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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화림, 조심조심하다

기자명 성재헌

空 오남용하면 눈에 뵈는 것 없는 사람 돼

약을 잘못쓰면 없던 병 생기듯
불법 잘못 이해하면 주변 불편

 

공은 삼독심 치유에 최고 명약
항상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할 일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세간에 ‘우유주사’란 말이 화제다. 하얀 우유빛깔을 띤 마취제 ‘프로포폴’을 일컫는 말이란다. 이 약은 위내시경을 할 때 수면유도제로 사용된다고 한다. 기다란 호스가 목구멍을 치밀고 들어올 때의 역겨움과 통증을 경험하지 않도록 해준다니, 고통을 없애주는 명약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날 때 약간의 환각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어 일부에서 오남용된 사례가 있고, 근래에는 사망사건까지 발생하였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예전에 도신 스님과 나누었던 대화 한토막이 생각났다.


“약(藥)도 없고, 독(毒)도 없어.”


한의사 자격증까지 가진 스님의 말씀이니, 흘려들을 수 없었다. 해서 되물었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세요?”
“인삼과 녹용이 약일까, 독일까?”
“약 아닌가요?”
“체질에 맞지 않거나 남용하게 되면 이 보다 무서운 독도 없지. 그럼, 수은(水銀)은 약일까, 독일까?”
“그건 독이지요.”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일부 병에는 수은을 적정량 사용하면 좋은 약이 되지.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이야기야.”
“그럼, 뭘 기준으로 ‘약’과 ‘독’을 구분하는 겁니까?”


대화에 흥미를 보이자 도신 스님 특유의 유창한 연설이 이어졌다.


“약이란 무엇이고, 독이란 무엇인가. 한의학에서는 건강과 병을 조화와 부조화로 파악하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법과 비슷해. 만물이 각기 다양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특성들의 조합이 조화로울 경우에는 편안하고 원활한 현상이 나타나지만 조화가 깨지면 불편하고 불쾌한 현상이 나타나. 즉, 조화가 깨진 상태를 병(病)이라 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건강(健康)하다고 해.”
“그럼, 독이란 조화를 깨트리는 것이고 약이란 조화를 회복시켜주는 것이겠네요?”
“그렇지. 기타를 생각해 봐. 여섯 개의 줄에는 고유한 음이 있지. 그 줄에서 나오는 소리 하나하나를 ‘이건 좋은 소리’ ‘이건 나쁜 소리’라고 단정할 수 없어. 좋은 소리, 나쁜 소리는 줄 자체에 부여된 특성이 아니라 서로가 어떻게 어울리느냐에 따라 결정될 사항이지.”
“그럼, 의사의 역할이란 곧 조화로움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겠네요?”

“그렇지, 훌륭한 의사는 훌륭한 기타리스트와 비슷해. 고급 기타도 연주자가 시원찮으면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질 않지. 반면에 훌륭한 기타리스트는 나뒹구는 궤짝 판때기에 낚싯줄 몇 개 엮어가지고도 기가 막힌 음악을 창조해낸단 말이야.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지당하신 말씀이다. 부처님을 지칭하는 용어 중에 의왕(醫王)이란 표현이 있다. 간단한 약재 몇 가지로 고질병을 고치는 기막힌 솜씨를 가진 명의처럼, 부처님은 이해하기 쉽고 실천하기 쉬운 간단한 가르침으로 중생의 지독한 고뇌와 번민을 치유하신 분이다. 명의의 처방에 따라 약을 복용하고 섭생하면 몸이 점차 불편하고 불쾌한 상태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가벼워지듯, 그분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고뇌와 번민에서 벗어나 마음이 점차 편안하고 가벼워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도 환자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가 오용하거나 남용하면 병이 낫기는커녕 없던 병까지 생기듯,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잘못 이해하거나 그 말씀의 목적을 망각하게 되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욱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으로 몰아가게 된다. 공(空)도 마찬가지다.

‘경덕전등록’에 다음 이야기가 전한다.


마조대사의 제자 중에 화림 선각(華林善覺)선사라는 분이 계셨다. 마조 회상에서 공(空)을 깨달은 스님은 깊고 외진 숲에다 암자를 짓고 늘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홀로 사셨다. 그런 스님에게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움이 구현된 것이었을까? 스님이 마당을 거닐 때면 호랑이 두 마리 나타나 시자처럼 쫄랑쫄랑 뒤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선객(禪客)이 화림 스님의 명성을 듣고 그 산골로 찾아왔다. 당당한 걸음으로 문을 들어선 선객은 성큼성큼 다가와 눈빛을 번쩍이면서 화림 스님 앞에 휙 하니 방석을 던졌다. 그러자 화림 스님이 온화한 낯빛으로 조용조용 말씀하셨다.


“찬~~찬히 하게나.”
“화상께서는 무엇을 보셨습니까?”


이 납자, 제방 여기저기를 편력하며 “만법이 공하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나 보다. “화상께서는 무엇을 보셨습니까?” 하고 대뜸 반박했으니, “이거다 저거다 할 만물(萬物)이 없다”고 나름 깨달았나 보다. 예의범절 따윈 안중에도 없었으니, 텅 빈 허공을 홀로 거닐듯 나름 만사(萬事)에 거침없었나 보다. 강호에서 다년간 갈고 닦은 솜씨를 멋지게 발휘했으니, 공을 먼저 깨달은 선배로부터 칭찬 한마디쯤은 들으리라 예상했을 게다. 허나 뜻밖에도 화림 스님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종루(鐘樓)가 주저앉았구나.”


공(空), 10원짜리 고스톱 판에서 100원만 따도 어깨가 들썩이고 100원만 잃어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게 우리네 살림살이니,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3독(毒)을 치유하기에는 둘도 없는 명약이다. 하지만 유용한 ‘프로포폴’을 오남용해 삶을 망치고 죽음까지 초래했듯, 공(空)을 오남용하면 화림 스님을 찾아온 납자처럼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리라.


공삼매(空三昧), 만물(萬物)과 만사(萬事)를 부질없고 헛되다고 항상 집중해 관찰하면 고뇌와 번민이 절로 사라지는 매우 유용한 수행법이다. 이런 일 저런 일로 눈물과 번민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우리네 살림살이니, 해탈의 지름길로 이보다 빠른 길은 없다. 하지만 항상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공이라고 관찰하는 이 순간, 기쁜가[喜]? 행복한가[樂]? 평안한가[捨]? 고요한가[滅]?”


공삼매를 바르게 닦는다면 화림 스님처럼 온화한 몸짓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만물을 대하고, 만사를 차근차근 순리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유능한 기타리스트의 아름다운 선율처럼 마음 씀씀이도 말솜씨도 행동거지도 조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허나 공삼매를 오남용하면 화림 스님을 찾아온 납자처럼 종루가 무너져 깨진 종소리 밖에 낼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하리라. 병원 신세를 오래 지면 환자가 돌팔이 의사노릇을 하듯, 가르침의 목적을 망각한 채 그 말만 달달 외우다보면 얼치기 수행자가 되기 십상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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