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봉 스님 [하]
효봉 스님 [하]
  • 심정섭 기자
  • 승인 2012.07.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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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 어록으로 스승 삼으라”

 

▲스님은 후학들에게 경학하는 자세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야총림 방장으로 후학을 제접하며 선 수행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던 효봉은 동화사에서도 ‘정혜쌍수’를 강조했다. 1958년 동화사 금당선원 상당법어에서는 “내 문하에서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한다. 정이란 모든 망상이 떨어진 것을 말한다. 정이 없이 얻는 혜는 건혜(마른 지혜)다. 옛날 달마 스님이 이조 혜가에게 처음으로 가르치기를 ‘밖으로 모든 반연을 끊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다’ 하였으니 이것이 입도요문(入道要門)”이라며 정과 혜를 함께 닦도록 주문했다.


그런 효봉도 불교정화 시절에 “큰 집이 무너지려 하니 여럿의 힘으로 붙들라”며 그토록 꺼리던 시정에 나왔다. 종단 일을 수습하기 위해 종회의장과 총무원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네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세간에 나와 있을 때도 선사로서의 풍모는 여전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 생일 초대로 경무대를 찾은 날, 이승만이 효봉의 생일을 묻자 “생불생(生不生) 사불사(死不死),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데 생일이 어디 있겠소”라고 답한 일화는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효봉은 후학들에게 경학과 옛 선지식들의 어록을 보도록 독려했다. 1949년 10월 동안거 결제법어 때는 경학을 공부하는 학인들에게 특별히 경학을 공부하는 자세를 일러주기도 했다. “무릇 경론을 공부하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을 세간법에 비하면 의학자는 모든 사람의 병을 고치는데 그 목적이 있고, 사업가는 갖가지 사업을 경영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법학자는 행정이나 사법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불조의 어록을 공부하여 불조가 되는 문에 들어가 실천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니, 그같이 하면 학인과 교수가 다 이롭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과 타인을 다 속이는 일이다.”


또 ‘대승기신론’을 공부하는 기신론산림 회향 때는 “문자가 있는 ‘대승기신론’의 논주는 마명 대사이지만 문자 없는 ‘대승기신론’의 논주는 누구인가. 다시 묻노니 이 ‘대승기신론’이 말세 중생의 신근을 키웠는가. 혹은 말세 중생의 신근을 끊었는가”라고 묻고 “만일 그것이 말세 중생의 신근을 끊었다면 마명 대사는 나를 위해 밝은 스승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말세 중생의 신근을 키웠다면 마명 대사는 내 원수가 될 것”이라며 문자에 매달리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경학을 공부하되 그에 매달리지 말라는 간곡한 선지식의 가르침인 것이다.


효봉은 그런가 하면 옛 선지식들의 어록을 스승으로 삼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 어느 때인가 법상에서 “몇 십 년을 두고도 바른 눈을 아직 밝히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그릇된 소견에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수행자들을 경책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럴 때는 선지식을 찾아 다시 공안을 결택하라. 가까이 그런 선지식이 없을 때는 옛 사람의 어록으로 스승을 삼아야 한다”며 어록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렇게 자상한 가르침으로 후학들의 공부를 돕던 효봉은 1966년 10월 입적에 이르러 마지막 말씀을 청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그런 군더더기 소리 안할란다. 지금껏 한 말들도 다 그런 소린데”라며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는 “내가 말한 모든 법(五說一切法) 그거 다 군더더기(都是早騈拇) 오늘 일을 묻는가(若間今日事) 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月印於千江)”라는 게송을 읊고 세납 79세 법랍 42세로 입적에 들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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