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여래가 되는 쉬운 길 가기
46. 여래가 되는 쉬운 길 가기
  • 김형효 교수
  • 승인 2012.07.10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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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의식 갖고 매진해서 가는 것 아니라
존재론적 생각으로 전환하면 절로 도달

“(허공에 화살을 쏘는 것과 그런 유위(有爲)의 노력은)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實相門)에 일초직입(一初直入)하여 여래지(如來地)에 단박에 뛰어 들어감과 같으리오.”


여기서 영가대사는 교종의 가르침과 달리 참선에 의한 선종은 지름길로 여래의 땅에 빨리 들어간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무엇 때문에 쉬운 길인 이행(易行)을 버리고 어려운 길인 난행(難行)을 택할 것인가를 되묻는다.


난행은 여래의 땅이 바깥에 있는 줄 알고 하염없이 그곳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는 것을 말함이다. 여래의 땅은 내안에 여기 있는 것을 모르고 자꾸 바깥을 두리번거리면서 헤매는 것을 영가대사는 꾸짖는다. 이것을 영가대사는 도가의 용어를 빌려서 ‘무위법을 버리고 유위법을 쓴다’고 꾸짖는다. 보통 이 용어를 그냥 함이 없는 무위법이니, 함이 있는 유위법이라 번역한다. 그런 번역은 애매해서 우리의 생각에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무위법은 자동사적으로 내 마음이 저절로 숨 쉬듯이 움직이는 그런 마음의 자기 움직임을 말하고, 유위법은 내 마음이 바깥의 어떤 목적어를 쟁취하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좀 더 어려운 말을 쓰면, 유위법은 내 마음이 타동사적으로 목적어를 사용하는 자세를 말하고, 무위법은 내 마음이 저절로 자동사적으로 활동하는 그런 모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가대사가 가르치는 무위법은 어떤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서 그길로 매진해서 여래의 땅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사고방식을 소유론적 생각에서 존재론적 생각으로 순식간에 전환하면 저절로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철학적 사고방식을 좀 원용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불교계는 철학을 잘못 알아서 철학이 알음알이라고 여기는 폐단이 있다. 철학은 도를 터득하는 학문이지 결코 알음알이를 아는 과정이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파하신 도는 이 세상의 모든 도가 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 이중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실이 이중적으로 짜여 있다는 것은 서로 착각을 유발할 정도로 비슷한 일들이 한 쌍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정신이 혼미하면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는 점이다. 예컨대 불교는 이 세상을 마음이라 부른다.
무엇이 마음일까? 마음은 곧 욕망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을 욕망의 세계 즉 욕계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욕망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이웃하고 있다. 무위적 욕망과 유위적 욕망이다. 자연의 동식물적 욕망은 다 무위적 욕망이다. 즉 존재론적 욕망이다. 동식물들은 다 존재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욕망을 발현시킨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은 사회생활에서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욕망한다. 이 욕망이 곧 소유를 위한 생존방식이다. 소유를 위한 욕망이 탐욕을 부른다. 불교계가 꺼려하는 욕망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또 다른 욕망이 있다. 이것을 불교계는 원력(願力)이라 불러왔다. 원력은 존재론적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이처럼 욕망은 소유론적 욕망과 존재론적 욕망의 이중성이 얽히고설켜있다. 지옥과 극락도 역시 이중성으로 짜여 있다. 소유론적 집단생활이 지옥이고, 존재론적 공동체 생활이 극락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불도(佛道)는 이 세상의 사실이고 그것이 바로 이중성의 도를 말한다.


▲김형효 교수
불교는 가장 수승(殊勝)한 철학이다. 종교로서의 불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수승한 철학을 대중화한 것이다. 대승불교는 대중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이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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