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2. 이고, 웃으며 내려오다

기자명 성재헌

하늘에 구름이나 땅위 시내 모두 같은 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이고
불교 깔보며 기고만장 일관

 

태수로 좌천돼 울분만 쌓다
약산 물 법문에 깨닫고 웃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이야기하다 보면 늘 느끼는 게 한 가지 있다.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든 사람이, 한창 잘나갈 때보다는 잘나다가 뚝 떨어졌을 때, 훨씬 잘 받아들이고 깊게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하긴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꿈 많은 청춘이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리 없다.


잔뜩 성취감에 부풀어 성공신화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게 “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지고, 얻은 것은 반드시 잃는다”는 김빠지는 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 이는 요즘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다. 역사를 살펴봐도 이런 예는 허다하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도 젊어서는 유학을 익히고 늙어서는 노장과 불교를 배웠나 보다. 이고(李)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고는 당나라 때 유학의 부흥을 주창하며 불교를 배척했던 대표적인 인물인 한유(韓愈)의 수제자이다. 수많은 유생들의 추종을 받았던 스승 덕분에 이고는 탄탄대로를 밟아 벼슬이 상서(尙書)까지 올랐다. 그 시절, 그에게 불법은 사교를 위한 교양필수 정도였다.


언젠가 아호 대의(鵝湖大義)선사를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서는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지셨다는데, 그 많은 눈과 손으로 무엇을 하신 답니까?”


공손히 질문했지만 불순한 의도가 엿보이는 질문이다. 부처님과 보살님이 그렇게 능력이 많다면 이 세상이 어떤 문제도 없이 술술 잘 굴러가야 하지 않겠냐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대의선사가 되받아쳤다.

“황상께서는 상공(相公)을 기용해 무엇을 하십니까?”


덕스러운 군주에 현명한 신하들이 그득하다면 공자님 말씀대로 태평성대가 구현되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지금 세상은 어떠냐고 반문했으니, 대의 스님도 꽤나 언짢으셨나 보다. 이고는 말문이 막혀 물러서긴 했지만 진심으로 굴복하진 않았을 게다. 현실적인 행복과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유교뿐이라고 장담했을 이고에게 불교의 무욕과 해탈은 비현실적인 가르침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언제가 마조대사의 제자를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마 대사께서는 어떤 설법을 하셨습니까?”


그러자 그 스님이 대답하였다. “대사께서는 어떤 때는 마음이 곧 부처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고가 말하였다. “모두 이 세계를 초월한 말씀 뿐이셨군요.”
자칫 칭찬으로도 들릴 수 있지만, 역시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가르침이라는 비판의 칼날이 숨겨진 말이었다. 이고는 서당 지장(西堂智藏)선사를 만난 자리에서 똑같이 물었다. “마조대사께서는 어떤 설법을 하셨습니까?”
그러자 지장선사가 가만히 이고를 불렀다.
“상공.”
“예.”
“북치고 나발 부시는군요.”


‘나’와 ‘세상’이 분명하고 ‘옳은 가르침’과 ‘그른 가르침’이 분명한 이고에게, 모든 것이 인연의 화합일 뿐 거기에 일정한 주체는 없다는 붓다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질리 없다. 생각하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이 북 치고 나발 부는 것이랑 하나도 다를 것 없다는 마조의 가르침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 칼로 북을 찢어보고 나발을 해체해 보아도 그 속에 소리를 내는 놈은 따로 없다는 사실을 이고가 수긍할리 없었다.


그러다 원화(元和) 14년(819), 한유가 부처님 사리를 모시는 일을 비판하는 논불골표(論佛骨表)를 올려 헌종(憲宗)의 미움을 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한유는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고, 이고 역시 낭주자사(郎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인생의 쓴 맛을 보면 삶은 곧 고통이라는 부처님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법이다. 스승 한유가 이때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조주의 태전(太顚)선사와 막역한 벗으로 지냈듯이, 이고 역시 진심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관내에 명성이 자자하였던 약산 유엄선사를 초청하였다. 병을 핑계로 초청을 거절하자 직접 약산으로 찾아가기까지 하였다. 아무리 갓끈 떨어진 선비라지만 그래도 일국의 재상을 지낸 몸인데, 산문을 들어서도록 약산은 마중도 나오질 않았다. 마중은커녕 안내를 받고 방 앞에 이르렀는데도 경전을 보면서 고개도 들지 않았다. 이에 곁에 있던 시자가 당황해 큰 소리로 말씀드렸다.


“스님, 태수께서 오셨습니다.”


높고 낮음, 공(功)과 과(過)를 분명히 나누던 습성이 어찌 하루아침에 사라지겠는가. 관아에서 출발할 때부터 꾹꾹 눌러두었던 성질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직접 만나는 것이 소문을 듣는 것만 못하군.”


그러자 약산 스님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이고를 불렀다. 이고가 대답하자 약산이 말했다.

 “어째서 귀만 귀하게 여기고 눈은 천하게 여기십니까?”
이고는 사과를 하고, 진심으로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약산 스님은 손으로 위를 가리켰다가 다시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답니다.”


긴 시간 패배자의 울분과 자괴감에 시달렸던 이고는 비로소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떠나는 자리에서 부끄러워하며 게송 한수를 지어 올렸다.


오랜 세월 수련하며 학처럼 늙으신 분
빽빽한 소나무 숲에는 경전 두 상자
내가 찾아와 도를 물으니
다른 말씀 없으시고
구름은 푸른 하늘에 물은 병에 있다나.


열을 흡수하면 올라가고 열이 흩어지면 내려오지만 구름이건 시내건 똑같이 물이란 걸 새삼 깨달았나 보다.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때서야 받아들였나 보다. 누가 권한 것도 아니고 제 발로 기를 쓰고 올라갔으니, 내려올 때 울고불고할 것 없다고 스스로 타일렀나 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던 이고,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탁하면 발을 씻는 삶을 비로소 수긍했을 게다. 버려진 신하가 되어 쓸쓸히 약산을 올랐던 이고, 싱긋이 웃으며 휘휘 약산을 내려왔을 게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