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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승원굴이 예배굴로-스투파 들어오다

기자명 법보신문

고행, 부처님 향한 경배의 옷을 입다

석굴 중앙에 스투파
점차 수행처와 근접
독방 하나에 조성도
전실 갖춘 사당 변모

 

 

인도 석굴 사원은 암벽에다가 일렬로 판 거주 승원굴 여럿과 스투파를 모신 예배 탑당굴 하나로 구성된다. 즉 승원굴은 탑당굴과 완전 별도로 분리되어 있었다. 마하승기율(摩訶僧祗律) 33권 가람 조성에서도 탑 예배처 불지(佛地)와 스님 거주처 승지(僧地)는 서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잘 나온다.


자, 그런데 탑당굴에 있던 예배용 스투파가 승원굴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걸 잘 보려면 중부 서인도 힌두 성지 나식으로 가면 된다. 유명한 아잔타 엘로라 석굴의 초입 도시 아우랑가바드에서 뭄바이 행 밤열차를 타고 고생 좀 했다. 좌석표를 살 수 없어 일반표를 끊고는 무작정 침대칸으로 갔는데 통로까지 사람이 꽉 차 별 수 없이 연결통로에서 그것도 발디딜 틈도 잘 없어 배낭만 내려놓고 서서 갔다. 차장에게 부탁하여 도중에 겨우 난 자리에 벌금과 함께 표값을 물고 앉았다. 새벽 2시 나식 역에 도착, 허름한 여관에서 모기와 싸우다가 아침 8시 도시 남쪽 판두레나 석굴로 갔다. 높지 않은 동산을 올라가니 석굴군이 일렬 띠 대형으로 가지런히 파져있었다.

 


인도 석굴은 연대를 추정하기 어렵다. 다행히 차이탸 탑당굴은 새긴 글자를 해독하여 B.C.160년경으로 못 박는다. 제3굴 비하라 승원굴의 안쪽 독방열 정중앙 벽면에다가 예배 스투파 부조를 새겨 모셨다(그림1). 수행처가 곧 예배처로 되는 시초다. 원통 대좌 상부 난간 위에 둥근 알, ‘불란(佛卵)’을 모시고 그 위에 ‘하미카’라 불리는 역 피라믿형의 궁전이 있고 꼭대기에 고귀함 표시의 양산이 한 가운데를 받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양산이 가운데 뿐 아니라 좌우에 마치 보좌 협시처럼 둘이 더 있다. 2단으로 마치 식물 줄기처럼 휘늘어져 있다. 앞서 본 6편의 해 가리개 양산이 알이 깨어나 만방으로 뻗어나가는 꽃줄기처럼 변하여 스투파를 장엄한다. 대좌 좌우에 탱탱한 젖가슴과 풍만한 엉덩이로 여성성을 강조한 두 여인이 경배하고 있다. 머리 위로 법륜과 사자상이 있다. 그리고 좌우 하늘 위에 불교 기본 조형이 된 나르는 비천상이 있다. 지상과 천상에서 모두 스투파를 경배하고 있다.


바로 옆 말굽형 위풍당당 탑당굴이 버젓이 파져있음에도 왜 굳이 거주 승원굴에 스투파를 모시게 되었을까? 절 대웅전에 정규 큰 불상이 있음에도 수행처에 작은 불상을 모시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일 것이나, 일단 예배 숭배물 스투파가 벽면 부조로 승원굴에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아예 스투파를 승원굴 안쪽 방에 버젓이 모시게 된다.
석굴이 밀집된 중부 데칸고원과는 따로 떨어진 북쪽에 담나르와 바그 석굴이 있다. 담나르로 가는 길은 복잡하다. 코타 시에서 복잡한 기차를 타고 한가한 시골 역 샴가르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더 시골인 찬드와사에 도착, 마을에 하나뿐인 택시 그것도 한국이라면 오래전 폐차했을 고물인데도 비싸게 흥정하여 3km 떨어진 석굴로 갔다. 언덕에서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힌두 석굴사원을 지나 30여개의 불교 석굴군이 펼쳐진다. 더 볼만한 화려한 탑당굴도 있지만 소박하고 자그마한 6굴을 보자(그림2). 전실 베란다 안 3면 3독방 승원굴인데, 정중앙 안쪽 방에 스투파를 모신다. 본디 승원굴인데 예배굴과 혼합되어있다. 텅 비었던 승원굴 안마당 가운데에 기둥을 넣어 좌우 기둥열을 통과, 스투파 방으로 진입하면서 신성함을 더한다. 예배와 거주가 혼합된 이 굴을 거주 승원굴, 예배 탑당굴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할지 혼동된다. 석굴들 외벽과 내부에 조각된 불상을 볼 수 있는데, A.D. 4~6세기로 추정한다.

 


담나르에서 바그로 가는 길이 불명확했다. 오후 기차를 타고 라틀람이라는 소도시에서 하룻밤을 자고 버스를 타고 나그다~다르~라즈가르~바그까지 계속 갈아타며 총 7시간 종일 걸렸다. 인도 넓은 땅덩어리는 끝없는 지평선 대평원의 연속이다. 2007년 3월27일 대지는 군데군데 검은 점의 나무를 제외하고는 온통 노란색 물결 밀밭이다. 길가에 트럭들이 줄줄이 늘어서 수확한 밀을 산더미로 싣고 나서 내달려서 교통 체증을 일으킨다. 12억이나 되는 인구가 다 먹고사는 것은 풍부한 농산물 덕이다. 먹고 남아 인도 주요 수출품이 농작물이란다. 비결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무더운 기후가 반대로 축복이 된다. 전년 10월 심은 밀을 다음해 3월 수확하고 나서 야채도 심고 기장인 ‘바즈라’, 팥인 ‘달’을 심어 10월에 수확하는 식으로 보통 3-4회전 모작을 한다고 한다.


바그 촌마을에 도착, 수소문한 고물 자가용으로 석굴로 갔다. 다리를 건너 개울가 암벽에 석굴들이 몇 개 늘어서 있는데 불상 조각을 포함 상당히 많이 파손되어 있었다. 석굴이 마을에 그대로 노출되어 이교도 침략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부서진 기둥을 새 돌로 깎아 넣었는데, 옛 위주 복원 원칙에도 어긋나고 옛 맛도 덜하다. 1굴과 3굴이 큰 승원굴인데 모두 안쪽 깊이 스투파를 모시고 있다. 1굴은 3면 독방열로 둘러싸인 안마당의 승원굴인데 담나르 굴같이 정중앙 안쪽 방에 스투파를 모시고 있다(그림3). 정방형 평면임에도 안마당 기둥들이 스투파 방으로 향하는 신성한 깊이를 더한다.

 


그런데 바로 옆 조금 작은 3굴 승원굴은 한 술 더 뜬다. 가운데 독방에 스투파를 모시는 것을 넘어서, 방 앞에 두 기둥을 둔 작은 전실을 두고 그 속에 스투파를 모시는, 그야말로 스투파 경배처 지성소 사당으로 만들었다(그림4). 바그 석굴군에는 스투파만 예배하는 별도 차이탸 탑당굴이 없으므로 예배굴과 거주굴이 하나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바그 석굴은 A.D.5~7세기경의 후기 석굴이다.


인도 불교 석굴사원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리하여 엄숙한 수행 거주처 독방 승원굴에 예배 대상 스투파가 벽면 부조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스투파를 독방에 모시다가 드디어 전실을 갖춘 사당으로 더욱 신성하게 만든다.

만약 사당방 속의 스투파를 불상으로 대체하면 바로 후기 석굴의 기본형, 아잔타 석굴의 다수를 차지하는 승원굴 바탕의 불상 예배굴이 된다. 명상 고행하는 초기불교의 나홀로 수행이 불상에의 경배로 내용 이동을 하게 된다.  

 

▲이희봉 교수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가 점차 힌두교의 예배방식 뿌자를 수용해 나가게 된다.


다음호에서는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변화, 불상의 도입에 대하여 보도록 한다.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이희봉 교수 hblee@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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