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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십이연기설의 취지

기자명 법보신문

무명 제거해 괴로움 없애려는 처방책

십이연기(十二緣起)란 무엇인가. 괴로움의 현실이 전개되는 과정을 12단계로 분석해 놓은 것이다. 무명(無明), 지음(行), 의식(識), 정신·물질현상(名色), 여섯 영역(六入), 접촉(觸), 느낌(受), 갈애(愛), 집착(取), 있음(有), 태어남(生), 늙음·죽음(老死) 따위가 그것이다. 붓다는 늙음·죽음이라는 실존적 괴로움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방식으로 있음이라든가 집착 따위를 거슬러 올라가 결국은 무명을 조건으로 일체의 괴로움이 생겨나는 과정을 밝혀냈다.

 

십이연기는 여래(如來)가 출현하건 출현하지 않건 확립된 원리로서의 의의를 갖는다(SN. II. 25). 붓다는 이 원리를 스스로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깨달았다. 이것은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이다. 만약 괴로움을 완전히 극복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에게는 십이연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늙음·죽음으로 대변되는 괴로움의 현실을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십이연기는 불변하는 진리이다.

 

십이연기의 가르침에서 우선 유념해야 할 사항은 그 취지이다. 십이연기는 객관적인 실재의 발생과 소멸을 규명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다. 이것은 괴로움의 현실을 해명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이점을 망각할 때 십이연기는 세계의 구조를 밝히는 형이상학적 논리로 바뀌고 만다. 유감스럽게도 일부 학자들이 십이연기를 그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붓다는 형이상학자도 자연과학자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괴로움의 극복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러한 이유에서 괴로움이 발생하는 경로를 드러냈을 뿐이다.

 

십이연기는 각종의 형이상학적 견해들과 궤도를 달리한다. 예컨대 초기불교 경전에서 십이연기에 대한 해설 앞에는 대체로 다음의 정형구가 나타난다. “‘모든 것이 있다’는 것도 하나의 극단적 견해요, ‘모든 것이 있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극단적 견해이다. 여래는 이들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가운데에서 가르침을 드러낸다(SN. II. 17).” 마찬가지로 십이연기는 단일성과 다수성의 문제, 괴로움의 주체 문제, 영혼과 육체의 동일성 여부와 같은 형이상학적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로부터 벗어난 가르침으로 묘사된다(SN. II. 20~77).

 

붓다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이란 태생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뿌리 깊은 무지와 습관적 경향들 그리고 갈애와 집착 따위가 그 원인이다. 붓다는 당시 유행했던 대부분의 사변적·형이상학적 견해들이 바로 이점을 간과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웠지만 그러한 논리의 이면에는 탐욕과 증오 따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편견과 아만에 사로잡혀 자신과 타인에게 괴로움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붓다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견해들과 전혀 다른 맥락의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세계를 해석하려는 인간의 인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여 실재로부터 유리되는 과정을 밝힌 것이다.

 

▲임승택 교수
십이연기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결과로서 도출되었다. 이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명으로부터 시작되어 늙음·죽음이라는 괴로움의 실존으로 종결된다. 또한 무명이 소멸하면 나머지 지분들 또한 소멸하여 모든 괴로움의 갈래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밝힌다(SN. II. 1~2). 십이연기는 무명의 제거를 통해 괴로움의 해소를 꾀하는 처방책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초기불교의 십이연기를 세계의 기원 혹은 구조를 해명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교설로 간주하는 것은 본래의 취지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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