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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감춘 채 삶을 마감한 보살님

기자명 법보신문

정토마을 공동체는 전국 곳곳의 스님과 법우님들의 후원으로 불치병환자를 위한 의료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임상 전문가 양성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정토마을과 인연을 맺고 후원하는 분들은 대부분 소중한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다. 가족과 친척,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이런 마음이 정토마을을 돕는 정성으로 이어지고, 또 그러한 정성이 모여 불교계 최초 완화의료전문 자제병원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많은 후원자들이 있지만 특히 주변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정토마을에 들어와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봉사를 통해 삶을 회향하겠다는 열정의 발로일 것이다. 사찰에서 소임을 맡고도 정토마을과 인연을 맺어 4년 동안 틈틈이 봉사활동을 펼쳤던 보살님이 기억난다. 보살님은 2년 전 어느 날 암 말기 선고를 받은 직후 정토마을로 전화를 걸었다.


“스님, 병원은 언제쯤 완공되나요? 제가 빨리 정토마을에 들어가서 그곳 일들을 돕고 싶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스님.”


느낌이 이상했다. 주변 도반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보살님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보살님이었다. 수화기 너머 지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보살님은 깊은 산속에서 침을 맞으며 아픈 몸을 다스리고 있다고 했다. 몸이 나으면 찾아뵙겠다고 했다. 보살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아팠다. 그분은 늘 온화한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곤 했다. 하지만 보살님은 도반들에게 자신의 질병과 상태를 숨기고 얼굴조차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보살님. 산속에서 침을 맞을게 아니라 병원을 가보세요. 병원에서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적합한 치료를 받으세요.”


그러나 보살님은 완쾌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뵐 테니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병을 왜 그렇게 감추는 것인지 궁금했다.


“너무 부끄러워서요. 수십 년을 절에 다니며 온갖 불사에 마음을 보태고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는데 이런 몹쓸 병이 저에게 들었다는 것이 말이에요. 때로는 제 자신은 물론 남들까지 미워져요.”


출렁이는 분노의 파도가 전해졌다.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2년의 투병생활 동안 네 번의 전화통화가 전부였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그분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느 날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렸다. 보살님 가족들의 전화였다. 서울의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지만 암이 전신으로 전이돼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계속 나를 찾는다고 했다. 보살님은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만 믿다가 그나마 건강할 때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게 못내 안타까웠다. 보살님은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임종했다.


그 날 새벽, 기도 중에 보살님 모습이 홀연히 스치고 지나갔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방금 숨을 거뒀다고 했다. 2년 전, 병원 완공시기를 묻던 보살님 모습이 생생했다. 믿겨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 가는 길에 법복 한 벌 단정하게 입혀드리고 꽃잎이불 고이 덮어 관을 닫아드리는 것밖에 없었다.


육체에 병이 깃드는 것은 죄도 허물도 아니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병을 앓을 수 있고 다양한 이유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힘든 질병이 엄습해 오더라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밝게 드러내고 적절하게 치료를 받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생명이 소멸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남은 삶이 더욱 빛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능행 스님

질병은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방법을 사용할 때 치료될 수 있다. 보살님을 보내면서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팠던 것은 자신의 질병을 숨긴 채 혼자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둘러싼 환경 역시 내가 만들어가고 있음을 언제나 유념해야 한다.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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