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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일두피선(一肚皮禪)

기자명 법보신문

제구실 못하는 어리석은 선승 얕잡는 말
깨달았다 착각해 아만심만 가득한 납자

‘일두피선(一肚皮禪)’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먼저 이 네 자의 뜻(字意)을 정리한 다음 설명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일(一)은 본래는 수사(數詞)인데, 여기서는 부사로 ‘한낱’, ‘그저’를 뜻한다. 두(肚)나 두피(肚皮)는 위(胃), 배(腹), 뱃가죽으로, ‘밥통’ 또는 ‘한낱 밥이나 축내는 사람’이라는 뜻하고, 같은 말로 두리(肚裏, 뱃속), 두피리(肚皮裏, 뱃가죽 속)가 있는데, 심중(心中), 즉 마음속을 뜻한다. ‘벽암록’ 51칙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이 납자(스님)는 암두가 짚신을 신은 채 그들의 뱃속을 마음대로 헤집고 다녔는데도 조금도 모르고 있구만.” 타인이 짚신을 신고서 자기의 뱃속을 휘젓고 다녔는데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매우 딱한 사람이다. 알아차리자면 제3의 눈 즉 통찰력과 지혜의 눈(慧眼)이 있어야 한다.


결국 ‘일두피선’이란 우리말로 표현하면 ‘밥통선’이라는 뜻이다. 즉 밥만 축내고 성과는 없는 것, 제구실을 못하는 어리석은 선승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아둔한 이나 안목이나 지견 또는 정안이 없는 이를 가리킨다. 또 알기는 많이 알고 있어도 자유 자재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두피선과 비슷한 말로는 죽반승(粥飯僧), 반대자(飯袋子)가 있다. 죽과 밥을 축내는 선승(당송시대 선종사원에서는 아침에는 죽, 점심은 밥을 먹었다)이라는 뜻인데, 이를 밥자루, 밥통이라고 빗대기도 했다.


원오 극근의 ‘심요(心要)’ 한 단락을 보도록 하겠다. “황룡(黃龍) 혜남선사가 지난날 자명석상(慈明石霜)선사를 뵙기 전에는 한낱 밥통선((一肚皮禪)만 알고 있었다(正眼이 없었다는 뜻). 취엄(翠巖)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그로 하여금 자명선사를 찾아가도록 했다. 그는 거기서 오로지 현사가 ‘영운선사가 아직 투철하게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 곳을 끝까지 참구했는데,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기왓장 부서지듯 얼음 녹듯 화두가 풀려 마침내 인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30년 동안 이 도장으로 뭇 납자들의 알음알이(지식의 잔꾀)를 제거해 주었다. 병을 낫게 하는 데는 많은 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핵심을 찌르는 긴요한 곳에는 한 방이면 된다. 어찌 많은 가르침(불법)이 필요하겠는가?”


훌륭한 한의사는 여기저기 침을 놓는 것이 아니다. 혈맥의 중요한 곳에 한두 방을 놓을 뿐이다. 유명한 정비사는 엔진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 난 것인지 100% 안다. 깨닫게 하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정신을 차리게 하는 한마디면 된다. 방장이나 조실의 역할은 바로 그 한마디이다.


일두피선이라는 말 속에는 앞에서 말한 뜻 외에도 ‘뱃속에 가득 처넣다’, ‘잔뜩 처넣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것저것 잔뜩 들어서 아만심, 자만심이 부처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것, 스스로 깨달았다고 인정 한 결과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된 것이다.


‘벽암록’ 20(龍牙西來意 공안) 본칙 평창에 나오는 선화(禪話)를 보도록 하겠다.


“용아(龍牙)는 타고난 기질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항상 일두피선(一肚皮禪), 뱃속에 자기가 최고라는 자만심이 가득한 것)을 메고 행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곧바로 장안에 있는 취미선사를 찾아갔다.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취미가 말했다. ‘나에게 선판(禪板, 방선 시간에 등을 기대고 쉬는 판)을 건네주게.’ 용아가 선판을 건네주자 취미는 그 선판을 받자마자 용아를 후려쳤다.”


▲윤창화
취미선사가 선판으로 용아를 친 것은 용아의 육체를 친 것이 아니고, 용아의 자만심을 친 것이다. 요즘도 한낱 밥통이나 짊어지고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결제가 되면 선원을 찾고, 해제가 되면 어디론지 사라진다. 아무런 생각도, 문제의식도 없이 이곳저곳 선원을 순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가지고는 백날을 다녀도 지견, 정안이 열리기는커녕 자만심만 쌓여가게 된다. 커리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다운 시키는 한방이 중요하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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