일회(萬日會)가 열리고 있었다. 서방정토로의 왕생을 발원하며 만일(萬日)을 기약하고 염불을 하는 모임이었다. 귀진(貴珍)의 집안에 욱면(郁面)이라는 계집종이 있었는데, 그는 주인을 따라 절로 가면 마당에 서서 승려를 따라 염불했다. 주인은 그의 직분에 어긋남을 미워하여 하루 저녁에 곡식 두 섬을 다 찧게 했지만, 그는 초저녁에 다 찧어놓고 절로 가서 염불하기를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욱면은 마당의 좌우에 긴 말뚝을 세워놓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 위에 매고는 합장하며 좌우로 이를 흔들어 스스로 격려했다. 그때 공중에는 하늘의 외침이 있었다.


“욱면 낭자는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


이 외침을 들은 절의 대중이 그를 권해서 법당에 들어가 예에 따라 정진하게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서쪽으로부터 천악(天樂)이 들려오더니, 그 종은 몸을 솟구쳐 법당의 대들보를 뚫고나가 서쪽 교외로 가더니, 유해를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하여 연화대(蓮花臺)에 앉은 채 큰 광명(光明)을 내쏘면서 천천히 가버렸는데, 음악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욱면은 종이었다. 그러나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그의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하여 그를 법당에서 염불할 수 있도록 소리쳐 인도했던 것이고, 그 결과 그는 법당의 천정을 뚫고 서방정토로 왕생할 수 있었다는 설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듯이, 욱면의 지극한 정성은 신분의 벽도 뚫었고, 현실 삶의 아픔도 초월할 수 있었다.


9세기 초 신라 애장왕(800~809) 때의 어느 눈 내린 겨울 날 초저녁, 왕경의 천엄사(天嚴寺) 문 밖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한 여자 거지가 아이를 낳고는 추위로 인해 거의 죽게 되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정수(正秀) 스님은 온 몸이 추위로 얼어버린 그 여인을 품에 안았다. 산모가 한참 후에 소생했다. 스님은 자신의 옷을 벗어 그 거지에게 덮어주고는 벌거벗은 채로 자신이 사는 황룡사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거적을 덮고 추위에 떨면서 밤을 새우고 있었다. 여인을 품에 안은 거리의 승려 모습도, 벌거벗은 채로 뛰어가는 승려의 모습도, 거적을 덮고 떨고 있는 승려의 모습도 모두 상식과는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추위에 언 산모와 어린 생명을 구하려던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그의 진심에는 하늘도 감동했다. 한밤중이 되자 궁중의 뜰을 향해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황룡사의 사문(沙門) 정수를 왕사(王師)에 봉하도록 하라.”


이렇게 하늘은 정수 스님을 왕사에 봉하는 것이 좋다고 창도(唱導)했던 것이다. 하늘의 외침을 들은 애장왕은 급히 사람을 황룡사로 보내어 정수 스님을 대궐로 모셔오도록 했다. 왕은 위의(威儀)를 갖추고 그를 맞아들여 왕사보다도 더 높은 국사(國師)에 봉했다.


대성(大城)이 죽던 날 밤이다.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을 향해 하늘의 외침이 있었다. “모량리의 대성(大城)이라는 아이가 지금 그대의 집에 의탁할 것이다.”


몹시 놀란 재상집에서 모량리로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았는데, 외침이 있던 바로 그날 과연 대성이 죽었다고 했다.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을 때 왼손을 쥔 채 펴지 않다가 7일 만에 폈다. 손에는 대성 두 글자를 새긴 금간자(金簡子)가 있었다. 전생의 대성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보시 공덕을 닦았다. 그 공덕으로 금생에는 재상의 집 아들로 환생하게 되었을 때 하늘이 외쳐 그 환생 사실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다.


원성왕(785~798) 때에 있었던 또 하나의 설화를 보자. 김현(金現)이 탑돌이에서 한 처녀를 만나 정을 통하고 그 처녀의 집으로 따라갔다. 처녀는 김현을 구석진 곳에 숨겼다. 조금 뒤에 세 마리의 호랑이가 나와서 말했다.
“집안에 비린내가 나는구나. 요깃거리가 생겼으니 어찌 다행이 아닐까?”
그 때 하늘에서 외쳤다.


“너희들이 사람의 생명을 즐겨 해침이 너무 많다. 마땅히 한 놈을 죽여서 악을 징계하겠다.”


이처럼 하늘은 악을 징계하기 위해서 소리칠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이에 처녀는 하늘의 징계를 대신하면서 오히려 김현에게 공을 이루도록 해 주었고, 김현은 서천(西川) 냇가에 호원사(虎願寺)를 짓고 ‘범망경(梵網經)’을 강하여 범의 저승길을 인도했다는 이야기가 곧 김현감호(金現感虎)설화다.

 

사람 죽이는 호랑이에겐
직접 처벌하겠다고 엄포

 

하늘이 일깨우는 소리는
열린사람만 들을 수 있어

 

신문왕(681~692)이 등창이 나서 혜통에게 치료해주기를 청했는데, 혜통이 와서 주문을 외우니 즉시 나았다. 혜통이 말했다.


“폐하께서 전생에 재상이었을 때, 양민 신충(信忠)을 잘못 판결하여 종으로 삼았으므로 신충은 윤회 환생할 대마다 보복하게 됩니다. 지금의 등창도 신충의 탈입니다. 신충을 위해 절을 세워 명복을 빌어 원한을 풀게 해야 될 것입니다.”


왕은 이를 따랐다. 신문왕이 신충봉성사(信忠奉聖寺)를 지어 절이 낙성되자 공중에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왕께서 절을 세워 주었으므로 괴로움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났으니, 원망은 이미 풀렸습니다.”


이는 신충의 외침이었다. 그러기에 공중에서 외치는 소리 즉 공중창(空中唱)이라고 했을 뿐 천창(天唱)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당나라 황제는 “33천의 한 사람이 신라에 태어나서 김유신이 됐다”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고 전한다. 그림은 김유신 영정.

 


무열왕이 돌아가자 신라에서는 그의 묘호(廟號)를 태종이라고 했다. 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삼한을 통일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훗날 당나라에서는 신라의 태종이라는 묘호가 당 태종과 중복된다고 문제 삼기도 했다. 신문왕대(681~692)에 당나라 고종(650~683)이 무열왕 묘호의 개칭을 요구해 왔던 것이 그것이다. 이에 신라왕은 글을 올려 답했다.


“신라는 비록 작은 나라지만, 거룩한 신하 김유신을 얻어서 삼국을 통일했으므로 태종이라고 한 것입니다.”


당나라 황제는 그 글을 보고 생각했다. 그가 태자로 있을 때에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곧 “33천의 한 사람이 신라에 태어나서 김유신이 되었다”는 외침이었다. 황제는 태자 적의 이 기록을 꺼내어 보고 놀라면서 다시 사신을 보내어 태종의 칭호를 고치지 말도록 했다고 한다. 신문왕 즉위 전후 시기의 신라 사회에는 33천의 한 아들이 김유신으로 환생했다는 설이 있었음은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당 태종도 김유신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당나라의 태자가 김유신의 환생에 대한 하늘의 외침을 듣고 기록해 두었다는 설화에는 아무래도 비약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사회에서는 김유신을 33천의 한 사람이 신라에 태어나 삼국을 통일한 사람으로, 그것도 하늘이 이를 인정한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장(慈藏)은 7세기 전반의 고승. 그는 젊은 날 깊은 산에 혼자 숨어서 치열하게 수행했다. 양식이 떨어지면 이상한 새가 물어다 주는 과일을 먹으면서 정진할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는데, 두 장부가 나타나서 말했다.


“당신은 깊이 숨어 있으면서 어떤 이익을 바랍니까?”
자장은 대답했다.


“오직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이에 그들은 자장에게 오계(五戒)를 주면서 말했다.
“이 오계로서 중생을 이롭게 함이 옳을 것입니다.”


이에 자장이 산을 나오자 한 달 사이에 나라의 사녀(士女)들이 모두 오계를 받았다. 이상은 ‘송고승전’ 중의 자장전에 있는 기록이다. 그런데 민지(閔漬)가 쓴 ‘오대산월정사사적’에 의하면, 어느 날 자장은 공중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자기 홀로 착하기보다 바다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두루 구제함이 낫다.”


자신의 수행에 몰두하고 있던 자장을 일깨워준 공중의 소리, 그것은 중생구제라는 이타행(利他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자장의 귀는 열려 있었다. 그러기에 공중의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천성(天聲)이라고 한다. 천둥소리, 바람소리 등이 곧 그것이다. 천신이 치는 북인 천고(天鼓)도 있어서 천고를 울리면 천둥소리가 난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기를 원했고, 하늘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고 있다고 믿었다. 신라의 두 젊은이는 자신들의 희망과 맹서를 단단한 돌에 새기면서 만약 이 맹서를 저버리면 하늘의 큰 벌을 받겠다고 맹서했던 일도 있다. 곧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의 한 구절이다.
공중에서 나는 하

늘의 소리는 지금도 울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 소릴 듣는 사람은 적다. 자장을 일깨웠던 하늘의 외침은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쟁쟁하다.


“자기 홀로 착하기보다 많은 사람을 두루 구제함이 낫다.”
 
김상현 교수 sanghyu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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