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see a world in a grain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중략)
Man was made for joy and woe;
And when this we rightly know,
Thro’ the world we safely go.
Joy and woe are woven fine,
A clothing for the soul divine;
Under every grief and pine
Runs a joy with silken twine.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온 세상을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중략)
인간은 기쁨과 비탄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기쁨과 비탄은 훌륭하게 직조되어
신성한 영혼에는 안성맞춤의 옷,
모든 슬픔과 기쁨 밑으로는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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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입니다. 순수(純粹)의 전조(前兆)(Auguries of innocence)는 화엄의 냄새가 물씬 나는 블레이크의 시입니다. 의상대사의 법성게의 중 ‘한 티끌 가운데 온 우주를 머금었다(一微塵中含十方)’라는 게송을 연상하게 합니다.
한 송이의 작은 꽃일지라도 그것이 흙과 물, 바람과 햇빛, 그리고 생명을 잉태한 봄과 성숙의 여름, 결실의 가을이 서로 연기되어 있다면 그것은 공간적으로 무한이 넓고 시간적으로는 영원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의 의미는 바로 이런 연기의 구조를 체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붓다가 설하는 법(Dharma)은 곧 연기의 세계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공간으로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이 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 찬란한 꽃으로 수놓은 화엄만다라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새로운 현대물리학의 빅뱅 이론은 이 우주가 한 점 티끌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시공간이라는 자연과학의 개념은 찰나가 무량겁을 담고 하나의 티끌이 일체 세계를 담는 것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미 “찰나의 티끌에 무량겁의 일체 세계가 담긴다”는 이치를 드러냈습니다.
화엄에서 흔히 핵심 사상으로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하나다’라는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을 꼽습니다. 모래 한 알을 통해 전체 우주를 볼 수 있다면 안과 밖이 둘이 아닌 우주를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